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걷기 시작한 15개월 아이가 미끄럼틀 계단을 오를 생각은 못하고 (편해문 선생님께서 어느 글에서 말씀하신대로) ‘올라감틀’로 올라가려고 애쓰던 순간, 이번 책 ‘놀이의 과학’을 접하지 못했다면 뒤뚱거리며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아이를 냉큼 들어 옮기며 “위험해”라고 말했을 것이다. ‘건강한 위험’이 있는 놀이가 아이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는지 반복적으로 읽고 나니, 아이가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올라가려고 하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다.
책은, ‘놀이의 과학’을 밝혀내어 ‘아이들이 좋아죽는 놀이터 만들기’를 어서 하자,로 읽힌다. 놀이는 안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고 놀이터는 그네, 미끄럼틀로 채워져 있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는데, 이런 걸 지루해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놀이가 품고 있는 아이들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하나씩 읽어갈수록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무관심했음을 알았다.
놀이의 핵심은 ‘위험 요소’다. 도로로 뛰쳐나가는 ‘위험’과는 다른 개념이다. 적절한 수준의 위험이 성장 과정의 건강한 일부를 이루며 오히려 과잉보호나 지나친 관심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한다(67쪽)고 했다. 신경과학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한계를 시험해 보면서 무엇이 안전하고 무엇이 위험한지의 기준을 확립하는” 발달 요인(69쪽)이라고 했다. 위험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는 이미 할 수 있는 것만 있으므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일 수 없고, 성공의 기회와 실패 가능성은 아이가 놀이에 몰입하도록 도와준다(106)고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한 놀이가 성공을 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고 방금 성취한 것을 계속 반복하고 싶어해 숙달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힘든 일과 마주쳤을 때 쉽게 포기해버릴 수 있다. 놀이에서 성취감을 느끼려면 아이는 순서 배열, 계획 짜기 등 추리력, 유연한 사고,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런 능력을 키우다보면 자기 조절, 만족 지연, 방해요소를 무시하는 능력, 업무 집중, 충동적인 행동의 보류 등 ‘집행 기능’(150쪽)이 향상된다. 또한 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우정’이다. 놀이터가 없어도 우정을 나누는 친구만 있다면 아이들은 언제나 재빨리 즐겁게 놀이를 한다. 더욱이 자연 그대로 놀이터라면 또 얼마나 재미날까. 저자가 지적하듯 자연을 모방한 놀이터는 자연놀이터와 다른 것이다. 문득 우리 주변에 지금 곳곳에 생기는 공원이나 놀이터는 바로 자연을 단지 모방만 한, 엉터리 자연놀이터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망감이 들었다. 그러자 저자는 다시 이제부터라도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새로운 길과 정책을 추구해야 하며, 놀이터를 좀더 넓게 ‘놀이 장소’로 생각하여 주변을 포함하자고 주장한다(250쪽).
읽기가 쉽지 않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이해 못한 부분도 많았다.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며, 위험 요소를 가진 놀이터는 아이들을 독립적이며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줄 수 있으며 우리가 이런 놀이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자극시켰다.
우선, ‘건강한 위험’과 나무, 실, 모래, 언덕 등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 어린 아기와 어린이, 청소년소녀, 어른, 어르신까지 함께 재미를 누리는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어야겠다. 이것을 실제로 재현해낼 건축가, 조경가, 예술가의 노력, 이들을 지지하고 도와줄 지자체의 관심 또한 중요해 보인다. 부모들의 놀이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미국의 예였던가. 유아를 위한 금속 반원 기구에 아이들 손이 데여서 부모들이 항의를 하고 결국은 철거된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금속 반원 기구가 뜨겁게 달궈지지 않게 가림막을 하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반원 기구에서 유아들이 어떤 놀이를 발견하고 시도해볼지 생각지도 않은 채 위험해 보이는 기구를 단번에 제거하고야 마는 방식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 기구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부모들과 대화하고 기구를 고쳐나가며, 부모들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여유를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마드리드리오’ 놀이터의 경우, 미끄럼틀 언덕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지역이 마비될 정도였는데, 계단을 더 불규칙하고 예측하기 어렵게 배치해서 미끄럼틀에 접근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언덕가지 올라가는 방법을 고민해 만든 점은 결국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선물이 되었다.
전 세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의 사진올 보고 있으면 재미있겠다, 신나겠다, 신기하다. 희안하다, 놀랍다, 부럽다, 우리도 있었으면, 하는 여러 생각들이 차 오른다. “아이들이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장소”(293쪽)를 만들 노력은 어떻게 하면 될까. 우선, 집에서도 위험 요소를 가진 놀이와 자극을 마련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되겠구나 싶다. 일본에서 아이들이 요리를 하며 칼을 사용하는 법을 일찍부터 배운다는 윤영희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그래, 아이들이 놀 때 미리 막아서지 말고, 좀 더 지켜보고 응원해주자, 그것부터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