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 끝!

자유글 조회수 4226 추천수 0 2014.06.04 22:25:35
들깨를 심는 것으로 봄의 농번기가 끝났다. 농부가 되어 맞는 두번째의 봄. 첫번째의 봄에 '마흔 중반 아저씨의 체력은 예상보다 저질'이란 걸 깨달았다면 두번째의 봄에는 '커피가 농번기 농부의 몸에 끼치는 각성 효과'에 관한 임상학적 사례를 얻었다. 시동이 꺼지려할 때마다 커피를 넣어주면 그래도 두어시간은 엔진이 더 돌아간다. 커피를 넣었는데도 원래 저질 엔진이라 헛바람만 피식거리는 경우라면 가끔 막걸리 주입. 알콜로 돌리는 엔진도 반나절은 유용하다.

그럭저럭 이러구러 또 한 번의 농번기가 끝나서 돌아보는 올해의 농사 현황. 먼저 생계용 작물.

*사과 : 우리 사과원에 다리 다친 아재네 도지 얻은 것까지 약 4,000평. 가까스로 열매솎기는 끝냈다. 헥.
*고추 :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줄인 면적이 약 1,200평 14,000포기. 어찌어찌 지주대까지는 다 세웠다. 헥헥
*옥수수 : 그래도 이건 좀 쉽더라. 심고 났더니 저 혼자 잘 크고 있다. 12,000포기. 아싸.
*감자 : 생계용이라기엔 애매한 한 마지기 300평. 그렇다고 한 마지기 감자를 집에서 다 먹지는 못할테니 팔긴 팔아야 할 텐데.
*참깨 : 심는 동안 참 깨알같은 짜증이 깨알같이 몰려오더군. 싹은 다 났는데 저걸 또 언제 솎아주나. 300평.
*들깨 : 참깨에 비하면 거저 먹는 깨농사. 그야말로 깨알같은 재미가 있지만 솎아주는 일은 매한가지. 이것도 300평.
*서리태 검정콩 : 몸에 좋다고 다들 많이 찾는다는데 안 심을 수 없지. 300평.
*쥐눈이 검정콩 : 작고 볼품없어 그렇지 밥에 넣어먹기는 서리태보다 훨씬 맛있던데. 300평.
*조 : 이거 껍질로 만든 막걸리를 더 좋아라 하지만 밥에 넣어 먹어도 맛있지. 이건 500평.
*수수 : 추수때 산비둘기가 반은 먹어치운다는데 어쨌거나 심어야 추수도 있는거지. 요건 200평.
*찹쌀 : 한 마지기 300평 찹쌀농사라고 남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논 삶고 모내기하고 할 건 다 했다구.
*팥 : 요건 아직 심을 시기가 아니라서 안 심었지만 밭장만은 해두었지. 300평.  
 
아래는 식구 먹자고 짓는 농사라 심은 뒤 나 몰라라하는 자급용 작물인데 이리 많았었나.

고구마, 땅콩, 호박, 오이, 토마토, 당귀, 곰취나물, 상추, 배추, 열무, 파, 토란, 삼채, 수박, 참외, 야콘, 호두, 매실, 자두, 복숭아, 배, 밤, 포도, 머루

그리고 고생한다고 덤으로 자연이 주시는 것들.

두릅, 옻순, 엄나무순, 취나물, 고사리, 머위, 돌나물, 미나리, 도라지, 더덕 그리고 가끔 장뇌삼.

석단 넘게 심은 고구마나 씨만 넉되가 들어간 땅콩, 작년보다 많이 달릴 게 뻔한 호두를 어떻게 식구끼리 다 먹나 생각하면 생계용과 자급용을 나누는 일은 쓸데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갈 작물이라면 아무래도 손이 한 번 더 가게 마련.

정리하고 보니 어마어마하다. 신이시여, 이걸 정말 제가 다 했나이까. 어허, 건방지구나. 커피가 반 했느니라. 아 네.

그렇게 간신히 기신기신 조마조마한 몸으로 농번기를 무사히 건넜다. 아이고 삭신이야.

- 농부 통신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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