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해 봄 경기도 한 시골로 옮겨간 사진가 이상엽씨의 시골집 앞에서 식구들이 자세를 취했다. 왼쪽부터 이씨, 둘째 은지, 큰아들 현우, 홍혜경씨, 그리고 막내 은우.

[한겨레 esc] 살고 싶은 집
아파트 팔고 용인 전세 주택으로 옮긴 사진가 이상엽씨의 담장 없는 마당집

실내 마루에서 테라스로 트인 
앞마당에서 외부로 활짝 트여있는 집 
잔디밭에 토끼 뛰어다니고 
텃밭에는 토마토, 고추, 옥수수 키워 
10년만에 돌아온 ‘무주택자’ 
전셋값 불안 있지만 지금 행복에 집중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르포라이터 이상엽(47)씨는 지난해 3월, 평생 살아온 서울을 등지고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의 작은 시골 같은 동네로 이사했다. 그해 초 한달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진 터였다. 바쁘게 사느라 몸에 이상이 생긴 줄도 몰랐다. 퇴원하자마자 온 가족이 먼저 이사해 있던 이 집으로 몸을 옮겼다. 결혼 10년 만에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장만해 살다가 다시 9년 반 만에 ‘무주택자’가 돼 주택 전세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삶터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자연스럽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오래 탐구해온 그의 궤적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이씨는 자칭 “아웃도어를 싫어하는 도심형 사진가”다. 중국 서북쪽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사막 파미르고원, 광활한 뤄얼가이 초원, 차마고도, 윈난성까지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왔지만 시골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산다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부부 모두 서울에서 태어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아온 터라 시골의 삶은 낯설기만 했다.

2 마당과 이어진 마루에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한다.

이사간 그의 집은 지하철 분당선 미금역에서 내려서도 마을버스로 다시 30분, 택시로는 20분가량을 계곡을 끼고 더 들어가야 한다. 대지 397㎡(120평), 건평 122㎡(37평)의 아담한 집이다. 작은 펜션같이 생긴 단출한 외관에 방 3개, 부엌 겸 거실, 목욕탕 하나다. 특이한 점은 집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담장도 울타리도 없는 집의 현관은 골목 쪽으로 나 있다. 하지만 집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현관이 아니라 집 측면으로 난 마당이다. 실내 마루에서 테라스가 연장돼 있고, 이는 다시 앞마당 잔디밭과 이어진다. 가족들은 골목 쪽으로 난 현관을 놔두고 마당 쪽 마루의 창을 현관 삼아 드나든다. 바로 이어진 테라스까지 맨발로 오가면서 길냥이 밥도 주고, 테라스 식탁에서 밥도 먹고, 빨래도 널고 걷는다. 건물이 땅에서 너무 높게 올라앉아 있지 않기 때문에 몇발자국만으로 자연스럽게 땅으로 나왔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다.

앞마당 잔디 위엔 작은 울타리 안에서 호시탐탐 탈출을 꿈꾸는 집토끼 두마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낯선 자를 경계했다. 뒷마당 그늘에 앉은, 덩치가 산만한 반려견 ‘쫑이’는 어미가 리트리버종인 대형견인데, 손님을 보자 애교 부리듯 껑충 뛰며 달려들었다. 이씨는 “쫑이가 출산했을 때 산후조리용으로 닭에, 계곡에서 잡아온 갈겨니로 매운탕까지 해먹였다”고 했다. 새끼까지 함께 풀어놓으려고 목돈 들여 울타리를 만들 계획이다. 집 앞뒤 텃밭에는 토란, 생강, 고추, 토마토,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특히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린 토마토는 ‘노다지’였다. “군데군데 갈라지고 터져서 상품성이 없다”고 했지만 껍질이 얇고 달았다. 서울 출신 초보 농사꾼이 ‘태평농법’으로 지어낸 첫 수확치고는 제법 크기도 모양도 근사했다.

지금은 텃밭을 일구며 집 근처 계곡에서 낚시도 하고 강아지나 길고양이까지 익숙하게 거둬먹이지만, 처음엔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앞뒷마당이 있는 주택은 손이 많이 갔고, 어디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직접 처리할 줄도 알아야 했다. 장딴지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폭설이 쏟아질 때면 한시간에 두어번 들어오는 마을버스가 끊겨 고립되었다. 결국 부부가 결혼하며 절대 사지 말자고 약속했던 소형차를 한대 구입했다. 이씨가 ‘고기리 홍여사’라 일컫는 아내 홍혜경(45)씨는 “사람이 뭔가 결심하고 지킨다는 게 맘만큼 쉽지만은 않더라”고 말했다.

3 앞마당에서 토끼를 돌보는 은우.

가장 큰 이유는 맏이 현우(18)의 학교 때문이었다. 서울 도심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근처에 있는 한 혁신형 특성화학교에 편입학을 했다. 이씨는 아이 교육 때문에 온 가족의 이사를 감행한 줄 알지만, 사실 ‘고기리 홍여사’는 남몰래 시골살림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는 원래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이 아빠가 공교육을 고집했어요. 마침 눈여겨보던 학교가 미인가 대안학교에서 인가 학교로 바뀌었고, 비싼 학비 걱정이 사라져 아이 학교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을 떠나는 계기로 삼았죠. 전 고층아파트에서 아등바등 사는 게 싫었거든요.”

어차피 서울에선 세 아이 교육비 문제가 너무 컸다. 소외된 삶에 관심을 갖는 ‘까칠한 다큐 사진가’로서 중산층이나 월급쟁이 동년배처럼 자산규모를 불릴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지난 5년은 “사진가라는 외피를 벗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보겠다”며 진보 정당에 뛰어들어 적극적인 활동도 했다. ‘내 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것도 시골 전세살이의 이유를 보탰다. 빈곤·환경·생태·공동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씨 부부의 생각과 삶이 더욱 통합적으로 바뀐 셈이다. “결혼 뒤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 집’을 샀어요. 살다 보니 집을 가져서 더 묶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내 집을 가져본 경험도 있으니 홀가분하게 살겠다며 ‘무주택자’로 돌아왔는데 역시나 또 주거불안정 문제가 있긴 합니다. 전셋값이 워낙 들쑥날쑥하니까요.”(이상엽)

4 농약을 치지 않고 ‘태평농법’으로 키우는 토마토. 껍질이 얇고 맛이 순하다.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법, 식구들은 그냥 ‘지금 여기’에서 각자 놀이터를 잘 찾아냈다. 특히 고기리의 자연환경은 큰 선물이었다. 집 근처에는 광교산, 동막천, 낙생저수지가 있다. 물 맑은 계곡에는 깨끗한 1급수 지표종인 버들치가 살고, 이씨는 흐르는 물속에 들어가 얼레를 풀었다 죄었다 하는 전통낚시의 하나인 ‘견지낚시’의 달인이 됐다. ‘홍여사’는 인문학 네트워크에서 공부하고, 둘째 은지(14)는 학교 앞 사설 도서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다. 막내 은우(8)는 말할 것도 없이 ‘야생 소년’으로 금세 적응했다. 첫째 현우는 대입 스트레스가 만만찮다지만, 다른 고3들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아버지를 닮은 ‘도시형’ 큰아들은 시골에 완전 적응한 ‘낚시꾼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도 숨기지 않았다. “아빠는 처음에 저랑 이사를 반대하셨다가 낚시 때문에 찬성으로 돌아섰죠. 아예 물고기에 빠져서 막내랑 콤비를 이뤄 비가 와서 물만 불면 고기가 많다고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버들치를 잡아선 어항에 넣고 키우기까지 한다니까요.”

막내 은우는 이사온 뒤 가족 중 제일 신이 났다. 사교육은커녕 테라스 난간 위에서 균형잡기, 잠자리채 들고 곤충 잡기, 나무 열매 따먹기, 계곡에서 물놀이며 낚시 하기, 거북이·가재·물고기·토끼 먹이 주기…. 놀다 보면 하루가 정말 짧다.

“(형과 다르게) 저는 이 집 좋아요. 토끼한테는 상추·배추·고추같이 ‘추’자가 들어간 건 주면 안 된대요. 엄마가 가르쳐줬어요. 지난번엔 거북이 밥 주려는데 말린 새우통에서 멸치가 나왔어요. 가재랑 사마귀 얘기는 신문에 안 써요? 여기 사마귀가 다른 사마귀 잡아먹다 남은 거 있는데…. (허리가 반토막 난 채집통의 곤충을 보여준다.) 왜 비명 질러요?”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신문 2013년 8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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