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큰아들이 웬일로 전화를 다 했다 “엄마한테 전화 좀 하지 그래?”
차라리 이혼을 요구받음 좋겠다.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아내에겐 아이들이 있고 그런 한 계속 돈을 받을 테니…
어김없이 송금날짜는 다가온다

▶ “살인적인 사교육비와 경쟁 위주의 교육 풍토에서 자녀들을 구하겠다”며 많은 부모들이 ‘조기유학’을, 자발적 ‘이산가족’의 길을 택합니다. 가족은 함께 있을 때 진정한 가족 아닌가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부부는 더더욱 그럴 테고요. 오지 않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부모의 현재 삶을 저당잡히는 건 온당한 걸까요? 혹시 자식 교육은 핑계고, 소원해진 부부관계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기 위해 떠나고 계신 건 아닌가요?

 

“아빠, 엄마한테 전화도 좀 하고 그래.”

김찬호(가명·50)씨가 아침 회의를 끝마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미국에서 조기유학 중인 큰아들 나라(가명·17)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춘기에 접어든 뒤로 아빠랑 말 섞는 것도 귀찮아하던 녀석이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제 엄마 얘기다. “왜, 엄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수화기 너머 아들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다. ‘운전중이다’ ‘전화 신호가 잘 안 잡힌다’며 자주 전화를 끊었던 아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김씨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옆에 있니?” 미국은 지금 밤 9시, 당연히 집에 있어야 할 아내는 부재중이었다. “친구 만난다고 나가서 여태 안 들어왔어.”

그제야 입을 연 아들이 김씨의 질문에 하나둘 조심스럽게 답을 하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아들이 한 말들을 이어붙이면, 아내는 “최근 밤늦게까지 외출이 잦고” 만나는 사람 중엔 “남자들도 꽤 있으며” 그중에는 아들도 “3번가량 함께 만난 사람”도 있다는 얘기였다. 곧 아내가 바람이 났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기러기 엄마들의 불륜이 흔하디흔한 얘기였지만 ‘내 일이 될 줄이야’. 눈앞이 아득해졌다.

걱정하는 아들을 다독이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던 그날, 그날도 벌써 몇 달 전이다. 하지만 아내에겐 여전히 ‘진실’을 묻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정말 바람이 난 걸까?’ ‘만일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만 복잡하다.

김씨가 아내와 두살 터울인 두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건 8년 전이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둘째가 7살 때 일이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는 필수, 이왕 배우는 거 본토에서 배우게 하자. 경쟁적인 사교육에 애들을 시달리게 하지 말고 인간적인 교육을 시키자.” 남들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넓은 세상에서 키워야 안목이 넓어지지 않겠냐”며 아내가 더 적극적이었다.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게 영 마뜩잖았지만 아내는 강경했다. 유학비를 걱정해야 할 처지도 아니고, 사실 아이들 교육은 아내에게만 맡겨왔던 터라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김씨는 “큰애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만”이란 단서를 달아, 아내의 친척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족들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쓸쓸할 때도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자고 일어나 회사에 가고, 주말까지 접대 골프다 뭐다 바빠 외로움을 생각할 새도 없었다. 방학 때나 보는 얼굴이지만 아이들이 제법 버터 바른 듯한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걸 볼 때면 “잘한 일”이라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8년이 지났다. 어린애였던 아이들은 이제 청소년이 됐다. 코밑에 거뭇거뭇한 수염이 나오기 시작한 아이들은 이젠 만나면 서먹할 때가 더 많다. 한국에 나왔다가도 개학 준비다 뭐다 해서 금세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에겐 미국 집이 ‘우리 집’이었다. 이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약속했던 기간이 지났는데도 아내는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이란다. “내 생각은 안 해주나?” 답답하고 섭섭해도 “애들을 위해서”라는데 더 할 말이 없다. “가장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입때껏 참아왔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고 김씨는 생각했다. “그게 다 ‘이상 신호’였다.” 애써 무심한 척 외면했을 뿐, 아내는 벌써 몇 년 전부터 김씨에게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아이들 방학 때 함께 집에 와서도 아내는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며 친척들을 만나러 다니기 바빴다. 둘이만 있을 때도 미국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만 줄기차게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가서 살자”고 되지도 않을 소리만 했다. “미국 가면 뭘 해서 돈을 벌라는 말이냐?” 다투기도 했다. 심지어 오랜만에 함께 누운 잠자리에서도 다정하긴커녕 김씨의 손길을 외면했다. “혼자 자는 게 익숙해져서…”라며 등 돌리고 누운 아내를 보면서 자존심이 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도 잠깐, 방학이 끝날 때쯤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김씨는 늘 하던 대로 학비와 생활비를 보냈다. “그게 가장의 ‘도리’니까.”

‘아내는 정말 바람이 났을까?’ 여전히 묻지 못했다. 대신 김씨에게도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 그날 아들과의 충격적인 통화 이후 ‘인생 뭐 이렇게 살 필요 있나’ 고민하고 있을 때 만난 여자다. “아직 사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가와 여생을 보낸다면 ‘이 여자와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함께 있으면 즐거운 여자”다. 그렇다고 아내와의 관계를 끝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마음까지 생긴, 그런 정도는 아니다.

김씨는 요새도 늘 정해진 날짜에 아내에게 생활비를 송금한다. “그 돈으로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닐 수도 있겠지.” 부아가 치밀 때도 있지만 묻지 않고 보낸다. 아내를 깊이 사랑해서? “딱히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아이들 엄마에 대한 도리”라 여긴다. 돌이켜보니, 지난 결혼생활이 온통 구멍투성이다. 아내와의 사이에 이렇다 할 ‘추억’도 없다. 중매로 만나 결혼해 금세 아이가 태어났고, 일하느라 집보다는 회사 일이 우선이었으니까. ‘가족에게 소홀하다고 투정하는 아내에게 나는 뭐라고 했던가.’ 이제 와 후회도 되지만, 그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어쩜 아내는 아이들 유학을 준비할 때부터 이별을 생각했던 건 아닐까?’ 가끔 그런 의심도 든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아내가 먼저 이혼을 요구해 왔으면 좋겠다.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아내에겐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이 있는 한 계속 돈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앞으로 5년 혹은 10년 이상 길어질지도 모르는 이 ‘이산가족’ 생활을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김씨는 확신하지 못한다. 고민하는 사이에도 어김없이 송금 날짜는 다가온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도움: 서울가정문제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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