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2648101_20140901.JPG » 광목으로 책을 만드는 유미리 씨


[짬] ‘광목 동화책’ 만드는 

유미리 씨


Cap 2014-09-01 14-34-34-267.jpg 여름방학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바닷가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엄마는 아들을 위해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소중한 시간을 영원히 되새기기 위해 엄마가 준비한 것은 광목천. 종이 대신 광목을 일정 크기로 잘라 제본을 했고, 그 광목에 해변에서 주운 작은 조개껍질을 접착제로 붙혔다. 연필로 추억을 썼다. 아들과 공유하는 친밀하고 독특한 기억을 써 내려갔다. 다른 페이지에는 수영하는 사진을 오려 붙였고, 또 다른 페이지에는 아이들이 모래사장에서 주운 마른 미역 줄거리를 붙였다.


아이들도 엄마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을 만드는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그래서 책이 만들어졌다. 디지털화한 세상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책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다. 컴퓨터 자판에 매몰되고, 모니터의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던 아이들의 관념은 엄마의 노력으로 입체화되고 구체화됐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엄마의 사랑이 그리울 때마다 이 책을 들춰 보았다.


광목으로 책을 만드는 주부 유미리(50·사진)씨는 어느 해 가을을 이렇게 책으로 꾸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건 수집 

광목에 붙이고 이야기 채워서 

‘세상에 하나뿐인 동화책’ 완성 

“평생 부모사랑 느낄 유산될 것”

문화센터서 동화책 만들기 강의 

광목 동화책 전시공간도 마련


아이들이 아파트 화단에서 떨어진 낙엽과 잔가지를 주워 왔다. 유씨는 광목에 아이들이 주워 온 마른 나뭇가지를 붙이고 색연필로 듬성듬성 이파리를 그렸다. “너는 모양이 왜 그러니? 잎사귀도 별로 없고, 색깔도 우리와 다르잖아. 너 때문에 새가 나에게 놀러 오지도 않을 거야. 너 싫어.” 다음 장에는 나뭇가지에 새집 사진을 붙이고, 종이에 새와 새알을 그려 그 위에다 오려 붙였다. 그리고 “새가 낳은 알이 꼭 우리 둘의 심장 같아. 콩당콩당. 나 너무 떨려. 나뭇가지는 새와 알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어.” 제목은 ‘나무 가지’.


유씨는 두 아들이 주워 온 사물을 보며 스토리텔링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감정과 느낌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그런 아이들의 느낌은 광목으로 만든 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대학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큰 신경을 쓰지 못하던 유씨가 광목 동화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의 방학 때문. 맞벌이 부부라 방학때 아이들끼리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을 대비해 유씨는 방학 한달 전부터 신문, 잡지 등에서 사진을 오려 모으고,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물건을 수집하라고 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그런 ‘자료’로 스토리를 만들어, 중간중간 빈칸을 두고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채워놓을 것을 숙제로 주고서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해선 아이들이 완성해 놓은 이야기를 들으며 ‘칭찬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실력이 놀랍게 발전했다. 아이들에게 주입식 암기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감성 교육을 시킨 것이다.


유씨가 가장 애착을 갖는 광목 동화책은 바로 ‘배냇저고리 동화책’. 갓난아이가 태어나 가장 먼저 입히는 옷인 배냇저고리는 부모의 사랑이 깊숙이 배어 있는 옷. 사내아이의 배냇저고리는 결혼할 때 함에 넣어 보내기도 하고, 배냇저고리를 지니면 운이 좋다고 해서 시험 볼 때 지니기도 했다.


유씨는 작게 무명천으로 만든 배냇저고리 속에 광목천을 여러 장 제본해 붙여, 그 안에 임신했을 때의 태몽을 정성껏 쓴다. 그렇게 만든 ‘배냇저고리 동화책’을 자녀에게 평생 고이 간직하는 동화책으로 선물한다는 것이다. 유씨는 자신의 부모가 들려준 태몽을 소재로 광목 동화책을 만들었다.


“… 아버지가 어릴 적에 들려준 태몽이다. 큰 구렁이가 갈대밭에서 동쪽을 향해 쉭쉭 지나가는데 어찌나 크고 힘이 세던지 사내아이가 태어나는 줄 알았단다.” 유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들려준 태몽을 소재로 동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유씨는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기원을 쏟았는지, 작은 배냇저고리 속에 적어둔 태몽을 보며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문화센터 등에서 광목 동화책 만들기와 스토리텔링 등을 강의하며 주부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던 유씨는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낙산공원으로 가는 고갯마루의 낡은 집을 구입해 ‘미리뽕이 꾸미는 낙산골 색동초가’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자신이 그동안 만든 여러 광목 동화책과 헝겊인형 등을 전시해 놓고, 주부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6살부터 10살까지의 자녀를 둔 후배 주부들에게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노하우를 전달하려고 해요. 그래서 ‘치맛바람’이 아닌 ‘따뜻한 심장이 있는 저고리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전달이 아니라 엉뚱한 방법으로 숨통을 틔워주고 마음을 열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어린이에게 광목 동화책에 장난감 자동차 부속을 붙여가며 스토리를 만들어 줍니다. 인형을 좋아하는 어린이에게 단순히 인형을 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형을 광목 동화책에 붙여가며 사랑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럼 그 동화책은 평생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입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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