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se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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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 가족
8학년 엄마와 5학년 딸
▶ 여든두살 엄마와 쉰여섯 딸이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았습니다. 함께 노화를 경험하고 있지만 엄마와 딸의 속도는 다릅니다. 딸보다 생의 마지막에 가까이 다가선 엄마의 기억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았다는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고 말이 우둔해진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늙음에 대해, 늙음을 경험하는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대화하는 두 사람이 어쩐지 아름답습니다. 인터뷰; 가족 투고는 gajok@hani.co.kr

퍽!퍽! 퍽!퍽!퍽! ‘뭐야?’ 놀라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엄마가 침대 위 이불을 패고 있다. 손에 쥔 먼지떨이용 막대기로 보아 청소하다 일어난 변화다. 재빨리 좀 전까지의 아침 풍경을 떠올린다. 짚이는 이유가 없다. 늘 그렇듯 드라마도 양껏 시청했는데….

여든두살 엄마가 떼쓰듯 폭력적일 때는 셋 중 하나다. 도대체 생각이 안 나 말을 할 수 없어 와락 치매가 걱정될 때, 딸이 무심코 던진 말 한 조각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힐 때, 난데없이 우울해져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날뛸 때다. 어떤 경우든 입 다물고 지켜보는 게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연세가 들수록 건망증이 심해져 두려워하는 엄마와 며칠 전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와 나는 죽음에 대해 가볍게, 그리고 자주 얘기한다.

“오늘 아침 침대 이불은 왜 팼어?”
“그건 발작이 되는 거야”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해?”
“장담 못해, 나도 모르게 되는데”

나는 쉰여섯, 엄마는 여든둘
함께 노화 경험해도 속도 달라
기억을 조금씩 놓는 게 무언지
엄마께 직접 이야기 들어봤다

엄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생각 안 나. 말문이 막혀 말을 못 하겠어. 자꾸 이러다 다 잊어버리면 어떡해?

 엄마, 늙으면 애가 된다잖아. 어린애들은 엄마가 아는 말 모르지. 엄마도 어린애가 되느라 말을 잃어가는 거야. 다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모르니까 맘 편히 갈 수 있지.

엄마 (강한 반박 투로) 요즘 애들이 말을 얼마나 잘하는데.

 그런 애들이 아니라 갓난아기! 엄마는 아기처럼 맑아지려고 어려운 말을 놓아주고 있는 거야. 그냥 맘 편하게 받아들여. ‘내가 아기가 되어가는구나’ 하구.

엄마 (의외로 선선하게) 그것두 그럴듯하네.

엄마가 오전부터 침대 이불을 팬 오늘은 외출하는 날이다. 외식 후 병원 두 곳을 들러야 한다. 느린 엄마 동작으로는 샤워하고 몸단장하기에도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 콰당! 욕실 문이 세게 닫힌다. 아직 외출 포기는 아닌 거다. 땡그랑! 탁! 욕실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엄마는 외출 전날 깔맞춤해서 코디한 옷을 걸어두는데 안 입기로 했던 옷을 걸치고 나서는 걸 보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옷 때문이었던 건가?’ 낮에는 여전히 더운 가을 날씨에 적절한 옷을 못 찾은 게 화근일 거라고 생각했다. 노인이라 우세스럽지 않을지 걱정을 하며 속이 볶이진 않았을까. 엄마는 외출해서도 나를 향하거나 밥 먹을 때는 뚱했다. 그러다가 식당 종업원을 대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애들을 보면 상냥해지곤 했다. 짐짓 끌려들어간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조끼와 바지 세트를 사고서야 얼굴이 환해졌다. 귀가 후 엄마와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았다. 늙어간다는 것과 기억을 조금씩 놓는다는 게 뭔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쉰여섯, 엄마는 여든둘. 우리는 함께 노화를 경험하고 있지만 저마다 속도가 달랐다. 생의 마지막에 더 가까이 있는 엄마와 나 사이엔 간극이 있었다.

 엄마, 요즘 젤 힘든 게 뭐야?

엄마 내가 20대부터, 난 머리에 든 건 없잖아.(가방끈이 짧다는 표현이다.) 그래도 그 시대에 쓸 수 있는, 그 시대에는 영어가 흔하지 않았으니까, 한문 같은 건 내가 열심히 썼거든. 70년대 뭐 이럴 때는 은행이구 동사무소구 어디구 가면 다 한문으로 쓰거든. 내가 그런 건 다 가서 쓸 수 있게끔 밤낮 쓰구 그랬거든. 백화점에서도 남자 직원이 ‘밤낮 뭘 그렇게 쓰느냐?’구 나더러 그러기까지 했어.(엄마는 25살 결혼 전까지 백화점에서 일했다.) 그 정도루 내가 한문을 썼는데, 그렇게 자신있게 살았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걸 다 잊고….

 70살이 고비구만.

엄마 75살이 넘어서부터 조금씩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80이 되니까 완전히. 지금은 82이니까 완전히 잊어버린 거지. 한문은 전혀 몰라. (잠시 뜸을 두더니) 난 자신있게 살았어. 부끄럼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20대를 지냈어. 그 후에 결혼해서 자신있게 생활을 했어. 비록 없지만.(월남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엄마는 친정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널 키우면서도 남한테 뒤떨어지지 않게 키웠구, 70살이 되도록 난 자신있게 살았어. 아흐~(갑자기 한숨을 쉰다.) 지금은 뭐 80이 넘으니까 자꾸 말도 잊어버리고, 말하다가 막히구, 자신이 없어. 그런데 어느덧 청소를 하든가 몸을 움직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있어. 그런데 고 순간 지나면 또 잊어먹어. 노래도 몰라, 다. 또 어떤 땐 청소하다가 몸을 움직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번 웅얼거리게 되면, 그 노래를 쭉 부르다 보면, 끝까지 부르게 돼. 그러면 그게 또 맞아, 가사가. 그러니까 그게 잊어먹구 깨어지구 생각나구 자꾸 이러는데. 지금은 뭐 죽는 건 두려울 게 없어, 나는. 나는 죽어도 뭐 행복할 거 같구. 단지 난 니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놀라운 다변이었다. ‘자신있게’ 살던 엄마가 언어능력 저하로 지금은 자신이 없다는 탄식이었다. 행복했던 젊은 날의 회상을 들어보면, 엄마가 몇 번이나 강조한 ‘자신있게’는 사회적으로 쓸모있어서 뿌듯했다는 자존감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지금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기비하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난 그런 엄마에게 갓난애 어쩌고 하며 죽음을 떠올리게 했으니.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엄마 생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면서 지난번 지뢰 터졌을 때는 전쟁 날까 봐 왜 그렇게 두려워했어?

엄마 전쟁 나서 죽을까보다는. 나는 6·25 때도 피난 가서 피난민 소리 안 들었거든. “어디서 이런 아가씨가 나왔나?” 하구, 그 정도로 나는 저거 했어, 사람들이 보기에. 6·25도 겪었고, 또 왜정 때 일본놈들한테 36년간 압박받을 때 그것두 겪었구. 그런데 그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끌려가서 죽구 그랬잖아. 그러니까 전쟁이 싫은 거지. 내가 죽는 거보다 주위 사람들이 다치니까. 그러니까 두려운 거야.

 그런 거였어? 난 또 엄마가 죽는 걸 두려워하는 줄 알았지. 그럼….

엄마의 입장을 고려해 적절한 말을 고르느라 뜸을 들였다. 엄마는 가끔 내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다. 오늘 아침에 침대를 왜 두드려 팼던 걸까.

 아침에 엄마도 모르게 막 우울해지고 그래서 침대에서 막 팍!팍!팍!팍! 이랬잖아.

엄마 (재빨리 끼어들며) 그건 발작이 되는 거야.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해?

엄마 (흥분해서) 그건 나도 모르지. 지금 장담할 수 있어? 나도 모르게 발작이 되는데.

 그래도 발작이 되는 순간에도 엄마가 뭘 하는지는 알잖아?

엄마 어~. 발작을 하는데 나도 깜짝 놀라면서 ‘아~ 상대에게는 괴로움을 주지 말아야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 참아지는 건 있더라. 그것뿐이야.

 많이 참았네.

엄마 응. 너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그것뿐이야.

 그럼 엄마, 아침에 딱 잠에서 깨면, 눈뜨면 보통 어떤 생각을 해?

엄마 아무 생각 안 해.(웃음) 그냥 일어나서 ‘이제 내 일을 해야 되겠구나’ 하고선 티브이 켜고, 티브이가 첫번째 생각이고(함께 웃음), (큰 소리로) 드라마! ‘드라마 세개를 보고 일어나야지’, 그 생각이야. 그거 끝나면 ‘어이구, 빨리 청소해야 되겠구나’, 청소 끝나면 ‘빨리 밥해야 되겠구나’ 이 생각이 매일 되풀이되는 거지. 그 이상은 없어.

집에서 엄마 방과 거실, 그리고 주방 쪽은 엄마의 청소 구역이다. 나머지 구역은 내가 청소를 한다. 나는 운 좋게 여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는다.

 요즘 몸에서 제일 고통스럽고 불편한 데가 어디야?

엄마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이거지, 이거, 언제나. 다른 덴 안 아프니까.

 무릎이 어떻게 아픈 거야?

엄마 (역정 내듯) 걸을 수가 없잖아! 하체가 전부 눌리구, 지릿 저리구, 여기 발끝까지. 그러니까 걷지 못하구. 그리구 밥하구 전부 먹구 나면, 그땐 다운되는 거야. 그래서 여기 침대에 드러누워 다릴 뻗구 진정시키는 거야. 그게 내 하루 일과야. 그리구 니가 항상 안타까운데, 그 마음은 어려서나(젊어서나) 지금이나 부모 마음은, 자식들에 대한 생각은 항상 안 없어져. 그것뿐이야. 난 행복하게 살았어.

 엄마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게 뭐 있어?

엄마 없어. 지금 만족해. 해보고 싶은 건 뭐, (딸이) 다 해주는데 뭐. 영화 보기나 여행도 시켜주지, 사고 싶은 것도 사지. 나도 모르게 화가 날 때는 그건 내 자신이 억제해야 되고, 억제 못할 땐 악이 나오고, 그런 거야. 그것도 내 본능에서 그대로 나오는 거지, 내 생각에서 고의로 하는 건 아냐.

 응, 알았어. 요즘 엄마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엄마 (망설임 없이) 보고 싶은 사람 없어.

거의 말끝마다 ‘나’를 집어넣는 엄마는 자기 중심적인 면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든두살 엄마는 행복할지 모른다. 조리있게 질문에 답하는 엄마 말에는 ‘치매기’가 없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알던 엄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 세상 구경 다 하는 날까지 나 맛있는 밥 해주시고, 쌔근쌔근 주무시다 잘 돌아가시라. 2015년 시월 어느 날에 엄마를 사랑하는 딸 올림.

한겨레:온 편집위원 대표 간사 김유경

(*위 내용은 2015년 10월30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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