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남긴 창고 속에 지은 포항 ‘언포게터블 주택’의 밖과 안. 창고 안으로 들어서면 안마당과 새로 지은 집의 현관이 보인다. 사진 박영채 작가 제공

[매거진 esc] 라이프
집 속의 집 형태로 창고 속에 2층집 지은 포항 ‘언포게터블 주택’과 집 안에 온실 들인 고성 ‘또 하나의 집’

우리 전통가옥엔 여러 채가 겹으로 되거나 방이 등을 맞대고 두줄로 나란히 붙은 겹집이 있다. 주로 북쪽이나 산간지방에서 추위를 막을 요량으로 지어진 집이다. 양통집, 3칸 겹집 등 사정에 따라 모양새도 달라지면서 겹집은 집 속에 또 하나의 집이 있는 듯, 집 두 채가 서로 포개어진 듯, 한옥의 다른 얼굴을 만들어냈다. 강원도 고성과 경상북도 포항에 지어진 두 채의 집도 그렇다. 겹집을 닮은 현대식 주택에서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찾아보았다.

‘언포게터블 주택’ 2층 계단과 가족실. 사진 박영채 작가 제공

창고 속에 지어진 포항 ‘언포게터블 주택’

지난해 10월4일 결혼식을 올린 정봉진(31)·안현아(31)씨 부부는 창고에 신혼살림집을 차렸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리에 있는 이 창고는 20년 전에 신부 아버지가 사료 공장을 하기 위해 지었던 것이다. 5m도 넘게 높다랗게 지어 1층엔 기계를 두고, 2층에는 가족들이 살 집을 꾸미려고 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주인 잃은 창고는 오랜 세월 비어 있었다. 정봉진·안현아씨는 신혼집을 구할 돈 1억원으로 창고를 개조해 살기로 마음먹고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를 찾아갔고, 건축가는 창고는 그대로 두고 그 속에 작은 집을 짓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98㎡ 넓이 창고를 집터 삼아 1층엔 66㎡, 2층엔 33㎡ 넓이의 작은 2층집을 지었다. 집 속의 집이라지만 그 속에 철골 구조물을 세우고 단열재와 집성목으로 벽과 기둥을 새로 올렸으니 창고 속에 깃들인 새로운 집인 셈이다.

원래 창고엔 집만큼이나 높은 3개의 커다란 문이 있었다. 안쪽 집을 새로 지으면서 가운데 문을 작게 고쳐 출입구로 삼았다. 왼쪽 문은 더욱 줄어들어 속집 창문이 됐고, 오른쪽 문은 보통 굳게 닫아 두지만 투명한 창으로 안쪽 마당에 햇살을 마음껏 들여보낸다. 가운데 문으로 들어서면 창고의 나머지 부분, 안쪽 마당과 속집의 현관문을 만나게 된다.

집 속의 집, 1층은 구석구석 부엌과 식당, 서재 노릇을 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지만 문을 열어두면 ㄷ자 모양의 넓은 원룸처럼 하나로 통한다. “얼핏 좁은 듯 보이지만 문을 열면 펼쳐지고 그래서 깊어 보이는 우리식의 공간을 이 창고 안에 집어넣고 싶었다”는 건축가는 작은 집 창문과 계단을 이용해 여러가지 다양한 풍경을 빚어냈다.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2층 가족실에서 부부는 나란히 앉아 반대편 벽을 스크린 삼아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단 창밖을 바라보며 지낼 때가 더 많다. 안현아씨가 나고 자란 이 마을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농사를 짓고, 눈앞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주변에 너른 논과 밭뿐인 것도 예전 그대로다.

창고 문을 열면
안마당과 속집 현관문이
창과 문마다 덧문 달아
에너지 효율 높여

오래된 기억의 껍데기 속에 새로운 출발이 싹을 틔웠다. 안씨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 자기만의 자리를 따로 원하면 창고의 나머지 부분에 새로 집을 덧대어 지을 계획이라고 했다.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아버지가 남긴 집 속에 들어앉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부부의 집을 ‘언포게터블 주택’이라고 이름 붙이고 창고 외관을 더 좋게 꾸밀 수 없는 가난한 부부를 위해 밥 딜런 첫번째 앨범 사진을 따서 직접 벽화를 그렸다. ‘언포게터블’은 가수 내털리 콜이 아버지 냇 킹 콜이 불렀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부른 노래 제목이다.

고성 ‘또 하나의 집’은 한가운데 벽난로 마당에서 집 전체로 온기를 퍼뜨린다. 2층 사다리를 오르면 밖으로 열린 다락과 안다락이 있다. 사진 박영채 작가 제공

집안에 온실 들인 고성 ‘또 하나의 집’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에 지어진 ‘또 하나의 집’을 두고서도 동네 사람들은 창고 아니냐고 수군거렸단다. 9개의 창문과 문엔 모두 덧문이 달려 안을 짐작하기가 어려운 이 집은 확 트인 발코니와 넓은 창문을 드러낸 다른 전원주택과는 딴판이다. 주말주택으로 쓰이는 집은 평상시엔 닫혀 있다가 주말이 되면 활짝 열린다. 집을 설계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박종혁 교수는 “주말주택은 살 때 기분 좋고 팔 때는 더 기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유지 관리가 힘들다는 것인데, 보통 땐 창고처럼 닫혀 있고, 사람이 오면 열리는 건물을 생각했다. 쉽게 침해당하지 않으며, 에너지 효율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덧문은 단열재 구실만 하는 게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안엔 또 작은 마당이 나온다. 집은 가로세로 3m짜리 1칸 공간 9개가 모인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중 3칸이 마당이다. 현관 노릇을 하는 안마당 왼편엔 밖이 내다보이는 테라스 마당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다시 벽난로가 있는 가운데 마당이 있다. 건축가는 “전원주택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이 갖기엔 지나친 발코니를 사양한다”며 “소박하면서 충분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안도 밖도 아닌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집안 마당이다. 가운데 마당 바닥은 돌로 되어 있고 그 아래 수도관이 깔려 겨울엔 벽난로의 온기가 집 전체로 전해진다. 2층까지 뚫린 가운데 마당 천장은 투명한 유리와 폴리카보네이트로 덮여 있어 밖의 햇볕을 그대로 빨아들이는 온실 역할을 한다. 한옥을 의식하고 지은 집은 아니라지만 여름이면 지붕이 열려서 바람길을 내는 것이 옛날 영동지방에서 지붕에 구멍을 낸 까치지붕집이라는 겹집과도 비슷하다.

이 집은 아야진항과 설악산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땅을 산 건축주가 ‘리빙큐브 좋은집 공모전’에서 선발된 도면을 따라 지은 것이다. 건축가 네트워크인 ‘하우스 스타일’에서 만든 브랜드 리빙큐브는 설계비와 집 짓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40가지 소형주택 표준 설계안을 마련했고 이 집은 그중 하나다.

밖은 닫히고 안으론 열려 있는 ‘또 하나의 집’. 사진 박영채 작가 제공
‘또 하나의 집’ 1층엔 식당과 주방에 딸린 작은방 등 6칸의 실내공간이 있다. ㄷ자 모양의 실내와 ㄴ자 모양의 집안 마당이 복합적인 공간을 만든다. 1층에서 사다리를 오르면 다락방이 나오는데 밖의 바람을 맞을 수 있는 넓은 바깥다락도 있고, 문을 닫으면 아늑해지는 안다락도 있다. 지난해 12월 이사한 건축주는 지난겨울 주로 가운데 마당에서 벽난로 불을 피워놓고 책 읽고 음악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가끔은 2층 다락에 올라 유리 천장 너머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기도 했다. “남한테 자랑하는 듯 시골에 화려하게 지은 집이 싫었다. 이 집은 밖에서 보면 허름한 창고 같은데 문 열고 들어서면 우아하다. 우리는 여기서 바다, 산, 바람, 호수, 계곡을 모두 누리고 산다”는 건축주 부부는 이 집을 ‘오우가’라고 부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위 내용은 2015년 3월 5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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