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 천관산 동백숲. 숲 안으로 탐방로가 나 있다.

[매거진 esc] 여행
늦겨울 정취와 이른 봄의 기운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전남 장흥 천관산 일대 여행

전남 장흥은 사철 볼거리·먹을거리 풍성한 바닷가 고장이다. 늦가을 장관을 이루는 천관산 억새밭과 국내 최대 넓이의 동백숲, 그리고 겨울철 없어서 못 판다는 매생이 생산지로 이름 높다. 요즘이야 그런 이들이 없겠지만, 과거 한때엔 경기도 장흥과 헷갈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문화유적 즐비한 강진과 차밭으로 이름난 보성 사이에 자리잡아, 독자적 여행지로 크게 각광받지 못한 탓도 있다. 이제 장흥은 서울 정남 방향 끝자락이라는 뜻의 ‘정남진’과, 풍부한 해산물을 깔고 판을 벌이는 ‘토요 풍물시장’ 등으로 사철 여행객 발길을 끌어들인다.

천관산엔 눈보라 몰아쳐도, 내저리·옹암리 연안엔 바닷내음이 싱그럽다. 어민들은 집마다 온 가족이 달려들어 봄빛 머금은 초록 매생이 채취에 여념이 없다. 매생이엔 상큼한 봄 향기가 깃들어 있다. 매생이 채취 마무리가 곧 봄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매생이 막바지 채취에 들어가면서 봄을 예약한 전남 장흥을 찾아, 모진 산바람과 부드러운 바닷바람 번갈아 쐬며 늦겨울 정취를 맛보고 왔다.

서울보다 갑절 되직하게 끓여주는
매생이탕 별미
천관산·묵촌리 동백숲
꽃봉오리 내밀고 여행자 손짓

옹암리 내저마을 매생이 양식장의 매생이 발.
봄빛 머금은 매생이 막바지 채취 한창

‘정남진 장흥’에서도 남쪽 맨 끝자락인 대덕읍 내저리(옹암리 내저마을). 바다엔 매생이 발을 설치한 ‘말대’(말목)들이 빼곡하게 깔렸고, 말목 행렬 사이로 배를 타고 이동하며 물속에 잠긴 발을 들춰 매생이를 채취하는 어민들 손길이 분주하다. 선착장에선 상큼한 매생이 향기가 진동한다. 채취해온 매생이를 나르고 헹구고 통에 담는 작업이 한창이다.

본디 김 생산지였던 이 마을은 부드러운 맛과 높은 영양가를 자랑하는 매생이가 인기를 끌면서 20년 전부터 거의 전 어민(52가구 중 40여가구)이 매생이 생산에 매달리고 있다. 기계를 이용해 바닷물에 1차로 헹궈진 매생이는 각 가정이나 어촌계로 옮겨진 뒤 다시 바닷물 세척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어른 주먹 크기의 매생이 덩이(재기)로 만들어 상자에 담는다. 한 덩이를 1재기라 부르는데, 1재기는 국으로 끓일 경우 4~5인분에 해당한다는, 400~430g 정도의 양이다.

매생이가 사철 인기 식품으로 떠오르면서, 채취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엔 한번 매생이 종자(포자)를 발에 붙여 설치하면, 겨우내 3차례(20일 정도 간격) 바다에 나가 발을 들춰 매생이를 채취해 왔다. 하지만 요즘은 발에서 완전히 매생이를 훑어낸 뒤 2차로 종자를 부착해 키워 다시 훑어내는 방식으로 2회 채취한다. 생산량도 많고, 매생이철 시작 무렵이 가격이 높아 빨리 채취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매생이 인기 따라 귀촌 인구가 늘면서, 매생이 양식 자격도 까다로워졌다. 귀촌해 정착한 이들이 매생이 양식을 시작하려면 어촌계에 일정한 입회비를 내야 하고, 정착 뒤 3년을 기다려야 자격이 주어진다. “3년 이상 살아야 가구당 5~10때(매생이 발 단위)를 배분해 줍니다.”(내저리 전 이장 박준영씨) 매생이 발을 설치할 수 있는 연안 양식장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12월 중하순에 시작하는 내저리의 매생이 채취는 2월 초면 마무리되지만, 산 너머 옹암리에선 2월 말까지 이어진다. 겨울철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산이 막아줘, 상대적으로 온화한 내저리에선 매생이철이 일찍 시작돼 일찍 끝난다. 하지만 찬바람에 노출된 옹암리는 한달가량 늦다.

속풀이에 최고라는 매생이탕(국)을 맛보려면 장흥 읍내의 식당들을 찾으면 된다. 매생이 음식만 내는 전문식당은 없지만, 대개의 백반집들이나 고깃집에서 곁음식으로 내준다. 특히 토요시장 식당들은 대부분 매생이탕·매생이떡국·매생이전을 차려낸다. 토요시장에서 매생이를 1재기에 2000원대(12월엔 4000~5000원)에 살 수 있다. 1재기는 “장흥 가정식으로 되직하게 끓이면 3인분, 서울 방식으로 묽게 끓이면 5~6인분까지 나오는” 양이다.

천관산 동백숲의 눈 맞은 동백꽃.
꽃봉오리 내민 천관산 동백숲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723m)은 산 정상 주변이 온통 뾰족뾰족한 바위 봉우리로 덮인 산이다. 바위기둥들이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 해서 천관산이다. 가을이면 정상 능선으로 펼쳐진 억새 무리가 장관을 이뤄 산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 산 북서쪽 자락에 울창하게 우거진 사철 푸른 동백나무숲이 기다리고 있다. 부평리에서 천관산휴양림 쪽으로 시멘트길을 따라 차를 몰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움푹 꺼진 골짜기에 가득 들어찬 동백나무 무리를 만날 수 있다. 국내 최대(20만㎡, 약 1만그루)의 동백 단일 수종 숲이라고 한다.

이곳 동백꽃 본격 개화 시기는 다른 지역보다 늦은 3~4월이지만, 이미 몇몇 나무들은 빨간 꽃봉오리를 열고 탐방객을 맞아준다. 지난 주말 아침, 이 동백숲은 밤새 흩뿌린 눈에 덮여 흑백 풍경화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일부 꽃잎을 연 동백은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추위를 견디는 모습이었다. 비록 활짝 핀 동백꽃 무리를 만날 수는 없지만, 짙푸르게 반짝이는 동백나무 잎들과 함께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붉은 꽃송이들에서 봄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동백나무 무리는 천관산 자락 장흥 위씨 재실인 장천재 부근과 용산면 묵촌마을 들머리에도 있다. 묵촌마을엔 비보림으로 심어진 300년 수령의 동백나무 140여그루가 자라고 있다.

유치면 봉덕리, 가지산 자락의 고찰 보림사로 가면 또 다른 상록 난대림을 만날 수 있다. 비자나무 숲이다. 야생차로 이름난 보림사 뒷산 차밭 일대에 수령 70~400년의 비자나무 600여그루가 자라고 있다. 비록 촘촘하게 우거진 숲은 아니지만, 산책로 일부 구간엔 아름드리 비자나무들이 짙푸른 가지를 드리우고 우거져 계절을 잊게 해준다.

가지산 자락 보림사 설경.
섬세한 무늬 고스란히 남은 보림사 석물들

신라 때(860년) 보조선사 체징(804~880)이 창건한 보림사는 볼거리 많은 흥미로운 사찰이다. 9선종 가람 중 가장 먼저 선종이 정착한 곳으로, 가지산파의 근본도량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일주문 등 일부 건물만 남기고 불타 대부분 최근 지어진 건물이지만, 1000년 세월을 견뎌온 아름다운 조각품이 즐비하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등 국보 4점과 보조선사탑비 등 보물 4점을 만날 수 있다. 대적광전 앞에 우뚝 선 삼층석탑 2기와 석등은 모두 국보(제44호)다. 삼층석탑 한 쌍은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닮은, 단조로워 보이는 석탑이지만, 기단석에서부터 몸돌과 상륜부까지 손상된 부분 없이 원형이 고스란히 남은 드문 사례라고 한다. 그 사이로 아담한 석등이 정교한 연꽃·구름무늬를 품은 채 서 있다.

대웅보전 뒤쪽 산자락에 서 있는 보조선사창성탑(보조선사탑)과 창성탑비도 아름답다. 보조선사탑은 일부분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지만, 섬세하게 새겨진 사천왕상과 연꽃무늬 등이 매우 아름답다. 거대한 탑비엔 옛 글씨들이 방금 새긴 듯 선명하고, 용 머리 모습을 한 거북받침돌의 거북은 막 일어나 전진하려는 듯 두 앞발의 발톱을 세운 모습이다. 사천왕상도 볼거리다. 1515년 만들어진 목조 사천왕상의 몸과 팔다리 안에서 1971년과 1995년 <월인석보> 제17권 등 370여점의 귀중한 불교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절 안마당에서 산세를 둘러보면 올록볼록 솟은 산봉우리들이 연꽃을 닮은 것도 이채롭다. 대웅보전 앞엔 오래된 약수가 있는데, 이 자리가 연꽃의 꽃술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금 약수터의 샘 안에선 누군가 가져다 넣은 다슬기도 살고 버들치도 살지만, 물맛은 청량하다.

천관산 동북쪽 자락 관산읍 방촌마을에도 볼거리가 많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유적에 이르기까지 구경하고 배울 것들이 많은 마을이다. 실학자인 존재 위백규(1727~1798)가 살던 장흥 위씨 집성촌으로, 존재 고택 등 6채의 고택들과 곳곳에 흩어진 고인돌, 700년 묵은 느티나무 고목,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한 쌍의 석장승 등이 볼만하다. 방촌유물전시관에서 마을의 내력과 서적류·교지류·영정·민속품 등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장흥/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전남 장흥 여행 정보

가는 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영암·순천고속도로~장흥나들목. 약 5시간 소요. 내저리·옹암리는 장흥나들목에서 나가 23번 국도 따라 장흥읍내 지나 천관산 자락 방촌리 거쳐 대덕읍 신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

먹을 곳 장흥을 대표하는 음식은 한우고기·키조개관자·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장흥삼합’(사진)이다. 장흥읍내의 만나숯불갈비와 취락식당 등이 장흥삼합으로 인기를 누리는 식당들이다. 장흥읍내 토요시장 주변에 끄니걱정·토정황손두꺼비·아름다운식객 등 매생이탕(국)·매생이떡국·매생이전 등을 내는 식당이 많다. 소등섬 일출이 아름다운 용산면 남포마을로 가면 2월 말까지 석화(굴)구이를 맛볼 수 있다.

묵을 곳 장흥읍내 탐진강변에 크라운호텔(모텔급) 등 모텔들이 많다.

여행 문의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24.

여행공책

한화리조트 지리산이 ‘지리산 고로쇠 패키지’를 선보였다. 객실과 2인 조식, 지리산 해발 1000m 지역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 4.3ℓ를 제공한다. 2월28일까지 누리집을 통해 예약을 받는다. 일반실 주중 10만4000원, 주말 11만9000원. 특실은 주중 14만4000원, 주말 15만9000원이다. 별도로 고로쇠 수액 주문도 받는다. 18ℓ 5만5000원(배송비 포함). (061)782-2171.


하나투어는 2월에 여행하기 좋은 ‘이달의 도시’로 타이 남부의 푸껫과 끄라비·카오락 등 휴양지를 선정하고, 2월 중 이 지역 여행상품(항공권 및 호텔 포함) 예약자나, 해당 지역 동영상 에스엔에스(SNS) 공유자를 추첨해 소니 카메라 등 선물을 준다. 1577-1233.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한국관광학회(www.tosok.org)와 공동으로 2월6일 서울 동국대에서 ‘한(韓)스테이와 한류 식문화의 가치 조명’ 학술대회를 연다. ‘템플스테이의 지난 12년간의 성과와 향후 과제’, ‘한국의 종교관광과 성장 가능성’ 등 발제와 토론, 호텔 외식 주제 논문 발표 등이 진행된다.


(*위 내용은 2015년 2월 5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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