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가족 / 어느 오누이의 대화
▶ 10년 직장생활 동안 큰 불만 없이 살던 30대 중반의 한 직장인은 어느 날 고민이 들었습니다. ‘왜 나만 부모님 봉양을 하고 있는 거지?’ 그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누이는 부모님께 생활비를 대지 않았습니다. 최근엔 집도 샀습니다. 누이가 제 살 길만 살핀다고 불만이 들어 동생은 누이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누이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인터뷰;가족 투고 gajok@hani.co.kr

올해 나는 30대 중반이다. 아버지는 칠순을 훌쩍 넘겼고, 어머니도 그즈음이다. 두 분 모두 나이 들었고 이젠 나 없이는 경제적으로 버틸 수 없는 분들이다. 두 분은 평생 열심히 일하셨지만 한국에서 하층 노동자의 인생이 그렇듯 재산 한 푼 모아둔 게 없다. 당연하게도 나는 부모를 봉양하며 산다.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도 있듯 부모를 봉양하는 건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나만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거지?’

나에게는 세 살 터울의 누나가 있다. 누나는 십오년 전 매형과 결혼해 애 둘 낳고 그럭저럭 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작지만 네 식구가 얼추 살 만한 빌라도 장만했다.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매달 40만원 정도의 빚만 갚으면 된다니 ‘하우스푸어’까지는 아닌 것 같다. 결국 그 빚 다 갚으면 그 집은 결국 누나와 매형의 재산이 될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난 부모님께 매달 백만원씩의 생활비를 드려왔다. 누나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누나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누나도 사는 게 빠듯하니까 그렇겠지.’ 식당 서빙 따위로 돈 버는 누나, 봉제공장의 작업보조인으로 일하는 매형. 둘 모두 근면성실하게 애 둘 잘 키우는 것만도 어디냐며 난 누나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와 매형이 근면성실하게 일하며 모은 돈으로 집을 샀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부터 나는 왠지 내 통장 잔고를 살펴보게 되었다. 6천만원이 있었다. 특별히 모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께 생활비 드리고 내가 쓰고 남은 돈 대충 은행에 넣어두니 그 정도 모여 있었다. 누나가 집을 산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 감정과는 별도로 어딘가에서 이상한 감정이 스멀스멀 생기는 것을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누나를 찾아갔다. 찻집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둘만 앉아 이야기해보는 게 10년 만인지 20년 만인지 모르겠다.

누나가 집을 샀다는 소식에
축하하면서도 이상한 마음
왜 나만 부모 부양 책임지나
솔직히 불만 털어놓기로 했다

누나는 내게 미안해하면서
남편 몰래 가끔 용돈 드린단다
정기적으로 큰돈은 힘들다며
눈물 쏟으니 되레 미안해졌다

 누나는 사는 게 즐거워?

누나 즐거워? 무슨 일로 즐거울까. 그냥 월급 나오면 월급 받고, 밥 먹고, 오로지 자식 둘 키우는 걱정밖에 없지.

 누나는 왜 살아가는 걸까 고민할 때가 있어?

누나 그런 거 생각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애들이 다 크면 모를까. 지금은….

 나는 사실 요즘 내가 무엇하며 살아가는 건지 모를 때가 있어.

누나 너가 자식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글쎄. 결혼이나 자식이 중요한 변수는 아닌 거 같아. 10년 동안 회사생활 하면서 난 모은 돈이 너무 없는 거야. 통장을 들여다보는데 서울에 전셋집 하나 구할 돈도 없더라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는 건 왜 늘 나만의 몫이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누나 너 연봉이 얼마니?

 이제 3000만원 조금 넘을 거야. 누나는 매형이랑 같이 돈 벌면 월 소득이 얼마나 돼?

누나 400만원 조금 안 돼.

 나는 누나가 매형과 조카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걸 보는 게 기뻐. 누나를 응원해.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줘. 다만 누나도 똑같이 자식인데 왜 누나는 정기적으로 부모님께 생활비 드릴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애 둘 키우느라 빠듯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일 거라 생각은 하는데.

누나 나도 돈을 모으고 있기는 해. 갑자기 필요한 일 있을까봐. 애기 아빠(남편) 몰래. 이번 어버이날에도 시댁에는 한푼도 못 보냈어. 근데 아빠(아버지)한테는 몰래 줬어.

 그걸 왜 몰래 해?

누나 시부모에게는 주지 않았는데 어느 한쪽만 줄 때 (남편이) 기분 좋겠어?

 누나도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부양비를 보탤 수는 없을까. 내가 1 대 1로 분담하자고는 않겠어.

누나 너도 결혼을 하지그래?

 내가 결혼을 하면 누나도 부모님 부양비 1 대 1로 나눠 줄 거야?

누나 근데 그렇게 생활비가 많이 드냐?

나 잘은 모르겠어. 내가 생활비 드린 걸 어디다 쓰는지 어머니께 물어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월세 내고, 식비, 그리고 병원비 등등 이것저것 많이 들겠지.

누나 노령연금도 나올 거잖아.

 맞아. 부모님이 지금 되게 못살고 계신 건 아냐. 다만 부모님 부양을 왜 나만 해야 하는 걸까 그 고민을 나누러 온 거야.

누나 나도 조금씩 용돈 드리잖아.

 나도 따로 용돈 드리거든. 냉정하게 따지면 나는 월 110만원이나 120만원씩 드리는 셈이네.

누나 아이고. (한동안 말이 없다.) 답답하다. 나에게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매형에게 말 좀 해볼까?

누나 난 네 매형에게 그런 짐을 주고 싶지 않아. 왜냐면 그 사람도 나에게 시부모 봉양하라는 짐을 주지 않으니까. 평생 사위가 아들은 될 수 없고 며느리가 딸이 될 순 없어. 그런 거야. 나도 빠듯하다. 돈 백만원 몰래 모으는 것도 힘들다.

 내 주변에 물어봤어. 다들 형제끼리 남녀 구분하지 않고 부모님 부양비는 평등하게 분담을 한대. 그러니 누나를 찾아가서 솔직한 이야기를 한번쯤은 해보라고 하더라고.

누나 글쎄. 내가 형편이 되어야 공동 분담을 하지. 그게 되냐고. 아….

 그렇다고 마음 약하고 효심이 있는 사람만 희생하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아니다. 그 말 취소할게. 누나도 효심이 있겠지. 다만 형편이 안 되니까….

누나 나는 효심보다 원망이 큰 사람이야.

누나에게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학업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가출해 공장에 취업해서 돈을 벌었고 누나는 그냥 그렇게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누나는 부모님과의 연을 느슨하게 유지해왔다. 누나는 청소년기에 자신을 잘 돌보지 않은 부모를 원망했다. 스스로 가출해놓고 왜 부모를 원망하는 건지 나는 누나를 이해 못한다. 예민한 문제라 누나와 이 문제는 깊이 이야기하려 하지 않아 왔다.

누나 난 효심 없어. 원망밖에 없어. 엄마 아빠한테 뭐 받은 게 있어야지.

 나도 뭐 받은 거 없어. 엄마 아빠가 비록 하시던 사업이 망해서 어느 순간 엄청나게 가난해졌지만 두 분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사신 건 맞잖아.

누나 아등바등 안 사는 사람도 있냐.

 한국에선 하층 노동자로서 아등바등 살아봤자 돈 모으며 살기는 어렵지.

누나 나랑 네 매형도 하층 노동자야. 아등바등 살면서 그래도 집도 샀어.

 그래 잘 하고 있어.

누나 악을 쓰고 일한 거야.

 아버지는 사업 망하고 지하철 공사 막노동도 하고 노점상도 하고 엄마는 식당 주방에서 계속 일하다 병도 나셨지. 그렇게 열심히….

누나 나한테 너무 많은 짐이 있고 해결할 방법은 없고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답답하겠지. 내가 괜히 누나한테 이런 얘기 꺼낸 거 같아.

누나 너는 그래도 고소득자잖아.

 연봉 3천 좀 넘는 게 무슨 고소득자야. 혹시 내가 사내자식이니까 부모님 봉양을 혼자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나 그건 아니야. 그냥 나도 네가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 힘들겠다는 생각은 해.

누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갑자기 눈물을 쏟는 누나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누나에게 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답을 고민해보라고 말하러 온 나 자신이 좀 원망스러워졌다. 누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나도 싫다.

누나 난 너에게 미안해. 항상 네가 내 가슴에 있어.(울먹) 네가 (부모님께) 하고 있다는 거 아는데 못하고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어.(울먹)

 됐어 누나. 누나가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단 걸 들은 것만으로도 마음속 불만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 누나에게 뭘 어떻게 하자고 말하려고 온 건 아니야. 그냥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야.

누나 음….

 누나, 애들 잘 키우는 게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몰라.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야.

누나 음….

 어쩌면 그게 진짜 제대로 부모님 봉양하는 것일 수도 있어. 애 잘 키우고 가정 잘 꾸리는 거 그런 거. 누난 그걸 하고 있는데 난 안 하고 있으니까 돈으로 돌려막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누나는 누나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봉양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

누나 에휴. 그러게 말이다. 에휴.

다시는 누나에게 부모님 봉양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부모 봉양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니까. 내가 이만큼 하고 있으니 형제자매에게 그만큼 하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각자 형편대로 알아서 잘 하길 기대하는 수밖에. 나는 나의 부모님만큼 누나도 사랑한다. 강남의 미혼 30대 직장인


(*위 내용은 2015년 9월 4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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