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집. 한겨레신문 자료 사진.
요즘 한국의 뉴스에서 전해듣는 좋지 못한 소식들에 마음이 무겁다. 잊을만 하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어린이집 학대와 사건사고들. 요즘 재벌과 있는 자들의 갑질논란과 함께 어른들이 약자인 아이들에게 폭력과 권력을 휘두르는 것 또한 그 연장선이지 않을까 싶다.
유아교육과에 다니던 대학시절 공교육과 무상교육을 위해 집회를 했던 것이 15년 전이다. 미흡하게나마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지만, 학령기 전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총체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관리하는 부처, 시설 설립조건, 운영사항, 교사 양성체계, 연수체계, 급여 등의 관리 체계가 다르다. 하지만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기능면에서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유치원에서도 종일반을 운영하면서 연장보육을 실시하고 있고, 누리교육과정을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이들이 같은 내용의 교육을 받고 있다. 이러한 관리와 기능 자체의 모순은 여러가지 혼란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관련 부처와 관련 단체의 권익들이 얽혀서 합의점을 모색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교사로써, 그리고 지금은 부모의 입장에서 또한 일본과 미국에서 아이들의 보육현장을 경험하면서 '교사와 부모 아이 모두가 행복한' 보육현장을 늘 꿈꿔왔다.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어른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질책하는 분위기보다는 서로의 어려움과 고충을 알고 돕는 분위기를 통해 교사, 부모, 기관이 앞장서서 보육현장의 변화를 주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행복한 보육교사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의사 결정권을 가진 보육교사는 어떠한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도 철저한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근무해야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들의 과중한 업무와 높은 스트레스 지수는 그들의 올바른 판단력과 자제력을 위협할 수 있다. 교사대 아동수를 제한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종일 보육이 이루어지는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두 명의 교사가 한반을 운영하는 투담임제가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혼교사와 미혼교사를 또는 경력교사와 신입교사를 함께 배치해서, 유연성있게 근무시간을 조절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기혼교사들은 늘 고민에 휩싸인다. 남의 아이를 돌보면서 내 아이의 학교 행사에 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괴로워한다. 여자들이 근무하는 보육현장이 앞장서서 그녀들의 육아와 가정생활도 배려해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보육교사 인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대체교사를 활용하는 방법은 어떨까? 현재 현장근무를 쉬고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지역별로 관리해서 보육시설에서 요구하면 배치해주어 아이들의 보육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토토로네 둘째 딸이 다녔던 미국의 프리스쿨에서는 투담임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병가로 인해 한명의 담임이 쉴 경우 다른 대체교사가 배치되어 두 명의 교사가 항상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또한 두 교사가 업무를 분담해서 운영하니 업무량이 한결 줄어 야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점심시간동안 교사도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 한명을 먹이는 것도 전쟁이다. 특히 만 5세 이전의 식생활 습관이 자리잡지 않은 어린 아이들의 경우 교사 한명이 10명남짓한 아이들의 점심시간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가 있다. 교사시절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소화불량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아이들 밥 먹는 것 준비하고 챙기고 편식지도를 하느라 정작 내 식사는 빨리 헤치워야만 했다. 그때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후 차 한잔의 여유를 많이 부러워했었다. 점심시간 만큼은 부모들의 자원봉사가 실시되었으면 한다. 부모들이 점심시간을 관리감독하게되면 급식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도 줄어들 것이고, 교사의 식사지도와 관련된 부담을 덜어준다는 의미에서 환영할만하지 않을까? 교사들은 여유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잠깐의 휴식을 통해 재충전의 기회를 활용하게 되어 오후에 이루어지는 보육현장이 한결 생동감있게 이루어지리라 본다.
다양한 선택권을 가진 부모들
어린이집이 맞벌이 부모들을 우선 배려해야한다는 것에는 반대의 여지가 없다. 오전과 오후의 연장 보육, 24시간 보육, 직장 보육시설의 확충과 같이 맞벌이 부모들이 근무 시간에 따라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이 앞으로도 다양하게 제공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현재 무상보육을 명시한 보육비 지원이 일괄적으로 보육기관에 전달되어지면서 집에서 충분히 양육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모두 보육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아동수당은 부모에게 지급되어야하며, 전업맘들이 아이를 즐겁게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풍요롭게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에서 두 딸들을 모두 세살까지 기관에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 동네의 '아동관'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아파트로 치면 관리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아동관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만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고, 그 곳에는 전문 보육사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연령별 활동을 달별로 계획해서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매일 모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놀이방은 늘 개방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가서 놀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0~2세의 경우는 베이비 마사지, 보건소 직원의 영아 건강, 이유식과 관련된 강의 등으로 주로 부모들에게 좋은 내용을 소개해주는 형식이었고, 일주일에 한번 자유참가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3세~취학전 연령은 3월초 참가자 신청을 통해 접수를 받아 연령별로 1년동안 활동이 진행되었다. 한조에 5~6명의 아이들을 배치해서 조를 구성해주었는데, 그러면 한주씩 조별로 담당을 맡아 그 주의 활동, 장소, 재료를 논의해서 발표한다. 그러면 보육사는 여러가지 재료들을 지원해주고, 엄마들이 서로 역할을 분담해서 활동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장소는 공원이었고, 아이들이 놀이를 한 후 항상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는데, 점심준비가 번거롭다기보다는 함께 다른 엄마들과 분담해서 해 먹는 재미가 솔솔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어 그 날의 점심메뉴가 '우동'이라면 보육사는 우동면을 만들 밀가루와 밀대, 큰 냄비 등을 제공해주었고, 엄마들은 우동에 들어갈 재료들을 하나씩 나누어서 가져오는 식이었다. 그리고 아동관 전용 텃밭이 있어서 계절별로 텃밭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한번 모임에 재료값 5천원 정도로 정말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멍석을 깔아주니 동네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육아공동체가 형성되어 아동관에서의 활동 외에도 때때로 소풍이나 체험들을 함께 하며 3년의 시간을 풍요롭게 보냈다.
그리고 일반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전업맘들이 일시 보육이라는 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었다. 급한 용무가 있을 때 당장 아이를 맡아줄 곳이 없는 전업맘은 당혹스럽다. 그럴때 인근 어린이집에 일일 보육을 신청할 수 있고, 시간당 계산해서 돈을 지불하거나, 구에서 연결해주는 베이비시터를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직장맘과 전업맘이 각자의 상황이 배려된 환경 속에서 즐겁게 육아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동권익을 존중받는 아이들
아이들이 하루종일 좁은 매트 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한글과 수 공부를 한다는 소식은 정말 안타깝다. 게다가 한글과 수 공부를 잘 따라하지 못한다고 맞기까지야. 아이들은 신나게 놀 권리가 있다. 아이들에게 몸을 움직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언의 폭력과 같다. 실내와 실외 활동이 적절하게 균형되어 이루어져야하며, 어린 영아들의 경우는 대집단 활동을 강요하기보다는 개별 혹은 소집단으로 활동을 진행하면서, 자유롭게 탐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점심시간과 낮잠시간에 있어서 아이들마다의 개인차가 크다. 낮잠을 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기보다는 옆에서 조용히 놀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교사는 아동학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이해를 통해 어떤 종류의 학대도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교사뿐이 아니다. 부모 또한 부모라는 이름으로 은연중에 행해지는 학대가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신체적인 학대만이 학대가 아니다. 언어적인 폭력 또한 우리 주변에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아이를 내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고 존중해야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부모와 교사는 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을 유의해야하며, 아동의 권익보호를 위해 사회적으로 강력한 법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늘 아이들을 키우면서 훈육이라는 단계에 봉착한다. 훈육의 방법과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부모인 우리들 또한 이번 학대 사건을 마주하면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이다. 미국 학교를 보면 훈육도 철저한 매뉴얼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기초 아이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지켜져야하는 행동 목록들이 부모들에게 안내된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그러한 행동들에 대한 평가가 매일매일 색깔로 부모에게 안내가 이루어진다. 보라-분홍-파랑-초록-노랑-주황-빨강순으로 초록까지는 잘 지키며 생활했다는 수준이지만 노랑부터는 몇번 항목에 대한 규칙위반이었는지가 명시되어 부모알림장에 안내된다. 빨강이 되면 부모면담을 요청하고, 부모는 학교에 출석해서 아이의 상황을 전달받고 교사와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큰 아이들의 경우는 담임 선에서의 경고가 넘어서면 교장 면담, 그 후도 시정이 안되면 부모 면담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따라서 교사가 흥분해서 체벌을 하고 벌을 세우거나 몇시간이나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주어진 절차대로 진행하면서 아이의 훈육을 지도하고 있었다. 우리도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면서 훈육의 방법을 연령별로 연구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보육기관
우리나라의 보육기관은 참 폐쇄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아무때나 가서 아이의 모습을 참관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방문이 어렵다. 이러한 곳에 CCTV설치를 의무화해서 감시 감독을 더 철저히 하고, 평가인증을 강화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것은 보육기관을 불신하면서 음지로 더욱더 내보는 정책이 아닐까 우려가 된다. 과연 보육기관에 대한 감시감독을 높인다고 해서 나아질 문제일까?
오히려 평가인증으로 교사들의 서류업무를 과중하게 부가하고 형식적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보육전문가가 정기적으로 해당원을 방문해서 보육환경, 교사의 상호작용, 안전과 관련해서 멘토링을 해주는 것이 좀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정 어린이집의 경우는 협소한 장소로 인해 어렵겠지만, 국공립과 같은 큰 보육기관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행사를 지역주민들도 초대하는 방향으로 개방을 했으면 좋겠다. 일본의 어린이집에서는 운동회, 바자회, 축제 등에 동네 아이들도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어떤 사립 유치원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실외 놀이터를 개방해서 동네 어린 동생들이 유치원생 언니 오빠와 함께 놀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주었다. 그래서 토토로네 두딸들은 자주 집근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놀러를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관찰하고, 환경, 원의 운영방침을 직접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이 보육기관에 많이 참여를 했으면 좋겠다. 이처럼 보육기관이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지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우려져서 개방적인 분위기로 운영되어질 때, 보육현장의 미래가 더욱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개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 어른들이, 우리 교사들이, 우리 부모들이 앞장서서 하나씩 바꾸어 나가보자. 사랑스러운 우리의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