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예기치 않은, 사소한 순간이 오래도록 머리를 떠나지 않기도 한다. 며칠 전이었다.
아는 분이 아빠 육아가 궁금하다며 연락을 했다.
“제가 사무실로 갈까요?”
“아니요. 아이 노는 것도 보고 싶고.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내가 사는 곳은 직접 보지 않으면 잘 믿기 어려운 동막골 같은 동네다. 겉보기에는 그저 그런 아파트 단지일 뿐이다. 그러나 아파트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파트 스무 동이 에워싼 커다란 숲을 만난다. 딸아이와 나의 놀이터다. 한겨울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는 소리가 들리고 여름에는 텐트를 치고 수박을 먹는다. 넓은 앞마당이라고나 할까.
“놀이터로 가요. 거기 좋아요.”
지인과 함께 놀이터 의자에 앉았다.
“이 놀이터가 아이와 자주 오는 곳이예요. 늘 이 의자에는 엄마들 대여섯 명이 진을 치고 있죠. 제가 처음 평일 낮에 딸아이 손을 잡고 왔을 때 엄마들 시선이 일시에 쏠리더라고요.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아마 엄마들끼리 이러쿵저러쿵 했겠죠. 그 시선에서 자유로와지는데 꽤 시간이 걸렸어요.”
아빠 육아가 이렇다는 둥, 저렇다는 둥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보니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서령이는 놀이터 붉은색 전용 그네로 갔다. 몇 번 타더니 내려왔다.
“아빠,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
늘 그렇듯 목마를 타고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오늘 따라 친구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친구들이 다 집으로 갔나봐.”
“나 심심해.”
“그럼 운동장으로 가서 놀까?”
운동장에서 서령이 손을 잡고 빙빙 돌렸다. 손을 놓고 둘 다 운동장에 쓰러져 깔깔 거렸다. 그리고 운동장에 벌렁 누워 서령이 비행기를 태웠다.
“떴다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비행기”
“평소에도 이렇게 놀아요?”
“그럼요 이렇게 놀죠”
“주위 사람 눈치 보이지 않아요?나 : 처음에는 그랬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렇게 놀아야 논 듯한 기분이 들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유치하고 오글거릴 수도 있겠죠.”
어디선가 서령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령아!”
00이 엄마였다. 전에 한 두 번 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돗자리에 앉았다. 서령이는 쏜살같이 뛰어갔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서령이는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다. 아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이들과 놀면서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운동장 운동장 보도블록에 주저 앉은 아이들, 손에는 백묵을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이건 리본이예요.”
한 아이가 리본을 그리자 다들 더 큰 리본을 그리려고 난리가 났다. 붉은색 보도블록에는 금새 리본들이 나풀거렸다. 다시 한 아이가 공주를 그렸다. 이번에는 공주를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구경을 하는 내게 아이들이 다가와 공주들을 소개 했다.
“이건 오로라 공주예요. 난 백설공주예요. 난 튜리공주.”
아이들은 이다지도 공주를 좋아한다지? 서령이 뿐만이 아니었다. 보도블록은 순식간에 공주들이 춤을 추었다. 00이 엄마가 말했다.
“백묵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리기도 쉽고 금방 지워져서 좋아요.”
아이들이 낙서를 하는 모습을 보자니 뭉클했다. 이런 모습을 본지 얼마나 됐을까. 나 어릴 때에는 늘 그랬는데. 이제 이 모습이 신기한 세상이 되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바깥 공간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놀이터와 친구들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놀이터를 집 안으로 옮겼다. 부모들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밤낮 없이 돈을 버느라 아이들 친구가 될 수 없었다. 대신 아이들 품에 장난감을 안겨주었다. 그것이 지능과 창의성 높일 수 있다고 믿으며. 지인이 내게 말했다.
“아파트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해요.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도 들리고.”
“쉽게 볼 수는 없죠.”
아이를 키우며 지금이 정말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인지 반문 할 때가 많다. 집밖은 늘 불안하고 집 안은 창의성을 키운다는 온갖 장난감으로 포위되지는 않았는지. 책으로 바람소리를 듣고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도 그저 그림으로만 익히는 건 아닌지.
해가 넘어가고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아이들은 부모들의 성화에 못이겨 자리를 떠났다. 붉은 트랙에는 아이들 깔깔 웃음소리만 남았다. 그날 저녁 아이들 낙서하는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 후 인근 동네에서 아이들 마을 잔치를 열었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손에서 백묵을 놓지 않았다. 큰 아이나 작은 아이나 그랬다. 서령이도 다른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놀이기구가 없어도 좋다. 그저 앞마당 같은 작은 공간만이라도 있다면 그곳이 아이들의 놀이 천국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