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순서가 아이들의 성격에 끼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고들 한다.
우리 집 아이들만 보아도 그렇다.
첫째 7살 신영이, 둘째 4살 선율이, 셋째 갓 돌 지난 수현이의 관계에서 
둘째인 선율이는 자기 주장도 강하고, 매사에 주체적이다.
세상에 나왔을 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부모의 사랑을 언니와 나눠가져야 하는 운명이니
스스로 뭔가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둘째의 운명은 세 남매 사이의 관계에서도 애처로운 면이 있다.
셋이 놀 때 신영이가 선율이보다는 수현이를 더 싸고돌기 때문이다.
신영이가 선율이는 견제하거나 따돌리는 반면 수현이에게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수용의 태도를 보인다.
때론 노골적으로 선율이보다 수현이가 더 좋다고도 말한다.
이래저래 중간에 낀 선율이는 부모의 사랑도, 언니의 사랑도 온전히 받지 못하니 억울하고, 분할 것이다.
그러니 세 남매의 삼각 관계에서 둘째는 서럽다.

선율.jpg

여기에 조카들까지 더해지면 선율이의 설움은 더 커진다.
아이들 고모네는 다섯 살 여자 아이와 세 살 남자 아이가 있다.
신영이와 선율이 사이에 하나, 선율이 아래로 하나가 더해지는 것인데,
다섯이 놀 때 신영이는 자기 동생보다는 다섯 살 친척 동생을 더 많이 데리고 논다.
선율이는 여기서도 또 한번 치이는 셈이다.
그래도 선율이는 두 언니들을 따라 다니며  언니들이 노는 데 끼려고 하는 꿋꿋함을 보이긴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선율이 역시
자기 동생보다 친척 동생이 더 좋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기 바로 밑의 동생은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제는 선율이가 열이 나고 힘들어 해서 아내가 많이 안아주고, 데리고 있어 주었다.
아직 어린 수현이는 내가 돌보았다.
다행히 신영이는 일곱살 맏이답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엄마아빠의 심부름을 해주고,
혼자서도 잘 놀아주었다.
요새 부쩍 신영이가 동생들을 돕거나 엄마아빠의 심부름을, 
시키지 않아도 미리 알아서 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내와 내가 참 듬직해하고 있다.
그런데 저녁쯤 되자 신영이가 엄마한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동생만 안아주고, 자기는 안아주지 않고, 자기도 힘든데, 자꾸 자기만 시킨다는 거였다.
하루 종일 울고 보채는 선율이에게 지친 아내는 신영이의 시샘을 받아주다가도 
'엄마도 힘들다'고 말하기도 하고, 
'지금은 동생을 안고 있으니 조금 이따 안아줄게.'하며 다시 달래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내는 출근하고, 내가 아이들 아침 먹이면서 유치원 가기 전에 소아과에 가려고 준비하던 참이었다.
선율이 양치질을 도와주고 있는데 
신영이가 치마를 입으려다 스타킹이 잘 안 신어진다면서 도와달라길래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선율이 양치를 시킨 뒤 선율이를 데리고 있는 김에 선율이의 옷을 먼저 입혀주었다.
그러자 신영이가 소리쳤다.
"아빠, 나는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왜 선율이부터 옷 입혀줘?"
"미안. 아빠가 선율이 양치한 김에 얼른 옷까지 입히려다 보니 그렇게 됐어. 미안해. 
신영이도 얼른 입혀줄게."
신영이의 불만은 단순히 순서를 지키지 않아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선율이는 울기만 하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물론 아빠까지 선율이만 돌봐주는 거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간신히 달래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소아과에 가는데, 
가는 내내 신영이의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 유치원 안 갈래. 아빠가 선율이만 먼저 옷 입혀줬잖아."
"신영이 그래서 화났구나. 유치원 안 가고 싶을 만큼 화났어?"
"응. 아빠가 화 풀어줘도 유치원 안 갈 거야. 안 가."
결국 자동차 안에서, 그리고 소아과에서, 약국에서 신영이의 계속된 투정을 들어주어야 했다.
다행히 약국에서 기분이 풀린 신영이는 유치원에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런데 삼각 관계는 아이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아내와 나, 수현이 사이에도 있다.
태어난 지 한 달 뒤부터 돌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수현이를 돌보다 보니 수현이에게는 내가 '엄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서 배고플 때도 아내보다 나를 보고 걸어오고,
졸려서 보챌 때도 아내가 안아주면 울다가도 내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친다.
엊그제도 잘 시간이 되어 졸려 하자 아내가 안아주려고 팔을 벌렸는데,
수현이는 아내를 지나쳐 내게로 걸어왔다.
아내는 "수현이가 자기랑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된 것 같아."라고 말했다.
다행스러움과 안도감을 표현한 말이었는데, 왠지 아쉬움과 서운함도 느껴졌다.

신영이와 선율이는 내가 1년씩 키우기도 했지만 워낙 어려서부터 엄마랑 보낸 시간이 많고
잘 때도 항상 엄마 손을 잡고 자는 버릇이 있어왔다.
그래서 아내랑 내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가끔 내가 
"신영아, 선율아, 아빠 손 잡고 잘래?"하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이 
"아니, 엄마 손 잡고 잘래."다.
그럴 때마다 당연한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엔 약간의 서운함이 있었다.
아빠라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내가 지금껏 키워온 수현이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나를 찾고,
잘 때도 내 손을 잡고 잔다.
이런 상황을 보는 내 마음은 흐뭇하고, 감격스럽다.
반면에 아내는 약간 씁쓸해 한다.


소아과에서는 선율이가 열도 나도, 속도 안 좋으니 미음을 주라고 한다.
집에 온 뒤 미음을 끓여 먹여주었다.
먹고 나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눕길래
"선율아, 책 읽어줄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길래 그림책 두 권을 골랐다.
<감기 걸린 날>과 <장수탕 선녀님>을 읽어주었다.
두 권 모두 감기 걸린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이다.
다 읽고 난 뒤 선율이는 내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잠든 선율이를 보며 우리 가족 안의 삼각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족 안의 다양한 삼각 관계에서 둘째인 선율이는 항상 '을'인 것처럼 보인다.
선율이가 사랑하는 상대(엄마, 언니, 아빠)는 선율이보다 다른 가족(언니, 동생)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것 같다.
혹은 혼자서만 온전히 받고 싶은 사랑을 언니나 동생이랑 나눠서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선율이가 삼각 관계 안에서 '갑'인 경우가 있다.
바로 아내, 선율이, 나의 관계다.
내가 선율이를 안아주려 하거나 손을 잡으려 하면 선율이는 뿌리친다. 
그리곤 엄마한테 안기거나 엄마 손을 잡는다.
난 상처받는다. (나도 선율이의 사랑을 받고 싶다.)
그래도 난 선율이가 좋다.
선율이를 안쓰럽게 보는 마음 때문이 아니다.
선율이는 남매들 중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이고, 긍정적이다.
선율이는 자기만의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선율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돼!"였다.
엄마아빠가 '그건 위험해서 안 돼. 지금은 시간 없어서 안 돼. 그리고 이러저러해서 안 돼.'라고 말할 때마다
선율이는 한 마디로 답했다.
"돼!"
엄마아빠에게는 안 되는 것도 선율이에게는 '되는(가능한)' 일이었다.
말을 좀 더 길게 할 수 있게 된 때부터는 "이러이렇게 하면 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율이의 이러한 긍정성을, 그 특별함을 사랑한다.
그래서 아내, 나, 선율이의 삼각 관계 안에서 나는 언제나 '을'이다.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을'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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