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 3년 째인 지금 휴직 첫 해를 돌아보면 많이 힘들고, 지쳤던 기억이 난다.
그땐 아이가 하나였지만 
직장을 쉬고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하면서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익숙치 않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한다고 해서 딱히 표도 나지 않는 게 집안일과 육아인 것 같았다.
새롭게 정리를 하거나 말끔하게 청소를 했는데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면서도,
그걸 말하자니 구차했다.
그리고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면 다시 직장 일에 적응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렇게 2009년의 첫 휴직을 마치고 복직해서 2년을 보낸 뒤 작년에 다시 두 번째 휴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이 휴직 첫 해에 겪은 어려움의 원인 중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부모 역할을 다룬 책을 읽다가 '보살핌을 제공하는 자로서의 자신을 보살피기'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말을 통해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돌보고, 직장일을 하는 아내를 '내조'하며 한 해를 보내는 동안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는 살았어도 나를 위해서는 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육아와 가사라는 '서비스'를 하며 지치고 있는 나 자신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눈 앞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새로 휴직을 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을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적극적인 부모 역할 책 표지.JPG
(내게 '돌보는 존재인 부모 자신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책 <적극적인 부모 역할>의 표지.)

 
그래서 두 번째 육아 휴직을 시작할 때는 이런 다짐을 했다.
'돌보는 존재인 나 자신을 보살피자.'
첫 해 때의 시행착오도 있었고, 더구나 아이가 셋으로 늘었으므로 이런 다짐은 나에게 절실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하루 일과 중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육아 휴직 첫 해 때 생긴 스트레스의 원인 가운데는 충분히 쉬지 못하거나 
자아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휴식과 자아 실현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했다.
하루 24시간 중 나를 위한 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막내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인 밤이나 새벽이 있었다.
휴직 첫 해 때 '아이를 재운 뒤에 책이라도 읽어야지'하고 맘 먹고 누웠다가 아이와 함께 잠든 적이 많았다.
그래서 밤 시간보다는 새벽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이들 재우는 시간이 10시 가까이 되어 너무 늦었다.
가족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9시 무렵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저녁 일과를 서두르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막내가 새벽에 깨서 분유를 찾는 것이었다!
새벽에 깬 수현이에게 분유를 타서 먹이고 잠들면 졸려서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결국 잠 드는 시간은 당겨졌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이전에 비해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를 보냈다.
수현이가 새벽에 배 고파 깨는 일도 점점 줄고, 첫째와 둘째 아이의 잠자는 시간도 9시 무렵으로 자리잡아 갔다.
그 뒤로는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의 새벽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두 번째 계획은 한 달에 한 번 상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매달 한 번 1박 2일로 상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래 아내에게 말을 꺼내보았다.
'당신이 부담되고, 힘은 들겠지만,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아이들과 당신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보다 
한 달에 한 번 거기 가서 숨통을 틔우고 오면 우리 가족에게도 더 나은 게 아니겠어?'
다행히 아내는 흔쾌히 승낙했다.
처음 그 과정에 신청할 때만 해도 상담을 공부하러 간다기보다는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다녀온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한 달에 한 번은 공식적으로 그걸 풀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하는 기분이 아주 가벼웠다.

사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직장 다니는 아내에게 아이 맡기고 1박 2일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은 부담이 많이 되었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그래서 주말 사이에 아내와 아이들이 먹을 끼니를 모두 계산해 미리 반찬을 다 만들어두었다.
아내가 전혀 요리하지 않고 냉장고에서 꺼내 먹기만 하면 되도록 준비해두고,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공부라기보다 휴식으로 시작한 상담 공부는 휴식 그 이상의 것을 나에게 주었다.
내가 느끼지만 민감하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과 바람을 알아차리게 되고, 그걸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내와의 대화도 훨씬 편안해졌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거나 아이들에게 꾸중을 하는 데에도 요령이 붙었다.
말하자면 상담 공부는 돌보는 존재인 나 자신을 돌보게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돌보는 나의 역량을 더 키워주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휴직 둘째 해를 보내면서 첫 해 때의 시행착오는 많이 줄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가는 짜증도 줄고, 아이들을 이해하는 눈은 더 밝아진 것 같다.
작년에 이어 휴직 3년차를 보내고 있는 지금은 
'돌보는 존재인 자신을 보살피기'로 했던 선택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요즘도 아내가 업무 때문에 야근하는 날이 많아지면 힘들고 지친다.
그럴 땐 아내의 업무가 줄어들 무렵의 휴일을 골라 3시간 짜리 휴가를 얻어 영화를 보고 온다.
휴직 첫 해 때 단 한 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에 비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다.

휴직 첫 해 때는 내가 양보하더라도 가족을 위해 서비스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을 더 잘 챙기기 위해서라도 나를 꼭 챙긴다.
그리고 가족을 챙기는 일을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걸 바라기 때문에 하는 일 즉,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로 여긴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즐겁게 하고, 
내가 지치거나 힘들어서 하고 싶지 않을 땐 내 상태를 알리고, 쉬거나 잠시 벗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보내고 있는 지금은 몸도 마음도 덜 지친다.
아이가 셋으로 늘어 휴직 첫 해에 비하면 상황이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음에도 
그때보다 더 평화롭게 보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고, 기쁘다.

내년이면 아내와 나의 역할을 교대하게 된다. 
즉, 난 복직을 하고, 아내는 휴직을 할 거다. 
그땐 내가 휴직하면서 누린 휴가를 당연히 아내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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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가위입니다.
가족을 위해 '서비스'하게 될 많은 주부님들,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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