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는 평소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음료수를 먹기 위해 실내놀이터에 놀러 가자고 한다.

주된 목적이야 주말이면 극에 달하는 심심한 본인의 일상을 달래기 위한 것이겠지마는, 실내놀이터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허용적이 되는 엄마 아빠의 패턴을 이미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여하튼 이번 주말에도 실내놀이터를 부르짖으며 만만한 엄마를 동행자로 선택하셨다. 실내놀이터에 도착하자 마자, 이 녀석의 생각이 온통 진열대 안에 있는 음료수를 향해 있음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잔머리를 쓰긴 하지만, 아이의 눈빛은 아직 순수하다. 다 들킨다 ㅋㅋ

애써 모른 척 하며, 이번은 진짜 ‘쿠우’를 사주지 않겠다 다짐했다.

 

9시 뉴스가 그랬는지, 이영돈 PD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린이에게 해로운 음료의 대표명사가 되어버린 그 음료가 모든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나의 결심에 치명적이었다. 나도 “대세에 따르는” 타협적인 엄마다. 오롯이, 꼿꼿하게 소신을 지키기가 힘들었다.

문득 그냥 해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꼬리를 무는 (내 나름의)호기로운 제안 하나.

“저기 카운터 이모에게 가서 음료수가 얼마인지 물어보고 알려주면, 엄마가 그 음료수를 살 수 있는 돈을 줄게”

 

나는 만4살 무렵부터 간단한 심부름을 시작했다. 동생을 가진 엄마를 위한 간식거리를 종종 사오곤 했던 것. 그에 반해 요즘 아이들은 심부름을 시작하는 나이가 늦다. 시절이 하수상한 탓(?)도 있을 테지만, ‘왠지 부모 탓도 있을 것 같다’는 번뜩이는 반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꼬마는 ‘이까짓 것’ 하는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출발하며 돌아서더니, 서른 번쯤 도로 내게 와서는 가격을 알아보고 오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뭐라고 말 해야 하죠, 부끄러워요, 저 누나가 나를 안보고 어른들 말 밖에 안 들어요” 등등..

그 중 절반 이상은 카운터에 있는 점원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돌아온 것이었다.

 

왜 너는 그것밖에 못하니!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수많은 멘토들의 충고를 곱씹으며, 윽박지르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나도 친정 엄마가 “이제 이 정도는 혼자 해봐”하시며 나 혼자 해야 할 미션을 주셨을 때 즈음,

‘넌 왜 다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니!! 그것도 못해!’ 하는 핀잔이 얼마나 나를 더 주눅들게 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카운터에 가기까지 한 시간은 걸렸을 텐데,

아쉽게도 꼬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서럽게 내 품에 와서 울었다.

“아줌마가 안된대!”

 

마트 실내놀이터는 장을 보러 온 부모들이 보통 아이를 맡기고 음료수 값을 미리 결제 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래서 아이들의 가슴팍에는 이름, 간식 값 선불 여부 등이 찍힌 스티커가 붙여진다.

꼬마의 가슴팍에는 당연히 음료수 선불x 가 찍혀 있었으니, 담당자가 당돌하게 카운터에 와서 음료수 얼마냐며 탐내는 아이의 욕망을 단호하게 저지했던가 보다.

“안돼. 나오지 말고 들어가야지!”하며 다소 무서운 인상의 아줌마가 말하니, 너무나도 열심히 용기를 냈던 꼬마는 순간 당황하고 속상해서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도전한 홀로서기의 첫 시도에서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카운터로 갔다.

사정 설명을 듣고서야 그 담당자는 매우 미안해 했다.

꼬마 정도의 아이가 혼자 와서 음료수 값을 묻고 지불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도 통제하려고만 했다며. 얼마냐고 물어보았고, 어떤 음료수를 마시고 싶은지 확실히 의사표현 잘해준 거 맞다고.. 뒷수습을 해주셨다. 그야말로 ‘뒷’^^;;

아이들이 심부름을 일찍 시작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른들의 불친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과잉친절이거나~

 

꼬마는 다행히 트라우마가 생기기 전에 막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좌절의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재우면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봐야겠다.

한 번에 되는 일이 어디 있겠니..

너에겐 오늘의 노력이 엄청난 시도였음을, 정말 젖 먹던 힘을 다 해서 용기 냈다는 것을 엄마가 알아.

다음 번엔 더 지지해 줄께. 자랑스럽고, 수고했다 꼬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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