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초.
동네 <품케어>아빠 한 명이 단체대화방에 2박3일 초등학생 템플스테이를 제안했다.
. 템플스테이 수요조사 합니다. 일단
B양은 참석(단, A언니
참석 시)
. C양 참석 (단, A/B언니 참석 시) + D군 참석
. E양, F군 참석 (단, A언니/D형 참석
시)
. A언니가 관건이군요
. 유치부가 없어 아쉽네요
. 10명 채워오면 7세도 받아 준답니다.
. 7/28~30, 마침 학원 방학기간이네요. ㅎㅎ
. 새벽 4시 108배. 애들 울겠네요
. 에이~ 아빠 엄마 없으면 다 해요
. 초등학생 프로그램에는 없는 것 같아요.
108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직 남동생 둘은 미취학아동일 때 방학 기간 중 동네 아줌마의 권유로 여름/겨울성경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하루 몇 시간
이었지만,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늘 붙어 있던 동생들과 떨어져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매일 귀가 전 지급 받았던 사탕(바니)을 동생들에게
나눠 줄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뛰어 갔던 것이다.
그때 배운 몇
곡의 찬송가가 평생 시도 때도 없이 입에서 흘러 나오는 후유증(?)이 있긴 하지만.
그러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 방학.
엄마에게 등 떠밀려
우리 삼남매는 불교어린이수련회에 참석 했는데, 말하자면 요즘의 ‘템플스테이’다.
그게 1982년의 일이었으니 그 절 주지 스님은 정말 앞서가는 분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3박4일이었던가? 108배를 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발우공양’ 만큼은 생생하다.
고기/생선 없는 반찬만 먹다 보니 밥 먹기가 점점 싫어졌는데 우리 마음을 읽으셨는지 어느 날 카레가 나온 것이다.
야홋. 고기 없는 카레였지만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카레 범벅이
된 발우를 보니… ‘발우공양’에 카레는 옳지 않다.
그래도 그때 ‘발우공양’ 경험 후 밥을 먹을 때는 적게 담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게 되었으니 아주 큰 공부를 한 셈이다.
이런 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이건 무조건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게다가 개똥이와
조카3명을 7월 마지막 주 일주일 동안 봐 주기로 했는데, 2박 3일이 이라니 이게 웬 떡 이냐.
가족단체대화방에
건의하니 모두 대찬성.
일단, <품케어> 애들이 10명이
안되거나 넘을 수 있어 7세 남아 2명 접수가 가능한지 개별
문의를 했다.
“10인 1조로 선생님 한 분이 돌봐주실
건데 7세가 있으면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서요”
“저희 애들이 사촌형제인데 9세
남아가 7세 남아 둘은 충분히 돌봐 줄 겁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신청서에
그냥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해 주세요. 그렇게 하셔도 저희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 그래도 될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한편 <품케어> 단체대화방에서는 비보가 전해졌다.
관건이었던 A언니(초5)가 엄마폰으로
단체대화방과 프로그램을 정독한 후 불참 통보를 한 것이다.
하긴 동생들 보다는 친구들이 좋아질 나이 이긴 하지.
살짝 체념을 하면서도
미련이 남은 부모들은 신청서 작성을 위해 모인 김에 대책마련을 위한 저녁식사 자리를 주선하고 A언니를
초대했다.
아이들의 식사가 끝나자 A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갔다 언제나처럼.
어른들도 이제는
그만 놔주자며 식당을 나올 때까지 템플스테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A언니가 참석하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고요한 밤거리에
별안간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물론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어른들의 환호가 더 컸다. 훨씬!
여아 7명, 남아 6명(7세 남아 3명)이 최종
참석 결정 후
‘여름숲속학교’ 주최측인 봉선사
포교국에 이 아이들을 같은 조로 편성해 주십사 별도 요청까지 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당일.
우리는 점심으로
돈까스를 먹였고, <품케어>엄마 한 명은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새벽에 일어나 ‘고기김밥’을 싸서 오는 차 안에서
애들에게 먹였노라 했다.
제일 씩씩할 것
같았던 7세 남아 G군은 “엄마가
보고 싶을 것 같다”며 차 안에서 대성통곡을 했고, 한밤만
자고 데리러 오라고 신신당부 했다가 “다른 애들은 수료증 받을 텐데 너만 못 받는 거 괜찮겠어?”라는 엄마 말에 결국 끝까지 남았고 부모로부터 ‘용감한 어린이 상’을 받았다.
봉선사에 도착하여
아이들을 서로 인사 시키는데, 개똥이 사촌누나인 9세 여아와
품케어 여아들이 서로 알아 본다. 작년 여름방학 때 조카 둘이 우리 집에서 <품케어>에 2주
정도 다녔었는데, 그때 같이 지낸 것을 서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등록확인을 하는데
주최측은 우리의 요청대로 아이들을 같은 반에 배정 해 주었다.
여아는 5반. 남아는 11반.
어쩐지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
기념 옷을 받고
아이들과 선생님을 따라 숙소 확인을 했는데 남아와 여아는 건물 자체가 완전히 분리 되어 있었다.
받은 옷을 갈아
입히고 명찰을 달아 주고 가방에 이름표까지 붙이고 나니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영 떨어지지
않는다.
친척집도 아닌
낯선 곳에 부모 없이 아이만 재우는 것은 아이도 우리도 처음이긴 마찬가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마냥 즐겁다.
1일차.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못해 안절부절 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아이
없이 <품케어>부모들과 우아하게 식사도 하고, 그 중 일부는 극장에 가서 영화도 같이 보고 영화 관람 후에는 목만 축이자며 맥주 한잔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새벽 2시까지.
2일차.
계획된 프로그램에는
야외 활동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오후에는 물놀이 일정이 있었는데, 아침부터 폭우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것을
이렇게나 가슴 아파한 적이 또 있었던가?
다행히 정오를
지나면서 한두 방울 내리는 수준으로 비가 그쳐서, 물놀이는 가능할 것 같았다.
애들이 물놀이를
할까? 안 할까? 할까? 안
할까?
당장 전화 해
보고 싶었지만, 주최측은 이런 문의 전화를 얼마나 많이 받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이다 결국 용기를 냈다.
그래 나 극성
엄마 아니야, 그냥 13명 아이의 부모를 대신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개별 문의가 아니라, 단체 문의라고나 할까?
“비가 그쳐서 애들 아주 잘 놀고 있습니다.
수영장에서”라는 답변이 묻기도 전에 나온다.
“아~ 다행입니다. 그게 제일 궁금했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3일차.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은 휴가철 피서 차량으로 오래 걸렸지만 두근두근 설레었다.
2박 3일 만에 부모와 상봉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한다.
제일 먼저 확인
한 것은 “재미있었어?” “네!”
두 번째로 확인
것은 “내년에 또 올 꺼야?“ “네!”
성공이다.
- 해산 전, 기념 촬영을 위해 자리 잡은 15명(13명 + 2명)의 아이들
아이들의 수계식/수료식 후 인절미 만들기 체험을 거쳐 같이 점심 식사 하는 것으로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재미있었고 밥도 맛있었지만(발우공양은 아니었다) 3가지 단점을
꼽았다.
. 휴대전화 압수 (고학년은 더 싫었을
듯)
. 일찍 자고 일찍 일어 나기 (22시
취침, 6시 30분 기상)
. 개인 시간이 없는 것 (일부 아이들은
개인 시간이 충분 했다고 주장)
그래? 근데, 부모 입장에서는 모두 장점으로 보이는구나.
7세 남아를 그것도 세 명이나 위장 참석 시킨 미안한 마음에 남자11반 담임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따서 (남자 그것도 젊은 남자 전화번호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딴 것은 평생 처음) 커피 쿠폰을 선물 했는데, 덕택에
선생님의 SNS를 살짝 엿 볼 수 있었다.
10명의 남아들과 같이 찍은 사진과 함께 ‘아들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
그럼요 선생님~ 아들도 나쁘지 않답니다.
개똥이의 증언에
의하면 소리 지르지 않은 유일한 (남자반) 선생님 이셨다니, 녀석들 정말 멋진 쌤을 만났다.
지금의 결심대로
내년에도 아이들이 참석할지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 본인들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녀석들의
기억 한편에 이 경험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템플스테이’이든 ‘템플스테이크’이든.
아 진짜 개구쟁이
녀석들 ‘템플스테이크’라며 까르르 까르르 자지러진다.
강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