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할까, 말까?

가족 조회수 7595 추천수 0 2013.10.14 07:11:18
지난 금요일 저녁이었다.
선율이(둘째)를 목욕시키고 나오려는데, 거실에서 '뻥' 하고 큰 소리가 났다.
뭔가 떨어졌나 싶어 얼른 거실로 뛰어나와 '무슨 소리야?'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신영이가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다.
두 살된 막내 수현이가 신영이 풍선 위에 엎드려 놀다 그만 풍선이  터진 것이다.
수현이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앉은 채 눈치를 살피는 것 같고, 신영이는 엉엉 운다.

신영: "수현이가 내 풍선 터트렸어~ 으아앙."
아빠: "신영이가 많이 속상하겠다. 수현이가 신영이 풍선을 터트렸네? 
수현아, 얼른 누나 안아주고 '미안해' 해야지."
하면서 수현이 손을 신영이 쪽으로 데려가자 수현이가 누나를 안아준다.
신영이는 여전히 크게 운다.

"신영아, 많이 속상하니?" 물으면서 
욕실에서 목욕 마치고 기다리던 선율이를 데리고 나왔다.
선율이 몸을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 동안에도 
신영이는 계속해서 운다.
"신영이가 많이 속상한가 보네. 수현아, 누나 한 번 더 안아줄까?"
그러자 수현이가 거실 바닥에 누워서 훌쩍 거리는 누나 위에 
양손을 뻗으며 엎드려 안아준다.

선율이의 머리를 다 말리고 빗질까지 해주니 그제서야 신영이가 울음을 그치고 말한다.
신영: "아빠, 나 풍선 새로 사줘. 수현이가 내 풍선 터트렸으니까."
아빠: "아빠가 풍선을 새로 사주면 좋겠어?"
신영: "응. 많이 들어 있는 걸로.10개 넘게 들어있는 거."
아빠: "많이 들어 있는 풍선 사줘? 
         그래. 선물로 받은 풍선이 터진 거니까 아빠가 사줄게."
신영: "파란색 풍선 있는 걸로 사줘."

그러자 선율이도 옆에서 거든다.
선율: "빨간색 풍선도 있어야지."
신영: "그래, 파란색이랑 빨간색 풍선 들어있는 걸로 사줘."
선율: "하늘색도!"

신영이의 속상함이 좀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목욕을 시키러 신영이와 욕실에 들어가는데, 신영이가 묻는다.
"아빠, 내가 왜 수현이 안 혼냈는지 알아?"
"그래, 맞다. 신영이가 많이 속 상했을텐데, 수현이한테 화 안 내더라? 
화도 나지 않았어?"
"어, 화났어. 수현이가 내 풍선 터트렸잖아. 
그런데 수현이 왜 안 혼냈냐면 풍선은 새로 사면 되잖아.
그리고 어차피 풍선은 시간 지나면 저절로 터지기도 하니까.
저번에 OO 언니네 놀러갔을 때도 침대 밑에 풍선 넣어놓았는데, 
나중에 저절로 터졌어."
"아, 풍선은 저절로 터질 수도 있고, 새로 사면 되는 거라 수현이한테 화 안 낸 거야?"
"응. 그리고 수현이는 귀여우니까."
"수현이가 귀여워서 봐준 거야?"
"어. 수현이는 귀여운 동생이잖아."
"수현이가 신영이 풍선 터트려서 속 상하고 화나는데도 
수현이가 귀여워서 화 안 내고 울기만 한 거구나?"
"응."

신영 셀카.jpg
(얼마 전 신영이가 찍은 셀카 사진)

신영이가 참 대견했다.
신영이의 말을 들으면서 칭찬을 해줄까, 말까 잠깐 고민했다.
'우리 신영이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동생이 실수로 신영이 풍선 터트려서 속 상했을텐데, 
동생한테 성질 부리지도 않고 말야.
신영이가 동생을 아주 많아 아끼는 걸 보니까
아빠가 참 흐뭇하고 기쁘다.'라고 칭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영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걸로 
충분한 격려가 된 게 아닌가, 그러면 여기서 멈추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잠깐 사이에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결국 멈추기로 했다.
신영이가 이미 스스로 자기 행동에 대해 뿌듯해 하고 있는 걸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빠가 자신이 한 행동을 알고 있고, 
그 행동에 대해 의미 있게 말해주는 걸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격려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상태에서 칭찬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칭찬은 부모가 기대하는 행동을 할 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거나
'칭찬은 자기 만족이 아닌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들도 생각났다.
내 고민은 이 시점에서 칭찬하는 게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지,
아니면 '칭찬의 역효과'를 일으킬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 데서 시작되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바라는 게 뭘까?'
아이가 속상하고, 화날 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감정을 표현할 때 폭력이 아닌 방법으로 표현하는 일이 많아지길 바란다.
'칭찬 받을 만한 일들'을 다른 사람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좋아서, 스스로 선택해서 하길 바란다.
칭찬을 받고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해서 행동하고, 그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
그때 자기 행동이 만족스러워서 그걸 스스로 뿌듯해 한다면 나도 기쁘고 흐뭇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나의 바람에 비추어볼 때 그날 신영이의 모습과 나의 선택은 어땠을까?
신영이는 속상하고, 화나는 마음을 꺼이꺼이 울면서 속상하다고 말하는 걸로 표현했다.
동생을 때리거나 밀치지 않았고, 울음과 말로 자기 감정을 표현했다.
이런 행동은 아빠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나왔다.
그리고 동생을 혼내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만족해 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내가 보인 반응이 칭찬으로서 효과가 있었는가'와
'더 적극적인 칭찬을 하지 않은 게 적절했나' 하는 것이다.
신영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되비추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격려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신영이가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정말 크구나.' 같은 말을 해주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칭찬을 해주는 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도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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