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제일 공들여 한 요리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건 딸아이가 만 6개월이 지났을 때 처음 끓인 쌀미음이다. 그이전에 내가 했던 요리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또는 아내가 되었으니 반 의무감으로 했던 것들이었다. 동무들이 놀러와도 시켜먹기 일쑤고, 요리보다는 설거지가 더 좋다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녔다. 그만큼 나는 요리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이런 음식이 맛있을리 없었고, 먹는 이가 맛있다는 말을 안 하니 나도 점점 안하게 되고... 그랬던 나였던지라 이유식을 만들어야 할 때가 다가올 때 떨리기까지 했다. 젖만 먹던 아이가 처음으로 먹는 음식인데 잘 먹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만든 미음을 아이가 처음 받아먹던 그 순간, 온 마음이 환히 웃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꼬박 꼬박 이유식을 잘 받아먹는 아이를 보며 슬슬 살림에 재미와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한 음식이 그대로 아이의 피와 살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유식 만들 때 공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게 태어난데다 몸무게도 잘 늘지 않는 아이라 더 마음이 쓰여 정말로 열심히 이유식을 만들었다. 조금이나마 거르지 않고 받아먹는게 어찌나 고맙던지.

그러다 미음, 진밥 시기가 끝나고 밥을 먹이는 시기가 오면서 정말로 식구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다. 한솥밥 먹고 사는 식구, 상 앞에 남편이랑 아이랑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마음이 참 따뜻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상에 둘러 앉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부터 아이가 밥숟가락을 들이대면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입을 꾹 다물고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밥을 안 먹겠다는 신호를 강력히 보냈다. 새로 이가 날 시기도 아니고, 걸음마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통 먹질 않았다. 아침에 겨우 두 숟갈, 점심은 거르고, 저녁에 서너 숟갈. 이런 날이 며칠, 두어 주 이어지는 동안 요리 사이트를 이 잡듯 뒤지고, 애 있는 동무마다 붙잡고 요리법을 물으며 애를 썼지만 아이의 꾹 다문 입은 벌어질 줄 몰랐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도 나고, 이리 열심히 했는데 니가 안 먹어라는 마음에 괘씸하기도 하고. 날마다 그대로 남은 이유식을 먹거나 버리는 일이 계속되자 부엌에 들어가는 일조차 싫어지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때마침 윤영희님의 슬로 육아가 도착했다. 아이가 잠든 새벽, 엎드려서 한 장 한 장 읽는데 몇 구절에 그만 눈물이 났다. 그동안 갑작스레 닥친 우울감에 많이 힘들었나보다.

 

몇 개월 단위에 집착하지 않고 한 인간이 살아가야 할 전체 시간의 흐름 위에 현재의 시간을 얹어 생각해 보는 여유, 영유아기의 아이를 둔 부모일수록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17)

 

요리는 자립의 기초다. 핵가족일수록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56)

 

학력보다 식력 (60)

오늘 식구들과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아이들에겐 노년이 되어서도 두고두고 떠올리게 될 그리운 음식의 이미지가 될지도 모른다. 한 가정의 부엌과 먹는 것과 부모자식의 관계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숨어있는게 아닐까.(94)

 

부엌육아, 아이는 적게 먹긴 해도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확실히 구분하는 미각을 키워가고 있다 ... 재료 자체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도록 최소한의 조리로 만들어진 음식과 제철에 나는 과일과 채소를 가장 즐긴다 (95)

 

 옮겨 적고서 몇 번씩 소리내어 다시 읽어본 구절들이다. 아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하고 아이와 같이 먹고 사는 일이 단순히 먹는 행위를 뛰어넘어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이가 얼마의 양을 먹고 얼마나 몸무게가 느는가에 온통 마음을 쏟을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에 좀 더 마음을 썼더라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을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 한 켠에 다른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고 있는 내 욕심이 보여 참 부끄러웠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직 아이를 향한 비교의 숫자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그제서야 조금이나마 인정할 수 있었다. 단숨에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제대로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정 안에서 우리가 제대로 먹고 살면, 둘레를 제대로 먹고 살릴 수 있을테고 나아가 풍성한 사회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금, 여기가 시작이라는 생각에 새벽부터 갑자기 막 의욕이 솟구쳤다.

  아직 아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있다. 부엌으로 가서 휘익 둘러본다. 며칠동안 마음이 싸늘하게 돌아선 안주인의 무관심 속에 부엌과 냉장고가 참으로 휑하다. 있는 재료들을 꺼내어 정성스레 다듬고 썰었다.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야채 육수도 약한 불로 시간을 충분히 들여 우려낸다. 밥을 앉히고 아이가 먹을 물을 끓이고, 간만에 남편을 위한 반찬도 한 가지 한다. 아이가 먹지 않아도 날마다 음식을 보여주고, 한 숟가락이라도 맛을 보여주는데 의미를 두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어, 좀 즐겁다. , 반찬, 국을 다 만들고 설거지도 끝내고 식탁에 가만히 앉아 아이와 남편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그동안 우울에 빠져 무거운 기분과 마음으로 잠을 자는 바람에 아무도 보지 못했던 아침이 바로 이런걸까?

  부엌 육아는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기 보다 나를 키우는 일에 더 가깝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고 성과를 보고 싶어하는 무리하는 내 모습을 부엌에서 본다. 내가 이리 노력했으니 그 보답을 내놓으라 아이를 채근하는 내 모습도 보인다. 뭐든 빨리 빨리 결과를 내려하고, 과정 속에서도 조급해하는 안달난 나도 보인다. 날 것들이 요리되는 부엌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니 그때야 날 것,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지금이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날 것을 정성스레 다듬고, 칼질하고, 끓여내고, 삶아내어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서둘지 말라고 손 잡아주다 보면 아이가 커 가는 것처럼 나 자신도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시작은 밥 안 먹는 딸 아이였는데, 책을 읽고 마음을 찬찬히 돌아보니 결국 문제는 밥 안 먹는 아이가 아니라 순간의 결과에 집착하여 전체를 보지 못하는 조급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야말로 슬로 육아가 필요하다.

  책 슬로 육아에는 일본의 교육, 육아, 가정, 사회 등 다양한 가정 살림, 사회 살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책, 음악, 미술 작품들이 그렇듯이 언제, 어디에서 이들을 접하느냐에 따라 같은 작품들이라도 참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온통 신경이 먹는 일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 내게 슬로 육아는 사실 온통 먹는 이야기로만 다가온다. 아이를 잘 먹이는 일, 내가 잘 먹는 일, 우리 식구들과 잘 먹는 일, 이웃과 함께 잘 먹는 일, 동네에 있는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가게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

  책을 다 읽고 난 뒤 새로운 작은 꿈이 생겼다. 그동안은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꿈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엔 나에 대한 꿈이다. 딸아이가 자라서 기억하는 엄마 냄새가 갓 지은 따뜻한 밥 냄새였으면 좋겠다는 게 이번에 생긴 내 꿈이다. 학교에서 좀 속상한 일이 있어도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에 위안받을 수 있었음 좋겠다. 나중에 독립을 해서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음이 휑할 때면 찾아와 엄마표 된장국에 힘을 얻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아이를 향해 들이밀기만 하던 숟가락을 오늘은 거꾸로 아이 손에 들려준다. ‘엄마 아~’ 하고 입을 벌리니 좋다고 내 입에 밥을 넣어준다. 맛있게 밥먹는 걸 보여주며 우리 같이 천천히 자라자.’고 말하며 아이를 쓰다듬는다. 슬로 육아, 너도 나도 천천히 자라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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