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독일인 남편은 빵을 향한 지조가 있다. 나랑은 이혼해도 단골 빵집과는 백년해로할 거다. 인생 무슨 재미로 사나 싶게 매일 아침 메뉴가 똑같다. 아침에 밥 먹으면 온종일 속이 더부룩하단다. 저녁도 독일 전통은 원래 뜨거운 요리가 아니라 빵으로 때우는 거란다. 독일식 하드롤인 브뢰트헨(Broetchen)은 필수다. 손바닥보다 살짝 더 큰 계란형 빵인데 겉은 바삭하면서도 질기고 속은 말캉하다. 표면에 해바라기씨, 호박씨, 깨 따위를 뿌려 팔기도 한다. 담백해 먹을 만하다. 강적은 호밀로 만든 슈바르츠브로트(흑빵)다. 딱 봐도 건강에 좋게 생겼다. 빵 계의 한약 같은 맛이다. 통호밀이 듬성듬성 불친절하게 버티고 있다. 시큼 텁텁하고 혀를 갈아낼 듯 거칠다. 한국인이 외국 나가면 김치가 그립듯 독일인들은 이 빵이 아른거린단다. 이런 빵들을 대형 마트에서 사면 남편은 똥 씹은 표정을 짓는다. 이 지역에서 이대째 영업 중인 골목 빵집 슐뢰서 빵하고는 차원이 다르단다. 그에게 슐뢰서 빵이 햅쌀로 지은 솥밥이라면 마트 빵은 일회용 용기밥이다.

빵 까탈 부리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한스(72)는 한 달 전 원래 살던 동네에서 12㎞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는데 빵 사러 옛 동네까지 다닌다. 슈테파니(68)와 보도(74)는 40년 넘게 함께 사는데 빵은 내 것 네 것 섞어 먹는 법이 없다. 두 사람 단골 빵집이 다르다. 이들에게 빵맛은 대량생산으로 찍어낼 수 없는 개별적인 기억이다.

자동기계로 구워낸 브뢰트헨. 사진 김소민 제공
자동기계로 구워낸 브뢰트헨. 사진 김소민 제공
그런데 이 까다로운 입맛도 돈 앞에선 무뎌지나 보다. 내가 살고 있는 본의 한 주거지역에 올해 들어 대형 마트 두 곳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선 자동기계로 구워낸 브뢰트헨을 개당 13센트에 판다. 반죽 재료를 인도나 동유럽에서 싸게 들여와 대량으로 빚어 체인에 공급해 값을 낮춘 거다. 주인이 매일 새벽 2시께 나와 반죽 치대고 굽는 동네 빵집 슐뢰서의 브뢰트헨은 개당 30센트다. 17센트 차이 구멍에 둑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 지역신문을 보니, 본의 동네 빵집은 2000년에 43개에서 2014년 26개로 거의 반 토막 났다. 온라인 <디 차이트>에 따르면 독일 전체에서 하루에 한개꼴로 동네 빵집이 사라지고 있단다. 동네 빵집끼리도 동업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제빵사들은 대형 마트들이 빵으로 뻥친다고 본다. 빵은 반죽하는 손맛인데 기계 반죽을 해놓고 어디다 대고 빵이냐는 거다. 일간지 <디 벨트>를 보면, 열 받은 독일제빵협회는 진짜 독일 빵이 뭔지 보여주겠다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나섰다. 지난해 홈페이지 만들고 독일 전역 빵 종류를 모았는데 3552가지에 달했다. 온라인 <디 차이트>에서는 진짜 빵집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손님이 들 거라며 독자 1만5000명 추천을 받아 빵집 지도를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올해 초 인터넷 입법청원 사이트엔 “프랑스처럼 빵 반죽을 직접 하고 구워 내는 곳만 ‘베커라이’(빵집)라는 이름을 쓰도록 허용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7626명이 서명했지만 입법까지는 멀었다. 동네 빵집 슐뢰서 앞을 지날 때마다 한국의 통닭집, 피자집이 떠올라 아슬아슬하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위 내용은 2015년 4월 29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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