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자료
아침부터 이상했다. 오랫 동안 소식이 없었던 친구들이 카톡과 문자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잘 지내니? 언제 회사 앞으로 와.. 맛있는 거 사줄께."
"봄에 보자고 했는데 벌써 여름이네.. 시간 되는 날 보자~"
"언니, 오랫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그 동안 너무 연락 못했네요~"
휴직한 지 2년이 넘어가니, 회사 사람이나 친구들이나 연락이 뜸했는데, 다들 바쁜데도 간만에 연락이 먼저 오니 나는 기분이 좋아 히죽히죽 웃으며 답을 보냈다.
"그래~~ 돈 버는 네가 맛난 거 사라~~" 등등.
그리고 점심 때쯤, 치료 센터에서 알고 지내는 한 엄마가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을 열어 보는 순간, 나는 문자 그대로 뚜껑이 열렸다. 그리고 글을 읽는 내내, 차가운 칼날이 내 가슴을 사정 없이 찌르는 듯, 아팠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났다. 뉴스 보도 되기 바로 전날, 서울 강남의 모 초등학교 3학년 자폐성 장애 아동에게 가해진 폭력 사건의 서명 운동을 위해 그 아이의 부모가 올린 글을 본 그 날, 나는 하루 종일 머리를 뭔가로 맞은 듯 띵하고 멍했다. 며칠 전부터 얘기가 돌았던 모양인데, 나는 인터넷 카페 활동을 거의 안하는지라 인터넷의 지역구 육아 카페를 비롯해 수많은 카페가 발칵 뒤집히도록 까맣게 몰랐었다.
내 아이는 인지가 높은 편인 고기능 자폐라서(아스퍼거와 비슷) 일반 학교로 가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과 치료사 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시고, 지금의 통합 어린이집에서도 무난히 잘 생활하고 있어서 일반 학교에 보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언젠가는 나도 어떤 형태로든 한 번은 겪을 일이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다. 왕따나, 물건이나 돈 빼앗기기, 놀림 등의 형태라 생각했고, 그것만으로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각오 단단히 하자, 마음 먹고 있었다. 이런 무자비한 폭력은 아니었다. 그것도 4년 동안 같이 어울려 다녔던 친구들이라니. 담임과 학교와 경찰 모두 그저 넘어가려 하고 있다니.
학교폭력위원회나, 교육청의 재조사, 경찰의 개입.... 그 이전에 자폐성 장애 아동, 아니 모든 장애인이 학교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모습은, 약자는 무시해도 되고 강자만이 대접받는 우리 사회의 치부가 그대로 비추어진 거울임을 직시해야 한다. 장난 또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저질러지고 또 무마되는가. 또한, 많은 자폐성 장애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때문에 혹시나 우리 아이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불안하고 괴로와질까.
몸과 마음을 추스려 아이를 데리고 치료 센터로 갔다. 마침 여러 엄마들이 모여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다들 너무 무섭다고, 얘기하면서도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도 있었다. 장애인 교육과 인식이 한국보다 좋은 외국에 연고가 있는 엄마들은 어서 빨리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 일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제도권의 생활이 다가오는 두려움에 다들 몸을 떨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나도 모르게 이런 얘기가 나왔다.
"나는 글과 사진을 보면서 부모가 '우리 아이가 자폐라는 점을 온 세상에 알린다'는 대목이 마음에 많이 걸렸어. 그리고 그 엄마가 얼마나 조바심내며 아이를 키워왔을까..안스럽더라구. 아스퍼거라면 말이나 일상 생활에 거의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그저 조금 독특한 아이 정도로 주변에서 인식했을 텐데, 학교 생활이나 다른 엄마들과 교류할 때 뭐든 낮은 자세로 살았을 모습이 안봐도 알겠더라구.
나는 그동안 주변 사람들한테 아이가 자폐임을 알렸고, 학교에 보낼 때도 선생님께 아이의 상태에 대해 잘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내 속마음은 가끔 조금 달랐어. 모두들 아이가 예후가 너무 좋고, 인지능력도 좋아서 일반 아이랑 별 차이가 없을 거라 하니, 나중을 위해서라도 지금나는 아이가 자폐라는 걸 감추는 게 좋지 않을까? 아이는 커가면서 점점 자폐 성향이 사라질 테니 그냥 조용한 아이로 묻혀서 지내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이 치료한답시고 오후 내내 여기 저기 서울 시내를 운전하며 다니는 이 시간을 마치 내 인생에서 없었던 것처럼 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서야 깨달았지. 아, 이건 나의 그릇된 꿈이었구나. 정말로 엄마로서 부끄럽고 비겁한 생각이었구나. 내 아이의 자폐를 오픈할 수록 내 아이가 보호받을 수 있겠구나. 보호를 위해 장애를 인정하고 공개하는 순간 낙인 효과도 감수해야 하는구나....."
한 엄마가 눈물이 글썽해서 자기도 그랬다고 말했다.
"언니, 저도 그랬어요. 그게 마치 내 아이를 부정한 거 같아서, OO이에게 너무 미안해요."
엄마로서, 우리 모두 시행착오를 겪는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마저도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엄마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스스로 다독일 뿐이다.
자폐성 장애는 일반적으로 조기 치료를 할수록 예후가 좋아서, 미취학 시기에는 치료에 희망을 걸고 대부분 장애 판정을 미룬다. 그 낙인효과를 무서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까지는 의사의 진단서만 있어도 입학이 가능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면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된다. 일반학교 도움반이던, 특수 학교이건 장애 등급이 필요하다.
진단 받은 지 3년이 지나 겨우 아이에게 익숙해지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의 행동과 말을 이젠 다 알고 대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며 안겨올 때 이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아 행복한데, 이제는 아이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세상에 아이를 내놓는 것은 훨씬 더 큰 각오와 용기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겁내고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반포 자폐아 폭력 사건'의 피해 가족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감히 짐작한다. 그러나, 다른 자폐성 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이 모두들 박수를 보내고, 힘을 보내고 있음을 그 가족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 새로 조사를 시작한 서울시 교육청 담당자와 관련인 모두, 마주하기 어려운 진실을 똑바로 알리고 그에 상응하는 절차를 밟는 것만이 이 나라 모든 자폐성 장애 아동 가족의 두려움을 없애는 길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더불어, 언론에서도 그 결과를 꼭 놓치지 않고 국민에게 알려 주길, 그것이 언론의 의무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한 사람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어야만, 모든 이의 행복이 가능해진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오늘, 엊그제 연락해온 친구들과 조만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인터넷에서 글을 먼저 보고는 나를 떠올려주고, 먼저 내 아이의 자폐 얘기를 차마 꺼내기 어려워 밥을 사주겠다고 말을 거는 친구들이 있으니 나는 힘이 난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 내 아이에 대해, 그리고 자폐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행복하다고. 아이와 우리 가족의 행복과 사랑으로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