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se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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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가족
시민단체 활동가와 엄마
▶ 서울 소재 대학 법학과에 아들을 유학 보낸 어머니는 속상합니다. 아들이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택하지 않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마흔둘이 되었는데 아직도 사법시험을 볼 계획이 없습니다. 아들은 지금의 직업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걱정입니다. 어머니는 언제쯤 아들의 행복을 이해하게 될까요. 서로서로 인터뷰하는 새로운 가족의 초상, 독자 여러분도 도전해보세요. 투고는 gajok@hani.co.kr.

안진걸씨 어머니 김정순(74)씨.
안진걸씨 어머니 김정순(74)씨.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는 것은 많은 자식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3남1녀의 자식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오신 어머니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그러나 어머니를 자주 뵙고 싶어도 내가 사는 서울과 부모님 사시는 전남 화순은 거리가 만만치 않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역시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 결국, 당신 삶의 꿈과 희망을 모두 자식에게 쏟아부었다. 80년대, 가난한 시골에서 어머니는 네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냈다. 우리 동네 누이들 중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여성은 우리 누이밖에 없었다. 누이는 좋은 사위를 모시고 온 덕분에 어머니는 걱정을 덜 하고 사신다. 문제는 둘째 형과 나였다.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인 바로 그해 둘째 형은 서울로 대학을 갔다. 그러다 1990년 반독재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돼버렸다. 부모님은 실망감에 내게 ‘데모하지 말라’는 말씀을 참 많이 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군사독재정권의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우리 어머니는 ‘광주의 비극’을 눈으로 보셨던 분이다. 1980년 5월 어머니는 아버지랑 부부싸움을 하고 광주 이모님 댁에 가 있다 그 난리통을 보셨다.

형의 뒤를 이어 나도 1991년 대학(중앙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그해, 경기도 안양으로 잠시 이사와 살 때였다. 4월 ‘강경대 열사’ 사건을 보면서 도저히 학생운동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내인 나까지 매일같이 최루탄 가루를 흠뻑 안고 집으로 들어가곤 했으니 부모님은 속이 탔다. 아버지는 내가 보던 <한겨레신문>을 빼앗아 “이 신문이 대학생들 데모하게 만드는 신문”이라며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학생운동을 하다 보니 결국 직업도 비슷한 쪽으로 택하게 됐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런 막내가 여전히 걱정스럽다.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사법시험을 언제쯤 볼 것인지 묻곤 하신다. 1998년 겨울 참여연대를 직장으로 택했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크게 실망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와 14일 전화통화를 했다.

어머니
“근데 너 언제 사시 볼 거냐
엄마가 돈 보태줄게
우리 막내가 왜 법대꺼정 나와서
시민단체 가서 저러고 있을까잉”


“엄마, 사랑하는 어무니!
사법시험 못봐 늘 죄송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해 보람차요
막내 걱정은 그만하시고 흑흑”

 어무니, 식사는 하셨어요? 맛있는 것 드시고 싶어도 속이 안 좋으시다고 하니 걱정이네요.

어머니 응, 그렁께야. 아부지랑 밥은 폴새 먹었제야. 막내, 너는 현영(딸)이랑 밥은 먹었냐? 저번에 보내준 김치 잘 먹고 있냐잉?

 에고, 밥은 당연히 잘 먹죠. 반찬 투정 한번 없이 살아와서 언제나 맛있게 먹고 있어요. 밥 걱정은 마시고, 엄마 제발 김치 좀 그만 보내요. 냉장고에 놓을 데가 없어라.

어머니 응, 김치는 남으면 이웃들과 나눠 먹으면 되제. 네가 반찬 투정은 안 했는데 집이 가난하고 제대로 못 먹이고, 한창 자랄 때 못 챙겨줘서 네가 키가 작아 미안하다.

 아니에요. 엄마 잘못이 아니라 부모님 키도 작고, 저도 그렇게 태어난 것인데요, 뭘.

어머니 근데, 우리 막내(나) 대학원 졸업은 다 한 거냐?

 네, 당연히 잘 졸업은 했죠잉. 근데 너무 바빠서 아직 논문을 못 써서요.

어머니 뭣 때문에 그리 바쁘다냐?

 상근하는 참여연대 일도 많고, 또다른 시민사회단체들 일도 도와야 하고 해서요. 그래도 공부는 늘 하고 있어요.

어머니 근데 너 언제 사시(사법시험) 볼 거냐. 엄마가 돈 보태줄게.

 하하. 아직도 엄마는 맨날 사시 얘기여? 그 얘기 좀 그만해요. 인제 머리가 안 돼서 사시는 못 봐요. 지금 하는 일도 엄중하고.

어머니 내 팔자야. 어째 우리 막내가 법대까지 나와서 사시 한번 안 보고 엉뚱하게 시민단체 가서 저러고 있을까잉.

 어머니, 죄송해요.

어머니 사시도 사시지만 어쩌다가 가난한 단체에 들어가서 그 고생을 하고 사냔 말이다. 지금이라도 직장을 옮길 수 없다냐? 남들처럼 돈 좀 더 버는 데로 가면 될 거 아니야? 동네 명철이는 농협 댕긴디야. 돈 엄청 벌어갖고 아파트 넓은 데로 들어갔다고 안 하냐.

 아따, 어머니 이제는 제발 걱정 마세요. 시민단체들도 요즘은 다 먹고살 수 있고, 좀 검소하게 살면 남들 부럽지도 않게 살 수 있어요. 또 인생이라는 것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엄마는 제가 불행한 것을 원하시는 것 아니잖아요.

어머니 그건, 그런디야. 시민단체가 좋은 일 하는 것은 알지만서도, 우리 막내가 얼마나 우리 집안의 기대를 많이 받았냐.

 늘 엄마 기대하신 대로 못 살아서 넘 죄송해요.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엄마, 대신 제가 가끔 티브이 나오잖아요?(웃음) 동네 어른들이 좋아하신다면서요.

어머니 응, 긍께야. 저번에도 케비시(KBS를 지칭) 뉴스에 나오던데 뭐라 뭐라 하더니 금방 없어져블더라야. 작은아버지가 티브이서 봤다고 말하믄서 좋아하기는 하던디야.

 아, 그때 반값등록금도 해야 하고, 통신비도 대폭 인하하라고 하는 인터뷰였을 거예요. 엄마, 근데 인터뷰하는 것 많이 떨려요. 해놓고 안 나가블기도 하고요.

어머니 글고 막내야 저번에도 티비 본께. 막 이명박 욕하던디 조심해야 쓴다. 그렇게 막 욕하지는 말고.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시민단체는 온건하잖아요.

어머니 그건, 그렇긴 한디야. 박근혜가 워낙 무섭게, 사납게 해브냐, 지 아버지 닮아브러갖고양. 네가 2008년도에 한번 감옥도 갔었잖야.(2008년 촛불집회 개최자로 구속) 긍께 넘 세게 하지는 말아라잉.

 네, 엄니, 적절히 잘할게요.

어머니 글고,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1인시위 같은 것을 하고 있냐? 인제 그런 것 좀 하지 마라. 후배들도 많이 있지 않냐?

 네, 엄마 후배들도 많은디요. 그래도 선배들도 직접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글고 1인시위는 무조건 합법이고, 얼마나 평화롭게 해브요. 요것이 제일 좋단 말이요.

어머니 그래도 인제 나이도 많이 들었는디. 피켓 들고 서 있는 것이 좀 그래서 말이다.

 네 어머니, 걱정 안 드리게 의젓하게, 안전하게 잘 살게요.

어머니 근디야, 호남 사람들이 박원순이를 참 좋아한다야. 티비에도 자주 나오시더라.

 아, 박원순 변호사님이요. 네, 인제는 서울시장 하시니까 자주 나오시겠죠.

어머니 꼭 정권이 바뀌어야 할 텐디야, 야당이 왜 맨날 저런다냐.

 엄마, 인제 또 일해야 돼서 그만 끊어야겠네.

어머니 응, 그라지야, 항상 바쁜 것도 맘에 안 든다양. 그래도 일 잘하고 푹 쉬어라이잉. 들어가라잉.

 네 엄마, 곧 화순으로 찾아뵐게요. 아부지랑 잘 계시고요. 엄니도 들어가세요.

이렇게 어머니와의 대화는 스펙터클하고 무궁무진하다. 개인의 일상에서 시작해서, 여전한 입신양명에 대한 바람까지. 또 박원순 서울시장이 예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던 시절 어머니가 몇번 보신 적이 있는데(박원순 시장은 참여연대에 있을 때 활동가의 부모님을 초대해 식사를 몇번 같이 했다) 그의 안부를 물으시면서도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에 대한 걱정과 전망까지 하곤 하신다.

그러면서도 늘 공통적인 주제는 자식 걱정이다. 그래도 사법시험이라도 보라고, 박사학위라도 따라고, 공무원이라도 되어야 사람대접받는다고 지금도 야단치신다. 번듯한 직업을 갖지 못한 대다수 민중이 억압과 가난, 멸시와 천대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막내가 안정된 길로 가기를 바란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어머니의 바람이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어머니께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편지를 쓴다.

“어머니, 이제는 사법시험은 못 봐요. 최근에도 그런 말씀 하시는 어머니께 ‘나중에 여유가 되면 로스쿨을 가려고 노력해보겠다’고는 위로를 드렸지요. 어머니. 사실 거창하게 평생 시민단체 일만 열심히 하겠다고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엄마, 사랑하는 어무니! 막내가 사법시험 못 봐서 늘 미안하고 죄송해요. 그래도 좋은 세상 앞당기는 데 기여해서 좋고, 또 막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서 보람차서 좋고, 그렇게 1석2조로 잘 살아갈 테니, 이제는 부디 막내 걱정은 그만하시고, 시골에서 아부지랑 함께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근데, 이제는 자식들이 용돈을 드려 맛있는 것을 사드리려 해도 속이 안 좋으셔서 잘 드시지 못하니 그저 그것이 너무 서럽고 죄송해서 오늘도 막내는 서울 강일동 임대주택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흑흑. 어머니.”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위 내용은 2015년 12월18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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