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달팽이 찾기

나들이 조회수 9437 추천수 0 2014.01.20 21:40:58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엄마의 고향, 아이들 외갓집에 다녀왔다. 외풍이 심한 외갓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더니 아이들은 추워서 집에만 있겠다고 했지만 엄마의 계획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올 때부터 생각했던 계획, 엄마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같이 가보는 것이었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서 예전 그대로는 아니지만 엄마가 뛰놀았던 곳에 아이들과 같이 가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 서 있었던 아름드리 커다란 플라타나스 나무들은 이제 한그루도 안 보였다. 군데군데 벗나무는 예전 그 나무인듯 보였다. 운동장에 그네와 미끄럼틀, 구름사다리는 최근에 교체를 했는지 새것 같았다. 내 키만한 나무로 빙둘러져 있었던 담이 사라져 학교 전체가 탁트여보였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는다며 한창 빠져있는 동안 학교를 구석구석 빙 둘러볼 수 있었다.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여서인지 몰라도 다행히 폐교되지 않고 제 자리에 서있는 학교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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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커버려서일까? 학교가 이젠 작아보였다. 학교를 빙 둘러보면서 텅 빈 운동장에 뭔가를 그리고 싶어졌다.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서 운동장 가운데서부터 달팽이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와! 이거 운동 제대루 됐다. 달팽이껍질 10개는 그려야지하고 시작했는데 보통 일이 아니었다. 껍질 두서너개 그리고 나서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힘들어서 그냥 내가 신은 운동화를 옆으로 세워 서서 그릴까란 생각도 잠깐 했다. 아니야, 제대로 그려보고 싶었다. 허리를 굽히고 나뭇가지를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숨도 차오고 안쓰던 다리근육까지 써서 그런지 온 몸이 당겼다. 입고 왔던 잠바도 바닥에 벗어놓았다. 딸아이에게 껍질 몇 개까지 그렸는지를 물어가며 멈춰 쉬기를 몇 번 하면서 달팽이집 그리기 드디어 완성!

학교 운동장에 대형 달팽이가 생겼다. 우우 대형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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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하던 운동장이 꽉 차보였다. 둘째를 불러 달팽이집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같이 뛰었다. 엄마는 한번 돌고 운동장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올해 여섯살이 되는 아이는 무슨 힘이 남았는지 한 바퀴를 더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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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뛰고 나서는 아이도 입고 왔던 잠바를 벗어 엄마 옷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같이 바닥에 앉아 쉬었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이 넓은 학교를 통째로 빌린듯했다. 시골 동네 전체가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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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물 오른편에 컨테이너로 만든 10평 남짓한 건물이 있었다. 건물벽을 만져보니 겨울 햇볕에 달궈져 옛날 외할머니 방 아랫묵만큼 뜨뜻했다. 손난로가 필요 없었다. 모래성을 쌓는다며 한참동안 맨 손으로 놀던 두 아이를 이리로 불렀다. 시린 손을 잠깐 녹여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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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놀러온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는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집으로 향했다. 첫째가 모래성을 쌓으면서 "이건 작은 갈라파고스야."하길래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 '아하, 갈라파고스 섬 책을 읽었지.'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이들은 모래 사장에 작은 갈라파고스 섬 두 개를, 나는 운동장에 대형 달팽이를 선물로 남겨놓고 왔다. 개학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왔을 때까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남겨놓은 흔적을 보며 왠지 흐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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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겨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이 시간, 이 공간이 내겐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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