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 놀기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비 오는 날은 괴로운 날이다.
애니메이션도 보고, 그림 그리기도 하고, 소꿉놀이도 해보지만, 
온 종일 집안에서만 노는 건 지겹기만 하다.
물론 아이들은 바깥 놀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집 안에서 나름대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 애쓴다.
하지만 끊임없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에는
집 안이라는 공간은 좁기만 하고, 둘이라는 인원은 너무 적다.
바깥이라면 한 장소가 지겨워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 있다.
그리고 놀고 있다 보면 아이들이 계속 모이기 때문에 자꾸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흥미가 유지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집안이라는 조건은 한계가 많다.
그럴 때, 아이들이 찾는 해결책은 보통 이런 거다.
"엄마, 아빠, 같이 놀자."
아이들은 인원 부족의 문제를 엄마, 아빠의 참여 유도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아내는 주로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거나 만들기, 아니면 종이접기를 한다.
나는 술래잡기나 숨바꼭질, 공 놀이 같은 걸 함께 한다.


지지난 일요일에도 비가 왔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지루해 하는 신영이, 선율이에게 
아내가 그림책 찾기 놀이를 제안했다.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눈이 반짝였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설명해주었다.
"엄마가 얘기하는 그림책을 빨리 찾아서 엄마한테 가져오면 되는 거야. 
자, 그럼 시작한다. 사과가 나오는 그림책을 찾아오세요."
아이들이 후닥닥 책장 앞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책장을 훑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보였다.
신영이가 먼저 찾아 들고왔다. 
"어디 보자. <사과가 쿵> 가져왔네? 맞았어요.
다음엔 호랑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찾아오세요."

눈치를 보니 아내가 일부러 선율이 쪽 책장에 있는 그림책을 보고 낸 문제였다.
아무래도 언니에게 유리한 놀이니까 동생이 먼저 찾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아내의 바람대로 선율이가 먼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찾아 들고왔다.
선율이는 '찾았어!'하며 씨익 웃는다.
그런데 신영이가 눈치를 채고, 
'엄마는 선율이 쪽에 있는 책으로 문제를 내고...'하며 시무룩해졌다.
아내가 해명을 했다.
"신영이가 전부 먼저 찾으면 동생이 재미없어지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런데 선율이도 잘 찾으니까 지금부터는 아무데서나 낼게. 
자, 다시 한다. 이번엔 고양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찾아보세요."
세 번째 문제도 선율이가 먼저 찾아왔다. <마녀 위니>였다.

아이들이 서로 먼저 찾으려고 덤벼드는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다.
막내 수현이를 안고 무심히 지켜보던 나도 문제를 내고 싶어졌다.
"얘들아, 이번 문제는 아빠가 낼게."하면서 놀이에 동참했다.
얼른 책장을 둘러보았다.
<내 맘대로 할래>가 보이길래 "악어가 나오는 그림책을 찾아오세요." 했다.
두 아이가 한참을 살펴보더니 신영이가 먼저 찾아 들고왔다.
가져온 걸 보니 <선물이 왔어요>다. 
며칠 전 유치원 아토 시장에서 신영이가 직접 사온 책인데, 난 아직 읽지 못했다.
"어? 신영아. 그 책에 악어가 나와?"
"어. 여기 있잖아, 악어 있어!"
"그러네. 아빠는 몰랐어. <선물이 왔어요>에도 악어가 있었구나."
난 속으로 '이 놀이, 은근히 재미있네.' 생각하며 다음 문제는 뭘 낼까 살피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곰이 나오는 그림책', '비 오는 장면이 있는 그림책' 등을 찾게 했다.
그림책 찾기 놀이.jpg
(누나들이 찾아온 그림책 옆에서 막내 수현이가 놀고 있는 모습)

그런데 아이들이 서로 빨리 찾도록 경쟁하게 만드는 놀이 방식이 좀 꺼림칙했는지
아내가 규칙을 바꾸었다.
"자, 지금부터는 '누가 더 빨리 찾아오나?'로 하지 말고, 둘이 함께 찾는 걸로 규칙을 바꿔서 하자. 
힘을 합쳐 빨리 찾으면 뭘 할까? 만화영화 볼까?"
"그래."
다음 문제는 '괴물이 나오는 그림책'이었다.
신영이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선율이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를 찾았다.
선율이에게 물었다.
"선율아, 그 책에 괴물이 나와?"
"응. 망태 할아버지가 엄마를 잡아가니까..."
"아, 엄마를 잡아가니까 망태 할아버지가 괴물이야?"
"응."
선율이의 대답을 들은 아내와 나는 웃었다. 
나름의 논리로 설명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며 이 놀이에 점점 몰입하고 있었다.
"만화영화는 좀 이따 보고, 한 번 더 하자."
요즘 만화영화 '주얼펫'에 꽂혀있는 신영이가 그걸 보는 걸 미루고,
놀이를 계속하자고 말할 정도로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잘 찾아오는 것 같아 문제의 난이도를 조금씩 높였다.
"자, 다음은 동물이 다섯 마리 넘게 나오는 그림책을 찾아오세요."
그때부터 두 아이는 동물이 나오는 그림책을 이 책 저책 꺼내어 숫자를 세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손바닥 동물원>을 꺼내어 들고왔다.
"어디, 세어볼까? 하나, 둘, 셋, 넷...열하나, 열둘...와! 엄청 많다! 
다섯 마리보다 훨씬 많네! 잘 찾았어요."

"이번엔 내가 낼게." 
신영이가 직접 문제를 내겠다며 나섰다.
"어... 귀신 같은 애가 세 명이 나오는데, 한 명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한 명은 이렇게 이렇게 나오는 게 있고, 한 명은 물을 받아놓고, ..."
아내가 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하늘님한테 잡혀가?"
"응. 힌트는... '손도 나와.'"
거기까지 듣던 선율이가 얼른 책을 꺼내어 들고 오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바로 알아."
선율이가 들고 온 책은 <어처구니 이야기>였다.
"와, 선율이가 맞았네. 선율아, 언니 이야기 듣고, 이 책 생각 난 거야?"
"어. 나는 바로 알아."
일곱 살 언니는 그림책의 이야기를 기억해서 문제를 내고, 
네 살 동생 역시 그림책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책을 찾아오는 게
참 신기하고, 놀라웠다.

선율이도 언니가 문제 내는 걸 보더니 직접 문제를 냈다.
"동물이 여섯 마리."
아내와 나는 물었다. "동물이 여섯 마리 넘게 나오는 거?"
신영이가 얼른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를 들고왔다.
숫자를 세어보니 여섯 마리가 넘었다.
"이거 아니야." 선율이가 말했다.
"선율아, 딱 여섯 마리만 나와야 돼?"
"응."
그때부터 신영이, 아내와 나는 동물이 나오는 그림책을 하나씩 꺼내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물이 여섯 마리만 나오는 그림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건 일곱, 어떤 건 다섯, 또 다른 건 둘...
여태껏 아이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찾아오는 걸 재미있어 하며 
출제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있었는데, 역할이 바뀌어
네 살배기 선율이의 마지막 문제에 제대로 한 방 맞은 셈이었다.
그때, 내가 아내에게 조용히 물었다.
"출제자도 정답 모르는 거 아니야?"
"그래서 지금 딴 거 하고 있잖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자 선율이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영이도 좀 지루해 하는 눈치였다.
나도 '딱 여섯 마리만 나오는 걸 어느 세월에 찾지?' 하는 생각으로 좀 느슨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계속 책을 찾는 데 몰두했다.
결국 수많은 그림책을 꺼내어 보길 반복하다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곰 아저씨에게 물어보렴>에는 동물이 여섯 마리가 있었다.
"와, 여섯 마리다!"
이 책을 찾고 얼마나 기뻤던지...

나중에 들어 보니 아내가 끝까지 찾으려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선율이가 처음으로 문제를 낸 거잖아. 
자기가 낸 문제의 답을 식구들이 끝까지 찾아준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거야.
그리고 신영이도 마지막 문제에는 좀 지루해 하고 있었는데, 
신영이한테도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이날, 밖엔 비가 오고, 아이들은 밖에 나가지 못했지만,
그림책 놀이를 통해 온 가족이 집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이날 놀이에는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가 여럿 있었던 것 같다.
첫째, 그림책으로 독서가 아닌 찾기 놀이를 한 건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보다 오히려 신선했을 것 같다.
둘째, 문제의 난이도를 조금씩 높여서 아이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다.
셋째, 문제 출제자와 그림책 찾는 사람의 역할이 고정되지 않고, 바뀌었다.
넷째, 경쟁이 아닌 협동의 방식이어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온 가족이 즐거운 마음으로 놀았다는 것!
비가 내린 덕분에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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