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을 쓸 짬은 안나고, 몇 년 전에 제 큰 아이가 만 다섯 살이 되어갈 무렵에 썼던 글을 나누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있던 글이라 독백의 반말체를 이해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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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깬 코난군은 어린이집에 갈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피곤함 때문인지 짜증을 부리는 수위가 높아져만 갔다. 아빠에게 자기 옆에 있지 말고 안보이는 곳으로 가라고 하질 않나, 티브이를 끄랬다가 켜랬다가 변덕을 부리며 신경질을 내는 것을 보다못한 아빠가 코난군에게 자기 방으로 갈 것을 명했다.


아이를 훈육할 때 많은 사람들이 쓰는 방법 중에 하나가 타임아웃 이다. 혹자는 그 효과를 과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주의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유발하는 훈육방법 이라고도 한다.

우리 부부 (중에서도 아빠가 엄마보다 타임아웃 을 주로 시킨다. 엄마는 타임아웃 까지 가지 않고도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곤 하기 때문이다 :-) 가 타임아웃을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과 기준이 있다.


1. 어떠한 경우에도 부모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이 원칙은 타임아웃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훈육을 할 때에도 꼭 지키려 노력하는 철칙이다.)  아이에게 전달되는 메세지는, 아빠/엄마가 너를 야단치는 것은 네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 때문이지, 네가 밉거나, 아빠/엄마가 화났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빠/엄마는 최대한 이성적이고 냉정한 표정과 음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만일 아빠/엄마가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엄마/아빠가 대신 바톤을 이어받고, 아빠/엄마는 그 자리를 떠나버리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2. 굳이 "타임아웃"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네가 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니, 네 방으로 가서 울어라." 하고 말해서 아이가 혼자 격리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3. 웬만하면 타임아웃 상황까지 가기 전에 갈등이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 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타임아웃 을 하기로 정했으면, 아이가 아무리 반항을 해도 꼭 실행한다. "네 방으로 올라가서 울어." 라고 명령하는 부모에게 "응, 알았어." 하고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아이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애시당초 타임아웃 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코난군이 "싫어~~ 노우~~" 라고 극심한 반항을 하면 힘이 센 아빠가 아이를 안고 방으로 데려다준다.


4. 언제까지 네 방에 있어야 한다든지 하며 시간을 따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코난군은 시간 개념이 아직 완벽하게 형성되지 않은 나이라 별 효과도 없고, 또 시계를 볼 줄 아는 아이라 하더라도, 부모가 정해준 벌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게 되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거나 스스로 화를 가라앉히는 데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의 룰은, 그냥 코난군이 스스로 화가 풀리거나 울음을 그칠 수 있을 때에 언제라도 다시 밖으로 나와서 놀이를 다시 하면 된다.


즉, 우리는 아이를 "벌 세우기 위해서" "타임아웃" 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화난 감정을 "스스로 가라앉히기 위해서" 그리고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네 방에서 마음껏 울거나 소리지르거나" 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몇 분간 방에 있어야 한다거나, 타임아웃이 끝나면 잘잘못을 새삼 이야기해서 가려내거나 할 필요가 없다. 이건 아이도 부모도 참 편안해서 좋은 방법이다. ^__^


01.jpg

이 그림을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은 뜻...


04.jpg 02.jpg 05.jpg


어제 아침에 공연히 투정을 부리다가 아빠품에 안겨서 제 방으로 배달된 코난군은 한 십 분 가량을 "노우~~ 아빠 절리가! (이건 아빠 미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코난군의 표현이다)" 하며 울다가 조용해졌다.


아이가 조용해지고 몇 분 후에 아빠가 올라가서 잠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아빠가 먼저 내려오고, 잠시 뒤에 코난군도 기분이 좋아져서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마치고 내려왔다.

제 방에서 조용한 동안에 무얼하고 있나 봤더니, 종이에다가 작대기 사람을 그려놓고 사선을 그으며 나지막히 "노 대디..." 하고 중얼거리며 앉아있더란다.


아빠에게 떼를 부리다가 방으로 쫓겨났으니 제가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 모든 투정이 아빠에게로 향했을 터.  하지만 아무리 소리질러 "노 대디, 아빠 미워~" 말해봤자 아랫층에 있는 아빠에게 들리지도 않고...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자신의 분노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을게다.

아동발달이나 유아교육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보고 중전마마를 저주하는 표독한 후궁의 모습이 연상되어 섬찟하거나 화가 났을까?


유아의 분노, 공포,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지말고, 적절한 방법으로 충분히 표출하게 하는 것이 어린이의 감정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늘 가르쳐와서 그랬는지, 코난군의 노 대디 그림 사건을 들으면서 "자~~알 했어 코난군!" 하는 반응이 저절로 나왔다.

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건설적이며 평화로운 분노의 표출인가 말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타임아웃 훈육방법이 진가를 발휘한 순간이기도 했다.

화가 나는 대상과 물리적 심리적으로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 자신의 화를 가라앉히고,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방법으로 그 감정을 방출해버리고, 다시 기분이 좋아지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그 과정을 우리 코난군이 훌륭히 수행해냈으니 말이다.


03.jpg


아빠 모습을 참 잘 그렸네. 아빠때문에 속상해서 노 대디 라고 그린거야? 어쩜 이렇게 좋은 생각을 다 했어? 소리지르고 우는 것보다 훠~얼씬 더 좋은 방법이네!

이 그림 엄마 학교에 가지고가서 붙여두어도 될까?


그랬더니 코난군이 하는 말이 정말 재미있다.

"응, 그런데 엄마는 한 개만 가지고 가. 한 개는 우리집에 놓고, 또 한 개는 아빠 학기요 에 가지고가서 붙여두라고 하자."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학교 라는 발음을 굳이 딱딱 끊어서 학기요 라고 말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아빠가 노 대디 그림을 아빠 학기요에 붙여두면 별로 기분이 안좋을 것 같은데? 그 그림을 볼 때 마다 코난군이 노 대디 라고 말한 것이 생각날 것 아니야?


그랬더니 코난군의 창의성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그림 한 개를 더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위의 그림과 똑같은데 다만 "노" 라는 뜻의 사선이 없는 그림이다. 그리고 하는 말, "이건 예스 대디 그림이야. 아빠 학기요 에 이거 가지고 가서 붙이자." 한다.

어이구.... 요 귀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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