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연애할 때>

33년째 연애중..그리고 5년째 연애중

 

#. 그녀의 질투

 

하원 후 내 마음은 점점 급해진다. 이것저것. 한시라도 한눈을 팔면 또 뭔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나와 5년째 연애를 하고 있는 딸. 겉으로는 얌전한 천상 여자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생활하지만 그녀의 실제는 아니다. 왈가닥 아가씨다. 사내 아이들 처럼 파워레인져 좋아하고 총싸움 칼싸움 좋아하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온통 사내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있을법한 이야기들이다. 파워레인져 엔진포스, 미라클포스, 정글포스, 디지몬등등 밤새도록 종알거려도 모자란지경이다.

혼자있는 시간은 정말 좋았는데. 커피한잔 마시며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도 할 수 있고. 그런데 왠걸~그녀가 하원을 하고 현관에 앉아 신발을 벗는 순간부터 시간은 바쁘게 돌아간다. 덩달아 바빠지는 나. 덩치보다 큰 가방에서 쉴새 없이 뭔가가 쏟아져 나온다. 도시락 통, 원아수첩, 활동결과물, 누군가에게 받은 손톱보다 작은 반짝이 스티커까지..끝이없다. 대충 듣는둥 마는둥 하고서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한숨 돌리려고 하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엄마, 배고파~ 오늘 간식은 뭐야?" (네살, 작년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더니 한살 더 먹었다고 이젠 친구다. 그래도 나는 이게 더 좋다. 친근해 보인다고 할까? 역할 놀이때 너무 친구놀이를 많이 한 부작용일까? ㅎㅎ)

 

아토피 때문에 그녀의 간식은 늘 좋은것, 신선한것, 옛것이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단호박죽을 끓이고 (얼마나 끓였으면 이젠 거짓말 조금 보태 눈감고도 끓인다.), 귀차니즘이 한동안 잠잠 할때면 왕복 한시간 거리를 걸어서 유기농 매장에서 장을 보고, 친정엄마표 식혜, 떡으로 간식을 챙긴다.

정말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땐 그런건 꿈도 못꿀일. 오늘은 단호박죽과 쌀과자로 간식을 대령. 연신 맛있다며 그녀만의 애교, 눈을 반쯤 감고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내심 기쁘다. 얼마만큼 좋냐고 하니 뭘 자꾸 물어보냐면서 단호박죽만 계속 떠 먹는다. 먹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 너무너무 사랑하는 그녀.

 

열심히 먹고 있는 분위기. 음식에 집중한 사이 휴대폰을 누른다. 입주변에 노랗게 호박죽을 발라 놓고

"누구한테 전화해? "

"할머니"

"어떤 할머니? 통영할머니? 인천할머니?"

(통영할머니=외할머니   인천할머니=친할머니   아직까진 외할머니,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떤집은 친할머니, 외할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법은 없다. 우리가 편하게 부르고 익숙해지면 그만이다. 친, 외의 뜻만 알고 있으면 문제 없다. 시어머님도 인천할머니라고 해도 좋아하신다.)

"통영할머니!! 그만하고 간식이나 드세요 공주님."

"알겠어요~"

33년째 연애중인 그녀에게 전화를 할 때도 5년째 연애중인 그녀의 눈치를 봐야하니..중간에서 이게 뭔지. 세 여자의 연애는 그래서 불편한가 보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 연애상대가 남자가 아니라 다 같은 동성이기에 통하는 것도 많다. 가끔 세 여자가 모이면 재미있다. 각각 다른 세대이지만 우린 통한다. 함께 웃을 수 있다. 함께 감동을 받고 공감을 할 수 있다.

 

"응~엄마. 뭐해? 간식 먹고 있지.."

"놀이학교 잘 갔다오고?"

"아무리 피곤해도 놀이학교 간다면 벌떡 일어나잖아. 집보다 좋아하는데."

"ㅎㅎㅎ 요즘도 인기가 많아?"

"늘 그렇지. 다들 난리야. 벌써부터 결혼한다느니, 사랑한다느니.웃겨 정말~"

"그래 니 딸 잘났다!!  ㅎㅎㅎ"

 

한창 통화가 진전될 때쯤 그녀의 질투가 시작된다.

"전화 끊어."

"전화 끊어."

"전화 끊어라고!!"

간식으로 자기 배를 든든하게 채우니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낸다. 전화 끊어라, 놀아주라, 간지럽다 끍어달라, 배아프다, 시끄럽다등등 그녀의 세상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는 다 쏟아져나온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를 한다. 옆에서 징징대는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33년 연애중인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달.

"끊자, 끊어라. 괜히 울리지말고."

"다음에 또 전화할게~"

결국 5년째 연애중인 그녀의 승리. 언제 그랬냐는듯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

얄미운 그녀.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녀.

 

 

#. 그리움(보고 싶어서)

 

타지로 시집을 와서 늘 나는 집이 그립다. 엄마도 그립고 아빠도 그립고 내 고향도 그립고..아이들과 함께 했던 원도 그립고..매일 느끼는 바다 냄새도 그립다. 그리움도 1년에 서너번 지울 수 있으니..가슴아픈 일이다. 그래도 결혼생활 1년, 2년 지날수록 많이 강해졌다. 현실을 인정해야 하니..그냥 즐긴다. 그리움도 즐기고 보고픔도 즐기고..언젠간 그리움 마저 마를테지만...

 

5년째 연애중인 그녀는 늘 데릴러 가면 같은 말을 한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

"엄마, 나 엄마 너무너무 보고 싶어어요~"

(안하던 존댓말이 낯간지럽다. 그래도 그녀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착 달라붙는다. 엄마 역시 등원 시키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많이 그리워 했단다.)

"정말? 얼마만큼 보고 싶었는데?"

"많이 많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서 꼭 안아준다.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녀. 남편과 연애할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그녀. 책을 보다가도 자려고 이불깔고 누워도 정말 작은 새입으로 뽀뽀를 퍼 붇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남편. 서운함이 그대로 팍팍 전해진다. 아빠도 뽀뽀 받고 싶다고 하면 더 나에게 진하게 뽀뽀를 한다.

자다가도 껴 안으며

"엄마, 보고 싶었어요."

세식구 함께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와도

"엄마, 보고 싶어어요."

남편은 괜한 질투를 한다. 같이 밥먹고 같이 있는데 뭐가 보고 싶었냐고. 이런게 다 딸 키우는 재미다. 딸과 연애하는 재미이다. 물론 사내 아이들도 키우는 행복이 있겠지만 나는 이런 소소한 선물에 더욱더 딸을 선호한다.

늘 함께 살 맞대며 우리는 연애를 해도 보고 싶은데 멀리 떨어져 연애를 하는 나의 그녀. 울엄마는 얼마나 그립고 그리운지...보고싶다. 정말 보고 싶다. 미치도록 그립고 그립다.

 

세 여자의 연애는 끝이 없다. 하루가 지나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참 행복하다. 아이마냥 토라지기도 하고 파란하늘에 떠 가는 뭉게구름처럼 뭔가 두리뭉실 하기도 하고 새벽안개처럼 뭔가 비밀스럽기도 하고...33년째 연애중인 그녀, 5년째 연애중인 연애초보 그녀. 그리고 나. 세 여자들의 연애 기간은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일이랑 알 수가 없기에. 이렇게 알콩달콩하며 세여자의 연애가 오랫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늘 변함없다.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람이기에...오래오래 건강했으면 하는 소박한 선물을 보낸다. 

33년째 연애중인 울 엄마 5년째 연애중인 울 딸.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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