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가족
이혼 부부의 양육비 소송
옛 남편은 있어도
옛 아빠는 없잖아요

법원의 양육비 지급결정 어기고
남편은 이혼 뒤 8년째 ‘잠수’
그동안 아이 한번 안 찾아

외국 직장 취직에 부동산 소유
치미는 배신감…결국 법정으로

‘자기 자식인데, 어쩜 이렇게 무책임하지?’ 서은정(가명·44)씨는 아들 민호(가명·13)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럴 때마다 헤어진 남편에게 화가 난다. 부부가 이혼을 했어도 한때 사랑으로 낳은 당신 아이가 아닌가.

이혼 전 남편은 가정적이지 않았다. 술을 좋아했고 도박을 즐겼다. 매번 참는 건 서씨였다. 남편의 폭력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8년 만에 이혼 소송을 냈다. 법원에서는 서씨를 민호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했다. 아이의 복리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남편에게는 당시 5살이던 민호가 만 20살이 될 때까지 양육비로 월 50만원씩 지급하는 대신 한달에 한두번 민호를 만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서씨는 양육비가 좀 적은 것 같긴 해도 법원 결정을 받아들였다. 남편도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서씨는 민호만큼은 잘 길러보고 싶었다. 부모가 갈라섰어도 아들이 외롭게 느끼지 않도록 남편과 자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혹시나 했던 남편은 역시나였다. 이혼 뒤 민호를 처음 만나기로 한 날부터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시댁에 전화해 남편과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부탁해볼까 싶었지만 시댁과는 서로 잊고 살아야 할 사이였다. 시댁 식구들과는 남남이 된 지 오래였다. 서씨는 그런 시댁에 연락해 남편행방이며 양육비 문제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댁에서 손자 소식이라도 궁금해하길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시댁은 민호마저 찾지 않았다. 서씨는 그날 밤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어린 민호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주룩주룩 굵은 눈물방울이 그치지 않았다.

언제쯤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틈만 나면 통장을 확인한 지도 8년이 지났다. 서씨가 남편과 이혼할 때 5살이던 민호는 13살이 됐다. 그동안 서씨 혼자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버는 돈으로 아들을 키웠다. 민호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가게 문을 열었다. 하루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생활은 늘 빠듯했다. 민호는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워낙 어릴 때 헤어져서인지 아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별다른 탈 없이 잘 자라준 민호가 고맙지만,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오면 얼마나 예민해질지 서씨는 벌써부터 그게 걱정이다.

남편과 함께 살았던 8년의 결혼생활만큼 혼자 아들을 키운 8년도 버티기 힘들었다. 이혼을 했는데도 전남편에게 양육비를 달라며 연락을 하는 데 너무나 지쳐버렸다. 상담소에 물어보니 양육비 소송은 대부분 원고가 승리하고 금액 정도가 조정된다고 해 힘을 냈다. 남편이 집을 나갔던 2002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민호의 양육비는 총 6500만원에 이르렀다. 2009년 11월 이후 실시된 재산명시제도(소송 시 당사자가 직접 재산을 기록하도록 하는 제도) 덕분에 연락도 안 되는 전남편이 외국에 있는 직장에 취직했고, 1억원에 상당하는 본인 명의의 부동산도 갖고 있는 것도 알게 됐다. 배신감에 사무쳤다. 서씨는 지금 전남편에게서 양육비를 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이혼 소송에 이어 두번째 소송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 “양육비 떼먹히면 국가가 대신 내줘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말을 들어보면 양육비 소송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 336건이던 면접상담 수가 지난해 436건으로 늘었다. 아이를 양육할 1차적 책임이야 부모에게 있지만, 사회의 책임은 없을까.

우리나라 가사소송법 64조 1항에 보면 정당한 이유 없이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할 경우 법원에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명령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또다시 이행명령을 위반하게 되면 위반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국가에 내야 하고 그래도 주지 않을 경우 30일 범위 내에서 감치결정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양육비를 주기로 한 부모가 안정적인 소득이 없는 경우다. 정규직일 경우 급여에서 원천징수를 하면 쉽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양육비 소송 대상의 50% 이상이 소득이 불안정하다. 비정규직이거나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양육비를 감당할 만큼의 재산이 없는 부모가 절반 이상이라는 게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2부장의 말이다. “양육비를 받으려야 받을 돈이 없을 땐 아무도 아이를 책임질 수가 없어요.” 아이는 불가피하게 기본적인 영양 섭취,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할 상황까지 놓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일정 기간 양육비를 국가가 선급하고 나중에 부모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자는 주장이 있다. 2005년 17대 국회에서 김재경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폐기된 ‘양육비 채권 이행 확보 및 선급 특별법안’을 보면 “정당한 이유 없이 3번 이상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 국가나 지자체에 양육비의 선급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게 법안의 요지였다. 2009년 6월 18대 국회에서도 강명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양육비 대지급법안’을 보면 약 1540억원의 국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혼가정 중 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비혼가정만이라도 지원하도록 한 ‘비혼가정의 양육비 및 부양료 확보에 관한 법률안’도 지난해 12월 우윤근 의원 이름으로 발의된 바 있다.

외국은 이혼 뒤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 행위를 범죄로 본다. 오스트리아 형법 198조 제1~2항을 보면 부양의무를 위반하면 징역 6개월 이하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또 부양의무 위반으로 자녀의 건강, 신체 또는 정신발달에 현저한 손상이 가해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자녀가 사망한 경우는 3년 이하의 징역이 내려진다. 스위스도 형법 제217조 1항에 의하면 부양 능력이 있으면서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는 징역 3년까지 처벌받는다.(2004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양육비 이행확보 법률안 및 부부재산제개정안 공청회’ 중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상용 교수의 발표 참고) 감치가 최고 형벌인 우리와는 다르다.

박소현 2부장은 제도와 문화 모두 양육의 책임을 촉구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성년 자녀의 양육 책임은 부부 공동으로 있어요. 이혼했다고 그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는 부모가 여전히 많아요. 제도적으로도 양육비를 강제할 규정을 만들어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도록 촉구해야겠죠. 애를 혼자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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