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한겨레 토요판] 엄마의 콤플렉스

이달엔 유난히 딸아이 학교에 행사가 많다. 한달에 한번 열리는 정기 학부모 모임 외에도 부모랑 학교에서 아침을 먹는 토스트데이, 조부모와 같이하는 예절 티타임, 학부모회에서 주최하는 도서전시회와 전교생이 동네를 한바퀴 도는 달리기가 있고 야외학습도 있다. 모든 행사에는 학부모들의 참가가 권장된다. 이틀이 멀다 하고 이메일로, 전화로 행사 안내와 참여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날아든다. 그냥 평범한 공립학교인데도 그렇다.

아쉽게도 이번달엔 나도 시간이 빠듯하다. 학기말 시험 채점과 성적 마무리까지 해야 해서 학교에 못 간다고 하니 딸아이가 서운해한다. 대신 내가 좀 한가한 날 학교에 찾아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학교 식당에는 부모가 아무 때고 와서 급식을 사먹을 수도 있고 아이랑 도시락을 먹을 수도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하고는 학부모가 언제든 수업을 참관할 수도 있고 아예 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주관하기도 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이 그리스를 배우기 시작할 때 같은 반 부모들이 준비한 ‘그리스의 날’ 행사였다. 그날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도 모두 그리스 복장을 해야 했는데, 그렇다고 돈 주고 의상을 구입하는 건 아니었다. 침대 시트나 커튼으로 만드는데, 가위질을 하면 천을 다시 못 쓰게 되니까 그냥 통째로 휘감아 토가를 만들라고 했다. 커튼 천을 두른 나는 엄마들이 준비한 그리스 음식을 서빙하고 테이블보를 두른 딸아이는 학부모들이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촌극을 구경했다.

최근에 한국에서 전학 온 아이의 엄마더러 그날 같이 가자고 했더니 “꼭 가야 되는 거냐?”며 내키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안 올 모양이다 했는데 행사가 파할 무렵 그 엄마가 나타났다. 그이는 슬리퍼에 커튼을 걸친 나를 보고 기가 막혀 피식 웃었지만 정장에 하이힐, 명품백까지 얌전히 들고 온 그이 모습에 정작 빵 터진 건 나였다. 나도 한국을 떠난 지 오래다 보니 이 “한국스러운” 학부모 모드를 잠시 잊고 있었던 거다. 아이 학교에 가려면 옷 빼입고 화장하고 꾸며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 엄마가 그렇게 망설였다는 걸 그때야 눈치챘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미리 일러주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이 학교에 수시로 드나드는 게 돈 있고 시간 있는 극성 엄마들의 전유물로 치부되는 것 같다. 치맛바람에 치를 떠는 몇몇 친구들이 자기 아이 학교에 한번도 안 갔다는 걸 자랑삼아 얘기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나 다음으로 긴 시간 지켜보는 사람인데 그런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긴장하고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면 나라도 줄행랑을 치고 싶을 것이다. 엄마는 선생님이 뭔가를 바랄까봐, 선생님은 엄마가 자기 자식만 잘 봐달라고 할까봐 서로 경계를 한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구심이자 아이와 부모와 교사의 교감의 장이다. 그런 즐거운 터전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사교육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공교육의 핵심은 그게 아닐까.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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