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머리 아파요.”
보통 다쳐서가
아니고서는 아픈 일이 없는 녀석인지라 아프다는 말이 생소하다.
“열이 있나?”
“유치원에서도 아팠고, 품케어 선생님이
열이 조금 있다고 했어요”
“그래? 어디 한번 재볼까?”
살짝 긴장을 하고
아이를 만져 봤지만 정상.
그래도 체온계까지
동원하여 확인한 결과 36.7 정상.
“열은 없어. 정상이야”
“체온계가 고장난건지도 몰라요”
“엄마도 재봤는데, 엄마는 37.8이야 엄마가 더 높아”
“그래도 머리가 아파요”
“오늘 넘어지거나, 머리 부딪힌
적은 없고?”
“없어요”
“그럼 더위 먹었나?”
“안 먹었어요. 더위. 유치원이랑 품케어에서 밥 먹었어요”
“아… 그래”
밤이 되자 녀석은
두통에 복통까지 호소한다.
아프니 일찍 자자
독려했지만 녀석은 슬슬 힘들어 하기 시작하고,
퇴근한 남편은
“체 했나?”라는 새로운 견해를 내 놓는다.
그런가?
그럼… 바늘로 손가락 따 볼까?
녀석의 외할머니이신
우리 엄마는 체하면 바늘로 손가락을 따 주셨다.
막내 동생이 어려서부터
툭하면 체해서 수시로 들쳐 업고 한의원으로 달려 가셨는데,
나중에는 한의사가
직접 하라며 손가락 따는 법을 알려 주셨다고.
손가락 따는 것도
제법 아파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만 엄마께 도움을 청했다.
우리집에 소화제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시험관아기 시술을
했을 때의 일이다.
난자채취 후 배아이식을
앞두고 고열이 나기 시작했고 2일 이상 지속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었고, 주치의는 이런 상태에서는 배아이식을 할 수 없으니
냉동 해 두었다가
다음달에 시술을 하자고 했다.
물론 임신 확률은
낮아지겠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쩐지 미루면
안될 것 같았고, 의사에게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고
나는 원래 감기도
몇 년에 한번 걸릴까 말까 하는 건강한 사람이니 금방 괜찮아 질 거라고
주치의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자마자 바로 엄마를 찾았다.
체한 것과 고열은
무관하다고 주치의, 내과의사, 한의사 모두 같은 의견이었지만,
나는 체한 것
같았고(과배란 호르몬제 영향으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엄마가 해결 해
주실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내 몸을 만지자마자
엄마는 꺽꺽 거리시며 “된통 체 했구먼” 하셨다.
(엄마는 체한 사람을
만지면 격하게 트림을 하신다.)
나는 기꺼이 손가락
열 개는 물론 발가락까지 모두 바늘로 땄고, 검붉은 피를 방출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열이 내렸다.
과학적 근거가
있든 없든, 플라시보 효과였든
나는 몸과 마음이 아주 평온한 상태로 배아이식을 받았고,
임신이 되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개똥이다.
개똥이에게 체했을
때는 바늘로 따는 게 최고라 설득하여 친정엄마 앞에 앉혔다.
주사를 맞을 때도
울지 않는 녀석이라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녀석은 겁을 먹었고
친정엄마는 “할머니가 살짝 만져만 줄께” 하고 녀석을 만지셨는데,
바로 격하게 트림을
하신다.
“체한 거 맞네”
그래도 녀석은
바늘로 따는 것은 무섭다며 안방 침대로 줄행랑을 치고 만다.
그래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포기하고 자려는데,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요. 배도
아프고요. 정말 바늘로 따면 안 아파요?”
“바늘로 딸 때는 아프지만, 밤새
머리 아프고 배 아픈 것 보다는 안 아플걸?”
“그럼... 나 딸래요”
친정엄마와 개똥이가
마주 앉고 나와 남편은 옆에서 응원을 하며 바늘로 손가락을 따려는데,
녀석은 자꾸 결정적인
순간에 손가락을 빼버려
바늘로 찌르기는
했으나 실패하기가 두어 번 반복되니 녀석은 짜증 만땅.
간신히 양쪽 엄지
손가락만 따고 녀석은 튄다.
뭐, 일곱 살 짜리가 이 정도도 잘 견딘 거지.
녀석을 품고 자려는데, 친정엄마께서 녀석을 설득 하신다.
“개똥아 조금만 더 하자. 너 이렇게
자면 자다가 힘들 꺼야”
“그래 손가락 조금 아픈 게 낫지, 밤새
머리 아프고 배 아프면 힘들잖아”
녀석의 눈이 망설임으로
흔들린다.
“저 나은 것 같아요” 그러더니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낫게 해 주셔서”
“정말 손가락 따서 나은 것 같아?”
“네”
“머리랑 배랑 이제 안 아파?”
“네, 안 아파요”
그리고 녀석은
평화롭게 잠이 든다. 광속으로.
정말 괜찮아져서
그런 건지, 바늘이 무서워서 괜찮다고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밤새 녀석은 아주
잘 잤으므로 전자라고 믿어 본다.
의학적 근거와
무관하게 이런 치료를 해 주시는 친정엄마가 할머니가 곁에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나에게도 녀석에게도.
강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