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가족
비혼남과 부모의 대화

▶ 통계청의 지난해 조사 결과 ‘결혼이 필수가 아니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40%를 넘었습니다. 30대가 50.7%로 가장 높았고, 60대 이상은 20.8%로 낮았습니다. 우리 사회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지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간극은 여전합니다. 이번주는 결혼에 대한 부모 자식 간의 대화입니다. 대화하는 새로운 가족상을 만들어가는 ‘인터뷰; 가족’.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원고료와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결혼을 당연히 하겠거니 했던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는 건가 의심을 품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 감독)를 보고 난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의 결혼제도가 과연 올바른가? 인류는 언제, 왜 결혼제도를 택했을까? 나름대로 사회과학 서적들을 살펴봤지만 모두 추론과 가정에 근거했을 뿐 정확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읊었다는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확인 안 되는 구절만 머릿속에 남았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살겠다고 선언할 자신이 없다. 가정을 유지하려고 배우자에게 바람피우고도 거짓말하며 살기 싫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양육을 책임질 자신도 없다.

문제는 부모님 설득이다. 이런 생각을 언뜻언뜻 흘려봤지만, 부모님은 나의 ‘비혼주의’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느낌이다. 명절마다 결혼 문제를 두고 지겨운 이야기를 서로 반복한다. 이번 설도 마찬가지다.

지난 19일 서울 봉천동 매형 집에서 조카들을 만난 뒤 오후 4시께 수서동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경차 안. 도로는 남부순환로. 술을 몇잔 마신 아버지는 운전하는 내 옆에, 어머니는 우리집 막내 뽀삐(강아지)와 뒷좌석에 앉았다. 나는 연봉 3000만원이 조금 넘는 30대 중반 남성 직장인이다. 작은 전셋집에서 부모님(아버지 70대, 어머니 60대)을 모시고 산다.

 아버지는 내가 아직도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백번 당근이고 또 당근이고 그래.

어머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가끔 그런 생각 들어. 내가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너를 못 챙겨주니까.

 엄마 힘들면 얘기해요. 알아서 밥 챙겨 먹을 테니까. 아버지, 내가 왜 결혼 안 하려는지 알아요?

아버지 알아. 내가 돈이 없어서 그렇잖아. 돈 때문에.

 아니에요.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돈을 못 벌어서죠. 내 경제력으로는 부모님 두 분 봉양 딱 거기까지예요. 그 이상을 제가 할 수가 없어요.

아들
어떻게 평생 한 사람과만…
결혼하면 배우자 속일 수도
가정 꾸리면 부모에게 소홀
결혼 안 하고도 잘 살아

아버지
몰래 바람피우면 되지
다들 그렇게 살아 하하
결혼해 손주 안겨주는 게
부모에게 가장 큰 효야

부모님은 인생을 참 열심히 사셨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아버지가 하던 의류 사업이 망한 뒤로 가정 형편은 극빈층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이후 막노동으로, 어머니는 식당 주방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형편은 그대로였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게으른 베짱이를 이긴다는 이솝 우화는 현실과 다르다.

어머니는 60대에 접어들며 척추에 장애가 생겨 6급 장애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칠순을 넘긴 뒤 아파트 경비원 자리도 더이상 얻지 못했다. 몇년 전부터 두 분 모두 소득이 없다. 다행히 내가 돈을 벌어 봉양한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들 때문에 결혼을 안 한다고 늘 한탄하신다. 틀린 얘긴 아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데.

 아버지, 내가 결혼 안 하려는 이유가 꼭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아버지 그런 얘기 그만해. 넌 벌써 예측하잖아. 결혼 안 할 거라고.

 예측이 아니라 결론이 난 거예요. 안 한다고!

아버지 그래. 잘했어 잘했어.(한숨)

 뭘 또 잘했다는 거예요? 마음은 안 그러면서. 내가 사실 아버지에게 한 번도 안 한 얘기가 있어요. 결혼을 하면 평생 그 한 사람과만 성관계를 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자신이 없어요. 그건 동물적 본성과 어긋난 거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다른 사람들은 결혼해놓고 부인 몰래 바람피우면서 그렇게 가정을 유지하겠지요. 전 그러기 싫어요. 그건 사람을 속이는 거예요. 이해돼요? 아버지, 남자끼리 이야기예요. 남자로서의 본능이 있잖아요? 나는 한 사람과만 5년 정도 살 붙이고 사는 건 상상이 돼요. 근데 그 이상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를 어떻게 생각해요?

아버지 물론 바람피우면 안 되지. 다만 한국 정서상 남자는 해도 되고 여자는 하면 안 되는 그런 게 있어.

 그럼 남자는 몰래 바람피워도 용서받는다는 거예요?

아버지 그렇지. 그런 어떤 뭐가 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아버지 솔직한 얘기로 나도 (외도) 안 했다는 거는 거짓말이고.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아버지 지금 말조심하세요. 엄청난 폭탄선언을.(흐흐흐)

아버지 여기 왜 이렇게 차가 막히지?

서울대 입구 사거리를 지나기 전 도로가 꽉 막혔다. 봉천동에서 서울대 입구 사거리까지 지나는 데 20분이 걸렸다. 꽉 막힌 도로처럼 아버지와 나의 대화도 길이 잘 뚫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 남자들 중 아마 예닐곱은 바람을 피울 거야. 여자는 서너명쯤 될까. 여자도 (외도) 안 하는 게 아냐.

 그러면 안 되죠. 아버지가 좋아하는 거 있잖아요. 도덕과 윤리.

아버지 그래. 내가 아주 좋아하지. 근데 살아보니 꼭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고.

 아니 왜 또 여기서만은 예외예요?

아버지 허허허.

 아버지, 결혼제도는 그냥 이 사회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니까 존재하는 거 같아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아버지 그러냐?

 아버지, 퇴근하고 돌아오면 부인이 된장국에 밥을 차려주면서 “여보 고생했어요” 하는데 내가 사실 어젯밤 다른 여자랑 자고 왔다고 해봐요. 그 된장국을 어떻게 먹을 수 있어요? 죄짓는 거죠.

어머니 그러면 안 되지.

 난 자신이 없어요.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상처 줄 결혼을 왜 해?

차가 서울대 입구 사거리를 간신히 빠져나와 까치고개를 지나 사당 방면을 향한다. 꽉 막혔던 도로에 조금 숨통이 트였다. 어머니는 이어폰을 끼고 국악을 듣는다. 요즘 어머니의 취미다.

 아버지, 조금 아쉽더라도 제가 다른 방식으로 효도할게요.

아버지 결혼해서 손주 안겨주는 게 가장 큰 효야.

어머니 에헤라디야 이리리리.(웅얼웅얼)

 아버지, 자기 자식만 생각하고 부모님께 용돈 하나 안 드리는 그런 아들도 괜찮아요?

아버지 어.

 진짜?

아버지 걱정 마. 집 앞에 복지관 있어. 거기서 밥 다 줘.

 제가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에요. 제 형편으로 가정까지 새로 꾸리면 부모님께 지금만큼 생활비를 드릴 수가 없어요. (결혼한) 누나를 봐요. 전혀 안 보태잖아요. 대신 결혼하고 애를 낳았죠. 그럼 효녀예요?

어머니 우리 동네에 혼자 사는 남자들이 많아. 그게 안타까워서 그래. 네 아버지가.

 엄마, 동네에 찌질하게 사는 아저씨들, 그분들은 혼자 살아서 찌질한 게 아니고 그냥 찌질한 사람들이라서 찌질하게 사는 거예요. 저는 나이 들어서도 직장에서 돈 벌고 전문직으로 멋지게 잘 살 거예요.

아버지 그래 그건 엄마가 말 잘못했네. 어떻게 우리 아들을 그런 사람들이랑 비교해?

어머니 헤헤헤.

 엄마 아버지. 내가 용돈 많이 드릴게. 근데 전 결혼은 안 할 거예요.

아버지 너와 나는 하늘과 땅 차이구나.

 제가 지금 불효하는 거예요?

아버지 그렇지. 불효하는 거지. 넌 그럼 여기저기 민들레처럼 막 씨를 뿌리고 다니겠다는 거야?

 아버지는 그런 본능 없어요? 아버지도 꾹 참고 사는 거 같지도 않더만. 아까 얘기하는 거 보니까.

어머니 하하하하.

 엄마는 참 속도 좋다.

아버지 아…

어머니 뽀삐야. 이제 차가 씽씽 달리네. 저 봐라. 봉고차에 사람도 있네. 그지?

아버지 그래.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제 입씨름도 지쳤어.

 정말? 그러면 다시는 결혼하란 얘기 안 하는 거예요?

아버지 아니지. 몰라. 언젠가는 또 튀어나올지 몰라.

어머니 에헤라디야 에헤라디야 이리리리.(웅얼웅얼)

집엔 오후 5시가 넘어 도착했다. 다음날 오후 늦은 점심을 챙겨 먹으려고 식탁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동네 뒷산에 가시고 없다. 엄마가 밥을 차리며 말씀하신다. “이제 아빠가 더이상 결혼하라는 얘기 안 하신대. 네 뜻을 알겠다더구나. 아버지는 네가 가정을 꾸리는 즐거움을 누려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우신 거래.” 엄마가 새로 담근 어리굴젓이 눈에 들어왔다. 한입 물었는데 짠맛인지 신맛인지 잘 모르겠다.

수서동 30대 비혼 개아빠


(*위 내용은 2015년 2월 28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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