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셋을 모두 직접 키워보아서 어느 아이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사랑스럽고 애틋하지만 막내는 좀 더 각별한 구석이 있다.
갓난 아이 때부터 내가 키워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몇 살 때 내가 육아휴직을 했는지 헤아려보니
첫째는 18개월 때, 둘째는 26개월 때 시작했고, 셋째는 태어날 때부터였다.
갓난 아이 때부터 돌이 된 지금까지 직접 분유 먹이고, 업어 재우며 키웠고,
아이도 엄마보다 아빠인 나를 더 찾아서 그런지 
수현이는 내게 좀 특별하고, 더 애틋한 면이 있다.

수현이가 위의 누나들보다 애틋한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막내 수현이가 태어난 직후 
아내는 산후조리를 위해 수현이와 함께 처가에 있었다.
그런데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수현이에게 청색증이 왔다.
청색증은 입술이 파래지면서 호흡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증상이다.
당시 나는 첫째, 둘째와 함께 우리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아이들 재워놓고 자고 있던 새벽 3시 쯤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떨렸다.
'아이가 숨을 못 쉬니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자고 있는 신영이와 선율이를 그대로 안아 차에 태우고, 처가로 갔다.
아이 둘은 처가에 맡겨 두고, 아내와 함께 수현이를 데리고 충북대 병원 응급실로 갔다.
신생아인데다 청색증이라 입원해서 지켜봐야 하는데, 
신생아 입원실은 꽉 차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인근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어 신생아 응급실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시간 넘게 전화를 걸어봐도 모두 자리가 없었다.
의사가 아이에게 아무것도 먹이면 안 된다고 해서
모유도 먹지 못한 수현이는 배가 고파 축 쳐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더구나 아이 낳은지 나흘 밖에 안 된 아내는 산후 조리가 필요한 시기에
아이가 아프니 몸도 마음도 힘들어했다.
다행히 아이 이모부가 대전에 있는 대학병원에 자리가 있는 걸 알고 
연락해주어 급하게 그쪽으로 가서 아이를 입원시켰다.
아이는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다음날부터 나는 슈퍼맨이 되어야 했다.
신영이(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간단히 집안 일들을 해놓은 뒤,
선율이(둘째)를 데리고 30분 거리의 처가에 가서 맡겼다.
그리고 입원해서 인큐베이터에 있는 수현이의 상태도 보고, 의사와 면담도 하기 위해 한 시간 거리의 대전 병원에 갔다.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있는 수현이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다.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큐베이터에 있는 수현이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처가로 돌아와 선율이를 데리고 집으로 급하게 왔다.
유치원에 있는 신영이를 데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 때는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재운 뒤에 다음 날에는 또 같은 일의 반복...
여드레를 그렇게 보내고, 수현이가 퇴원했다.
난 파김치가 되었고, 퇴원 뒤에 몸살이 왔다.

퇴원 후 보름 정도를 처가에서 보낸 뒤 수현이와 아내는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 내가 수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벌써 돌이 되었다.
그러니 수현이의 돌을 맞는 감회는 정말 남다를 수밖에 없다.

돌잔치에는 양쪽 부모님과 동생 가족들이 모였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지금부터 돌잔치 풍경을 간단히 그려본다.

1. 돌잡이
돌잡이 물건으로 쌀, 실, 돈, 그림책, 공, 공책을 놓았다.
쌀과 실, 돈은 예부터 내려오는 것이니 그대로 따랐다.
요즘엔 마우스나 청진기도 많이 놓지만, 
우리 부부는 수현이가 
사회에서 흔히 좋은 직업이라 일컫는
특정 직업을 갖길 바라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건 제외했다.
대신 우리 부부가 바라는 가치를 돌잡이 물건에 담고 싶었다.
그림책은 지혜롭게 살라는 뜻에서,
공은 즐겁게 살라는 뜻에서 놓았다.
그리고 공책은, 스케치북을 사지 못해 공책으로 대신 한 것인데,
'너의 그림을 그려라.(네 삶의 주인이 되어라.)'는 의미를 담았다.
스케치북을 못 사서 공책으로 대신했으니
'네 이야기의 저자가 되어라.'라는 뜻이 된다. 
부모가 바라는 삶 말고 
'네가 원하는 삶의 주인으로 살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
.
.
정작 수현이는 돈을 집었다.ㅠㅠ
'네 삶의 주인이 되라'는 바람 또한 부모의 바람으로 그치고 말았다.
수현 돌잡이.jpg
 
2. 누나들의 편지
원래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돌잡이일텐데,
이날 수현이 돌잔치의 백미는 돌잡이가 아닌 누나들이 쓴 편지 읽기였다.
올해 일곱살이 된 신영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한글로 직접 편지를 써와서 읽었다.

수현이에게
수현아 사랑해
수현이가 빗 갖고 노는 게 귀여워
수현아 누나들이랑 노는 거 재밌어
돌잔치 축하해
수현 정말 귀여워.
수현 돌잔치-1신영이 편지.jpg
둘째 선율이는 네 살인데, 아직 한글은 모르지만, 언니가 한글 쓰는 걸 보고,
자기도 동생한테 편지 쓰겠다며 몇 글자를 '그려왔다'.
어른이 보기엔 알아볼 수 없는 기호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선율이가 편지를 들고 나와 직접 읽었다.
 
수현아, 누나가 때려서 미안해.
수현 돌잔치-2선율이 편지.jpg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돌잔치 전날, 동생 때리지 말라고 선율이를 나무랐는데,
선율이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동생 생일이라고 편지를 쓰다가 그게 생각 나서 사과의 편지를 쓴 거다.
선율이 편지 내용을 들은 어른들은 박장대소하며 크게 기뻐했다.

 
3. 육아하는 아빠로서 들은 말
식사를 마친 뒤, 평소 말씀을 많이 안 하시는 장인 어른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모든 식구들 앞에서 한 말씀해주셨다.
 
"박 서방이 한 해동안 수현이 참 잘 키웠어."
 
기분 좋고, 뿌듯했다.
무엇보다 수현이가 한 해 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가족과 이웃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갓난 아이를 포함한 세 아이를 키운 나 또한 대견하다.
 
"예, 감사합니다. 다들 이렇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4. 육아하는 아빠로서 해준 말
돌잔치 며칠 전, 처제는 쌍둥이를 낳았다.
그래서 처제와 쌍둥이 조카들은 병원에 있었고, 동서만 참석했는데,
식사 중에 동서가 나에게 물었다.

 "아기가 울 때 왜 우는지 아는 방법이 있어요?"
 
이제 갓 아빠가 된 동서에게 아이를 키우는 기술이나 방법보다는
사랑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었던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오랫동안 아이랑 지내고, 교감하면서 경험으로 짐작하게 되는 거라 생각해요."

 
세 아이를, 
그것도 막내가 돌이 되어 걸을 수 있을 만큼 키운 나는
갓 태어난 쌍둥이를 키워야 하는 처제와 동서, 그리고 장모님이 안쓰러웠다.
대화 중에 기저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장모님께 팁을 하나 드렸다.
"면 기저귀 쓰시되
아기 재울 때는 종이 기저귀 쓰면 아이나 부모 모두 좋더라구요.
면 기저귀 차고 자면 아이가 자다가 기저귀가 축축해지면 깨서 울거든요. 
아이가 울면 어른도 깨게 되고요.
저희도 신영이, 선율이 때는 잘 때도 면 기저귀 채워 재웠는데,
수현이는 몇 달 전부터 잘 때는 종이 기저귀 채워요.
그러니까 자다 깰 일도 적어지고, 좀 더 푹 잘 수 있어요."

수현이 돌잔치는 이렇게 끝났다.
작년 한 해, 참 힘들게 보냈지만, 
나에겐 엄청 소중하고,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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