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내 마음은 메말라서 쩍쩍 갈라진 가뭄 그 자체였다.
다섯살 딸아이와 7개월된 아들녀석을 데리고 온종일 부대끼다보니,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딸아이가, 무엇이든 입으로 넣고, 뒤로꽈당 앞으로 꽈당 불안불안한 아들녀석이
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그러다가 딸과는 말다툼에 신경전까지 치루고,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녀석을 붙잡곤 푸념을 해댔다. 딸의 언변은 정말 ... 초등학생과 대적할 정도로 뛰어나서 나를 한번씩 미치게 만든다. 내가 못당하다 못해, 너무너무 얄밉기까지 하다.
나는 딸아이의 말대꾸에 지쳐서 '내가 다섯살 아이와 뭐하는 짓인가' 싶어 그냥 속으로 화를 참곤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딸아이를 사랑으로 감싸던 마음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가뭄에 든 것이다.
늘 바쁘던 남편은 더 바빠져서 내 기분을 풀어줄 사람은 없고, 날은 무지하게 덥다보니 아이와 조금만 부딪혀도 짜증이 확 치밀어올랐다.
그래서 더욱 애타게, 단비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단비가 7월 11일.. '띵동' 하고 도착했다.
바로, 책 읽는 부모에서 보내준 육아책,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이었다.
이 책은 내가 지끔까지 보아오던 육아책과는 많이 달랐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며,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하라고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겉표지만 보고 느낀 책의 첫인상은, '아이들은 저마다 달라요. 아이들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해주세요' 였다. 내용 역시, 아이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사상으로, 그 한마디 한마디가 시적이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저자는 아이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픈 아이들을 위해 '행동' 하는 의사가 되었고, 아름답고 시설 좋은 고아원을 세웠다. 그의 집안은 2세대 이전에 유대인 관습을 모두 버리고 폴란드 문화와 사회에 정착해 살고 있었지만,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해 모든 유대인들을 거리로 내몰았을 때도 그는 유대인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를 구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뿌리치고, 가스실이 종착지인 화물차에 아이들과 함께 올라탔고, 결국 불에 태워져 한줌의 재가 되었다. 그런 그의 목표는 아이들이 박탈당했던 존중, 사랑, 관심을 어른들로 하여금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끔찍한 일이 많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부모나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대신 겁내는 것입니다'
'"엄마는 어른이 차를 엎지르면 '괜찮아요' 라고 말하면서 내가 엎지르면 화를 내요!" 아이들은 불공평한 대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종종 울음을 터뜨리지만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고 성가신 것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리고 무시할 만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 칭얼거리고 징징대네!" 이말은 아이들에게 쓰려고 어른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전혀 졸리지 않은 어린이를 강제로 자게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몇시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자야 하는지를 적어 놓은 생활계획표는 말 그대로 바보짓입니다. 아이가 몇 시간이나 자야할까를 알기는 쉽습니다. 대개 깨지 않고 자는 동안이 그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입니다 ..............................(중략)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원칙은 부모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아주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아이들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평소에 내 아이가 공부잘하기를, 똑똑하기를, 월등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다만 건강하고 밝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아이를 위하는 '척' 하는 부모였을 뿐, 가장 중요한 것..
아이를 존중하는 법을 모르고, 아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섯살인 아이를 내 식으로, 내가 정한 규칙에 맞춰서 키우려고만 했지, 다섯살 아이로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해놓곤, 아이가 물을 엎지르거나 뭘 쏟거나, 방을 어지럽혀놓으면 잔소리부터 해대고, 뒤를 따라다니며 치워야 하는 귀찮음에 짜증을 냈었다.
지난 달에 받았던 '스마트 브레인'을 읽고 나일이의 뇌가 즐겁도록 아이와 스킨쉽도 많이 하고, 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대해도, 다섯살 아이가 안아달라고 덥석 달려들 땐, 나도 모르게 흠칫 겁이 났고, 둘째를 먹이고 씻기는 와중에 첫째가 책 읽어달라고 다그칠 때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육아책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왜 이렇게 '육아'가 힘든 것인지 속앓이를 했다.
다른 엄마들은 그럭저럭 잘 해내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렵고 힘에 부치는지...
<아이들>은 그런 내게 '아이' 에 대해 다시한번 겸허한 자세로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을 아름다운 길로 이끄는 위대한 일을, 내가 왜 그렇게 짜증을 내며 힘들다고 투덜거렸는지,,,,,,
아이를 대하는 나의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내 아이가 주눅들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이들은 정말, 어른이 아닌 아이들인데......
내 식대로 가르치고, 짜맞추려 나혼자 애쓴 나머지 아이에게 '엄마'를 겁내게 한건 아니었는지..
나일이를 잘 키우겠다고, 내 마음대로 정해놓은 규칙은(딴에는 아이를 위한다고 한 거였지만)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가뭄은 <아이들>책으로 일단락 해갈되었지만, 사실 나조차도 이 단비가 몇시간 짧게 내리고 말 단비인지, 아니면 단비를 넘어 몇날 며칠 이어질 장마일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동안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존중'이란 부분을 가슴속에 심어놓은 이상, 두 아이를 대하는 내 자세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예감이다.
조만간 그의 첫 번째 책인 <거리의 아이들>과 <어린이를 사랑하는 법>을 꼭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