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도 물귀신

가족 조회수 5282 추천수 0 2012.05.16 10:19:14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한겨레 토요판] 엄마의 콤플렉스

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영주권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의아하게 여기는 분들이 적지 않다. 교수는 영주권 프로세스도 빠르다는데, 수속 비용도 학교에서 대준다는데 왜 아직도 안 했느냐며 어서 서두르라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일 때문에 머무르고 있지만 ‘영주’할 생각은 없다고 말씀드리면 한국 물정을 몰라 그런다는 핀잔이 즉각 돌아온다. 아이가 한국 가서 시달릴 걸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고 사교육 부담 때문에 등골이 휘고 아이들은 오밤중까지 학원을 전전하고 초등학생 학원에도 벌써부터 서울대반, 연고대반으로 등급이 나뉘고…. 한국 엄마 몇몇이 모이는 자리면 이런 얘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얘기가 한바퀴 돌 때마다 수위가 반 옥타브씩 높아지다가 급기야 촌지 얘기에 이르러 엄마들의 분노 게이지는 극에 달한다. 케이크 상자에 상품권을 넣어 보내는 극성 엄마들도 문제고, 적절한 “성의 표시”가 없다고 공연한 트집으로 아이를 주눅들게 하는 교사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도 문제고, 수시로 바뀌는 입시 제도도 문제고, 정치색에 따라 이리저리 널뛰는 교육행정도 문제고…. 참 문제도 많고 엽기적인 소문도 많다. 그런데 해결책이 없단다.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 말고는 이 도가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단다.

학문적으로 여러개 변인 사이의 관계를 조사할 때 다른 조건을 동일하게 하고 한가지 변인만 변화시키면서 실험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에 온 한인 집단은 이런 점에서 유의미한 대조군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미국까지 왔다는데 한인타운에는 여전히 사설학원이 즐비하고 강남에서 ‘직수입’해 온 강사들의 면면이 교민 신문에 전면 광고로 등장한다. 입시 제도도, 교육 행정도, 학교 시스템도 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인데, 한국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집착만큼은 여전히 100% 한국산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진저리를 치는 한국의 교육 문제는 입시 제도를 골백번 손본다고 해서 쉽사리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자녀 교육에 대한 열성이라고 자부했던 것이 기실은 자식의 출세에 대한 극성스런 집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성찰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해답은 없다. 상위 1%를 위해 99%에게 열패감을 안기고 열외시키는 건 교육이 아니다. 세계 최고 갑부 1위가 멕시코 통신 재벌이라고 해서 멕시코가 잘사는 나라가 되는 건 아니듯, 명문대 합격자 많이 낸다고 좋은 학교, 좋은 선생이 아니다. 아이비리그 합격생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동안 왕따와 학교폭력은 극단까지 치닫고 있다. 미쳐 돌아가는 교육 현실을 개탄하고 혐오하면서도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봐, 다른 엄마들이 하니까, 나 혼자 떳떳하자고 아이한테 상처를 주면 안 되니까”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사이 우리는 서로를 핑계 삼는 물귀신이 돼버렸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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