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가족] 다시 만난 주말부부

▶ 결혼까지 했는데 주말부부로 떨어져 산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안돼 보입니다. 둘이서 부대끼며 살기 위해 하는 게 결혼이라 생각했으니까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도 은근 신경 쓰이고요. 그래도 식지 않는 연애감정을 느끼며 알콩달콩 사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여기까지는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주말부부가 다시 함께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은 아침 6시20분. 오늘도 깨고야 말았어. 여보, 요즘 당신이 나한테 자기 전 하는 인사가 뭔지 알아? “잘 자”가 아니라 “내일 나 5시 반에 일어나야 돼”야. 내가 인간 알람이니? 알람 맞추듯 나한테 그렇게 세뇌하고 나면 내가 잘 잘 것 같지? 지난 2년간 내가 얼마나 잘 자는 인간인지 확인했으니 이내 잠들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니야.

결혼하고 강적을 만났어. 누가 머리만 대면 잔다는 말의 증거를 대보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당신을 보여줄 거야. ‘5시 반’ 인사를 전하고 눈 감은 당신의 얼굴을 보면 벌써 고요와 평화가 깃든 깊은 숙면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는 게 느껴져. 어떻게 그렇게 스위치를 끄고 켜듯 잠들 수가 있는 거지?

두 달 전 우리는 2년7개월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했어. 거슬러 올라가자면 10년 전 우리 주말 커플로 시작했지. 중간에 1년쯤 헤어진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꼽아보니 세상에, 지금까지 내 인생 모든 주말의 3분의 일 정도를 당신과 나눠 가진 거 있지. 길고 긴 주말 커플의 끝이 올여름 드디어 찾아오고야 말았어. 당신과 같이 살게 될 생각에 좀 설레기도 했지만 사실은 걱정도 많았어. 스무 살 때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 독립해서 10년이 넘도록 누군가와 부대끼며 사는 것에서 멀어졌던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더라고.

실은 당신이 주말마다 올라와서 가끔 며칠 더 머물고 갈 때면 심리적으로 압박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거든. 이 사람 이제 자기 집에 가야 하는데 왜 가지 않지? 고백해, 사실 당신도 마찬가지였지? 내가 당신이 있는 집에 가서 좀 오래 머물라치면 날이 지날수록 당신 잔소리가 심해지더라고. 결혼하고도 싱글처럼 생활했던 우리가 갑작스레 한집에 살면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전화로 싸운 적이 얼굴 맞대고 싸운 적보다 더 많아서 실제로 말다툼할 때도 실수로 ‘끊어!’라고 소리지르기도 하던 우리가 과연 누군가와 공간을 나눠 가지며 잘 지낼 수 있을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더니 역시 문제는 엉뚱한 데서 튀어나오더라. 올여름 처음으로 불면을 겪었어. 잠자는 데 있어서는 고민이 없었는데, 이처럼 잠에 집착하고 잘 자고 싶다는 욕망으로 들끓기는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아. 몰랐는데 나 누가 옆에 있으면 잠을 잘 못 자는 타입이었나봐. 요즘 나의 밤은 그래. 당신이랑 따로 사는 동안 평소엔 새벽 1~2시에 잠들었지. 요즘은 옆에 있는 사람이 12시가 좀 안 돼서 잠자리에 드니까 나도 왠지 자고 싶어져서 옆에 눕긴 해. 근데 도통 잠이 들지 않아. 게다가 당신이 코까지 고는 날이면 흑,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먼. 주말부부로 지내는 동안 주말마다 만나면 내가 가장 좋아한 시간이 뭐였느냐면 밤늦게 당신이랑 같이 영화 보다가 잠드는 거였어. 당신은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도 끝까지 보잖아. 나는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이 사람보다 빨리 잠들어야 깊이 잠들 수 있다는 것을.

2년7개월간 떨어져 살다 두 달 전부터 같이 산 당신 
같이 살 생각에 설레었지만 싱글처럼 생활했던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됐어

올여름 처음으로 겪은 불면 누가 곁에 있으니 잠이 안 와 
지난 주말 당신이 집에 없으니 잠도 잘 자고 기분 좋아서 
콧노래까지 불렀던 것 같아

먼저 잠든 당신 옆에 누워서 한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당신이 잠들고 2시간쯤 후에 잠들어. 그리고 아침 5시30분에 맞춰둔 라디오가 갑자기 켜져서 떠들기 시작하고 알람 3개가 차례로 울리면 잠에서 깨서 당신을 흔들어 깨워. “제발 저것들 좀 꺼줘.” 그리고 당신이 나갈 준비 하는 동안 선잠에 들었다가 당신이 현관문을 열 무렵이면 완전히 잠에서 깨. 배웅하자마자 다시 침대로 뛰어들어서 1~2시간, 그때야말로 제일 단잠을 자. 5시30분 기상이라니 내 평생 없던 시간이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새벽같이 등교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늦잠 자고 일어나 콧구멍으로 밥을 먹고 머리카락은 젖은 빨래처럼 늘어뜨린 채 집에서 뛰쳐나가던 인간이라고.

긴 아침과 짧은 밤을 보내고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지금 당신과 사는 게 굉장히 좋아. 혼자 살 때보다 의지도 되고 마음도 안정이 되고. 뭐 사소하게는 창문을 확확 열어둘 수 있는 것도 좋아. 평일에도 데이트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즐거워. 다행히 남들처럼 치약을 중간부터 짜니 어쩌니 이런 것에 민감하지 않고 서로 적당히 관대한 것도 좋아.

그렇지만 우리 여전히 적응하는 데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지난 주말 느꼈어. 같이 살 게 된 지 두 달이 지나고 처음으로 주말을 따로 보내게 됐지. 당신 금요일 휴가를 얻어 고향집에 가는데 왠지 들떠 보이더라. “여보, 내일은 이 셔츠 입을 거야. 그리고 짐을 캐리어에 넣어 갈까, 배낭에 넣어 메고 갈까? 아, 그래도 제법 3일이니까~.” 아, 고작 3일인데 그냥 아무거나 입고 아무 데나 넣어 가라고. 싫은 척했지만 사실 그 주말에 나 오랜만에 정말 잘 잤어.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나 그날 대청소했잖아. 미안, 콧노래도 불렀던 것 같아. 날씨도 좋아서 창문에서 살랑살랑 바람이 들어오고 그 앞에 앉아 만화책 보는데 그렇게 한가할 수가 없더라. 우리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잠들고 혼자 친구 만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걸까?

그나저나 내가 이 편지 쓰기 전에 당신한테 물었지. 주말부부 청산하고 애로사항은 없느냐고. “없어.” 고민의 여지도 없이 단칼에 없다는 게 이상한데? 어허 우리 이래 봬도 10년차라고. 다시 한번 물었더니 당신은 이렇게 실토했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힘들어.” 헉,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니…. 이 이야기는 다음에 쓰도록 하자. 당분간은 구체적인 답을 듣지 않겠어. 왠지 나의 수면 문제나 서로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보다 더 크고 곤란하고, 무엇보다 왠지 내게 불리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어. 우리 웬만한 건 적당히 묻으며 살자고, 흠흠.

가끔 혼자 있고픈 결혼 3년차 아내


(*한겨레신문 2013년 8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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