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시 반쯤 성민이 젖 먹이는 데 알람 아닌 전화가 왔다. 생협 기사님이 배달 오셨다. 현, 준이 일개미들처럼 두부며 우유, 도토리묵, 소고기, 우묵가사리, 비누, 주방세제....들어다 나른다.
1. 그들은 오늘도 출근했다.
그림 그리는 작가라며 씨익 웃는 현이다.
물고기의 각 특징을 잘 표현한다는 그이의 평이 맞나. 나도 고슴도치 애미니. 잘 그리기는 잘 그리네. 두현이가 끄적인 그림들 묶어 책 만들어 봐도 재미있겠다.
2. 닥터수스의 내용이 재미있다며 까르륵 웃는다. 좋아하는 책이 생기면 꾸준히 보는 현이다. 그러고 보면 자식은 부모 닮는다는 말이 맞는가. 낮잠 달게 자고 뭐하긴 그렇고 해서 쇼파서 앉자 책 보는 내 모습이다. 늘 먼저 부시시 일어나는 현이가 애미 모습을 눈여겨 본 모양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한다.
예쁘다. 사랑스런 내 아이들이다.
3. 저 혼자 거위 사료 퍼서 거위 먹이 보충한다. 두현이의 손끝이....말끔하다.
혹여 가루라도 떨어질까 손까지 받쳐 담는 모습을 밖에 나가면서 보게되었다.
아마 내 농사를 짓는 이였으면 우리 집 일꾼들 최고로 꼽을 것이다.
현, 준 척척척이다.
물 갈아주고 사료
보충한다.
이제는 더 이상 병아리가 아니다.
우리 성민이가 나날이 자라듯 거위도
날이 갈수록 인물난다.
언젠가는
탈출할듯...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4. 땡볕아래
한 낮이다. 물 한모금씩 마셔가며 땀 뻘뻘 흐리며 노는 에너자이져들이다.
거위 밥 주고 놀다보니 한 시간 훌쩍이다.
잘 놀던 성민이는 저도 같이 하고프다 늘 이야기 한다. 어떻게 씻기지 고민하면서 온수 눌러놓고 들어오라고 말하고는 잠시 점심 준비하는사이에....
사건의 시작은 민준이가 방충망 문을 열었다. 그러자 현이가 벌레나 벌이 들어가면 아프니 닫아라 다시 열지 마라라 말하고는 말을 듣지 않아 저 혼자 집으로 들어 왔단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민준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혹여 하는 마음이 들어 달려갔더니 다친데는 없었지만 순간 문이 닫히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괜찮다 우리집이니 괜찮다 달랬다. 내 얼굴 안 봐도 미운 모습일테다. 방충망이야기는 어느 순간 묻히고 현관문을 닫아 왜 민준이를 걱정하게 했는지를 순간 다그쳤다.
온 집안이 울음바다다. 다 그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운다. 나도 엉엉 울었다. 어찌 헤쳐나갈꼬.
강같은 평화는 내게 다시 찾아왔다.
5. 새우볶음밥 점심 메뉴를 전 날 주문한 민준이다.
오통통한 새우 수십마리 잡았다. 달달한 양파, 김장 김치로 간해서 들기름에 달달 볶아 맛나게 먹었다.
낮잠 그리고 달달한 바나나에 우유넣어 갈아 한 잔씩 마시고 살랑거리는 오후 바람 쐬러 나갔다. 빨간 앵두 서너개 따먹고는 현, 준이 온 세상을 가진 듯한 기쁜 모습이다.
성민이는 거즈 이불에 돌돌 싸여 애미 품에 안겨 자고 난 땡볕 아래 엉글어가는 갖가지 채소 구경하며 잠시 평온을 느꼈다. 이웃 어르신께서 갓 캔 감자와 애호박으로 여유없는 내게 넉넉함을 깨달게 해 주셨다.
6. 타박한 감자맛이 일품이다. 저녁끼니로 최고다.
감자 두어개와 고기 한 점, 매실 쥬스, 주먹만한 토마토로 저녁상 차렸다.
좁아터진 소가지로 내 가슴을 치며 하루 되돌아본다.
이 애미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내 감사하게 여기리라. 잘 알고 있건만.
by.네이버 블로그 초록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