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르치는 아이의 시 한 편

자유글 조회수 8872 추천수 0 2010.06.09 13:57:46
아이들은 글쓰기를 좋아한다. 난 그렇게 믿는다.
글 쓰는 일은 자기를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갓난 아이였을 땐 울음과 웃음으로 자신의 요구를 드러내고
말을 배울 땐 말로, 글씨를 쓰게 되면서 부터는 글씨로 자기를 표현한다.

우리 반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든다.
단 일초도 얌전히 안 있는다. 끝없이, 끝도 없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떠든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가 살아있음을 증거 한다. 떠드는 아이들은 그래서 건강하다.
난 아이들이 떠들 땐 그냥 두고 잠깐 동안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난 또한 더 이상 저 아이들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므로 저 아이들의 끝없는 수다가 부럽다.

만약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거부한다면
그건 그런 아이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글을 쓰라고 우겨넣은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다.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게 해야 하는데
어른들은 마음에도 없는 독서감상문을 쓰라고도 하고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표어를 지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논술에서는 자신의 주관적 관점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어버이날을 보내고 처음 만난 오늘 아침,
우리 반 아이들의 수다제목은 어버이날 있었던 일이었다.
아이들은 댐을 떠난 물처럼 또다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모짤트의 음악처럼 간지럽고 달콤하고 명랑한 수다가 어느 정도 끝나자마자
난 종이 한 장 씩을 내밀었다.
어버이날에 생각나는 사람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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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꼭꼭 눌러 쓴 시.
할머니에 대한 연민, 존경심, 감사의 마음이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점점이 배어 있다.
냄새나는 치마를 입고 슈퍼 구석에서 젊은 주부들에게 굽실거리며 생선을 파는
할머니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 이어
장사가 잘 되면 흥겨워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할머니의 흥도 읽어내는 저 아이는
약을 바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눈물 맺힌 애잔함과 감사를 느끼며
급기야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을 스스로 해내기까지 한다.
난 저 아이가 쓴 시를 붙들고 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저 아이가 부모 대신 할머니를 소재로 하게 된 가정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자.
자기가 부모 노릇 잘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부모 없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도 크더라.
부모 손이 필요한 나이에 부모가 없으면 아이의 정서가 어떻게 된다라고 떠드는
소위 얼치기 교육학자들의 값싼 강좌들 속에서
흉악범을 잡고 보니 그 놈이 어릴 때 부모가 없는 놈이더라고 헤드라인을 뽑는 황색 언론인들 때문에
부모가 없지만 저렇게 그윽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오늘도 서럽게 운다.
내가 부모들과 상담을 하면서 가장 가엽게 생각하는 것이 아이 때문에 참는다는 사람들이다.
아이 때문에 매를 맞으면서도 이혼을 참고, 아이 때문에 자신의 꿈을 미루며,
또한 아이 때문에 할 수 없이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는 그들의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열등감이야 말로
이 세계화의 시대, 똑똑한 부모들이 지닌 가장 불쌍한 페르소나가 아닌지.
하긴, 나도 선생 되고 나서야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아이들이 잘 크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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