미국 남부는 무더운 여름을 지나 조금씩 선선해지는 10월부터 12월까지가 즐길 것들이 많다. 10월부터 시작되는 가을 축제들과 할로윈, 11월은 추수감사절, 그리고 12월의 크리스마스까지. 처음 미국에 왔을 땐 아이들 학교 행사만 쫓아다니다 그냥 흘려버린 듯한데, 이제 그래도 2년정도 지나니 축제를 즐기는 노하우가 조금씩 생겼다.
우선 각 지역마다 발행되는 그 달의 잡지를 손에 넣으면 된다. 이 잡지는 우편으로 배달되기도 하고, 마을 도서관에 가면 항상 비치되어 있다. 무료다! 광고가 대부분 많이 차지하기는 하지만, 동네 곳곳에서 진행되는 그 달의 이벤트들이 모두 게재되어 있다. 스케쥴표를 확인해가며 내 입맛에 맞게 골라골라 구경다니면 된다. 아이들이 지역사회를 좀더 잘 알아가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무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절약되고, 교통체증을 겪으면서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너무 좋은 기회들인 것이다!
한국에서 가을하면 초등학교 아이들의 운동회가 떠오르는데, 여기 학교는 운동회가 아닌 카니발, 축제를 개최한다. 공립 학교에 대한 미국 주의 보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체적인 행사를 통해 기금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PTA라는 일명 학부모회가 활기를 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TA가 주체가 되어 발벗고 나서서 여러가지 이벤트들을 통해 학부모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PTA의 파워인 동시에 그 해의 학교의 재정상태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사온 곳의 아이들 학교에서 특이할 만한 것은 축제가 시작되가 몇주전에 아이들에게 경품(raffle)티켓이 배부된 것이다. 한장당 5불씩하는 경품티켓을 한명당 10장씩, 팔지 못한 티켓은 다시 반납하라고는 되어 있지만, 반 의무적?으로 이웃들이나 친척들에게 팔아오라는 것이었다. 경품상품은 1등은 골프 카트, 2등은 65인치 TV, 3등은 XBOX게임기였다. 토토로네 딸들이 가져온 티켓은 모두 20장. 그래도 학교를 위한 일인데, 그냥 보내기는 그렇고, 어디에 팔러가지? 고민하다 토토로네 아빠 회사에 가서 팔아오기로 했다^^ 퇴근시간 무렵 아빠 회사를 방문한 토토로네 딸들이 수줍게 내미는 티켓을 회사분들이 귀엽다며 한두장씩 기꺼이 사주셨고, 나이 지긋하신 회계담당 할머니는 무려 4장을 사주셨다. 그래서 모두 팔았다!!!
티켓 외에도 각 반마다 옥션 상품을 내야하는 임무가 있었다. 각 반의 대표 엄마가 아이디어를 내서 반 엄마들에게 1~2불의 기부를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큰 딸네반은 아이들의 손을 프린트해서 국화꽃 화분을 만들었고, 둘째딸 반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 레시피를 모아 요리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준비된 학교 축제는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부모뿐만 아니라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개최된다. 게임을 하는 곳, 음식을 사먹는 곳, 옥션을 판매하는 곳, 공연하는 곳 등으로 각각 구분되어 그날은 학교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하다. 그리고 눈여겨볼만한 것은 미국 고등학교는 봉사활동이 매우 중요해서인지, 그런 축제가 열리는 학교마다 게임부스를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게 하고 있었다. 토토로네 딸들은 고등학생 언니가 컬러 헤어스프레이도 뿌려주고, 매니큐어도 칠해주는 부스를 지나, 페이스 페인팅까지 하며 축제를 제대로 즐겼다.
자원봉사 고등학생들이 운영하고 있는 곳과 축제장에 설치된 코너들
경품 상품과 각 반에서 제출한 옥션 상품들
하지만 달마다 이루어지는 이벤트의 주류는 그 지역에 위치하는 교회와 도서관과 공원이다. 10월에는 pumpkin patch라고 교회마다 호박을 전시해놓고 판매를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부스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개방한다. 여기에는 또 교회 사람들이 홈메이드 쿠키를 판매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들도 마련되어 있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만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에게 늘 개방되어 이루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마을 도서관에서는 매주 무료로 연령별에 따른 동화읽기, 만들기, 실험, 놀이활동 등의 이벤트들을 기획하고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공원에서는 와인 축제, 세계 여러나라 축제와 같은 각종 축제들이 항시 열리고, 저녁즈음에는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음악회를 개최하거나 벼룩시장을 열기도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려는 지자체의 노력과 각종 단체들의 참여,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큰 것 같다. 축제들을 통해 모금되는 돈들은 기금의 형태로 주최측에 전달되는데, 어떤 형태로든 다시 지역사회에 투명하게 환원되는 시스템이야말로 본받고 싶은 면이다. 마을 축제를 다니면서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운다'라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늘 마주치는 이웃들이 또 축제에서 곧잘 만나게 되는데, 그 때 아이들은 더욱 친근감을 느끼고 다가간다. 솜사탕을 만들어주는 반 친구 엄마, 뜨개질 작품을 파는 옆집 할머니, 기념 사진 찍어주는 버스 기사 아저씨. 만나는 이웃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학교 축제날 동네 언니가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는 자리에서 그림그리기에 관심이 많은 토토로네 큰딸은 "나도 커서 동생들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줘야지!"라며 결의를 다진다. 공연 코너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들을 뽑내는 마을 댄스 교실 아이들을 보면서, 요즘 발레에 심취해있는 토토로네 둘째딸은 "엄마 나도 발레 연습해서 저렇게 공연할래!" 한다. 행사 업체가 화려하게 꾸민 곳에서 상업적으로 행해지는 행사보다, 조금은 어설프고 보잘것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역에 속한 학교와 단체와 사람들이 꾸며나가는 마을 축제가 아이들에게는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그리고 마을 구성원들의 관심과 애정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베품'과 '나눔'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에서 쉽게 실현할 수 있는 가치라는 것도 느꼈으면 좋겠다.
아직은 그러한 축제들을 토토로네는 마냥 즐기는 입장이지만, 조금 더 나아간다면 나도 우리 가족도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축제의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날도 기대해본다. 애들아, 이번 주말에는 우리 어디 축제갈까? 주말에 집에서 밥하기 싫었는데,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 찾아 떠나는 마을 축제에 토토로네 엄마가 더 신났다^^
p.s. 그동안 [토토로네 미국집]이라는 타이틀로 사는 이야기를 올렸었는데요, '미국'이라는 특정 나라에 대한 선입견이나 제한이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이라는 곳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소재가 되기는 하고, 그러한 것을 신선하게 받아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 원래 모토인 '감성 육아'의 취지가 더욱 크기 때문에 타이틀을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도 때로는 지치고 힘든 육아지만 토토로네 이야기로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