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링턴 산 전망대. 호바트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최고의 뷰포인트다.

다채로운 문화와 열린 태도가 빚은 특별한 맛

[매거진 esc] 여행
여행작가 노중훈의 호주 동남부 섬 태즈메이니아 미식 여행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태즈메이니아에 다녀왔다. 일정의 대부분을 먹는 데 할애했다. 어림잡아 10번 이상 호주를 찾았지만 사실 호주 음식에 관해서는 ‘날카로운 추억’이 별로 없다. 멜버른 외곽의 와이너리에서 마신 몇몇 와인과 시드니 초기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록스의 몇몇 맥줏집을 돌아다녔던 것이 그나마 되새겨볼 만한 기억이었다.

브루니 섬의 ‘넥 게임 리저브 전망대’에 오르면 두 개의 섬이 연결된 독특한 지형을 살펴볼 수 있다.
호주 동남부 바다에 떠 있는 섬이자 호주에서 가장 작은 주(州)인 태즈메이니아. 이곳에서의 식도락을 통해 새삼 느낀 호주 음식의 특징은 ‘개방성’이었다. 특히 최근 호주 요리의 트렌드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스스로 어떤 경계를 두고 자신을 옭아매려 하지 않는다. 몇 가지 ‘결정적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 식재료에 대한 낯가림이 없다.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독창한 요리를 선보이는 호주의 스타 셰프 벤 슈리는 레스토랑 소유의 텃밭뿐 아니라 출퇴근길에 농장, 공원, 바닷가에서 당일 사용할 식재료를 채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출장에 동행한 박찬일 셰프는 “호주 요리사들의 재료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도가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호주 요리의 스펙트럼을 넓힌 데는 맛에 대한 ‘열린 태도’도 한몫했다. 영연방의 일원으로 한때 영국 음식이 독장쳤지만 1990년대부터 남부 유럽과 아시아 음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호주의 맛’에는 유럽, 인도차이나반도, 동북아의 다채로운 음식 문화가 혼재돼 있다.

이는 지난해 11월 태즈메이니아에서 열린 미식 행사 ‘인바이트 더 월드 투 디너’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닷가재와 전복을 구울 때 각각 다시마를 다져 넣은 버터와 일본 술을 섞은 드레싱을 사용하는 점이 이채로웠다. 호주에서 수상 경력이 가장 많은 레스토랑 중 하나인 키(Quay)의 피터 길모어는 돼지 목살 콩피에 전복, 누룩, 발효 곡물, 표고버섯, 해조류를 매치시켰다. 20여년 전 시드니에 문을 열어 단 6개월 만에 최고 레스토랑의 지위에 오른 록풀(Rockpool)의 오너 셰프 닐 페리는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에 홍차로 훈연한 굴 레드 커리를 더했다. 심지어 스테이크 옆에 김치를 배치했다. 짧게 발효시키고 식초로 신맛을 북돋운 일종의 백김치였다. 호주 요리와 요식업계의 열린 태도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호주만의 전통과 색깔이 없다고 힐난하지만 정작 호주 요식업계는 “전통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신선한 해산물에
요리사의 창의성 발휘
미식의 고장 브루니섬
굴과 치즈 음식 강추

뮤어스 어퍼 덱의 생굴에 연어와 해초를 올린 요리.
태즈메이니아 미식 기행의 목적지는 주도인 호바트와 태즈메이니아 인근의 또 다른 섬인 브루니. 뮤어스 어퍼 덱(Mures Upper Deck)은 호바트를 대표하는 해산물 레스토랑이다. 가리비구이와 새우튀김처럼 친근한 메뉴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연어와 해초를 굴에 올려 먹는 점이 독특하다. 2층 창가에 앉아 빅토리아 도크를 내려다보면 먹는 맛도 남다르다. 엘리자베스 거리의 에토스는 제철 산물을 이용해 그날그날 다른 6가지 코스 요리를 85호주달러에 제공하는 식당이다. 요리사의 창의성이 한껏 발휘된다. 160호주달러를 내면 코스별로 와인도 곁들여준다. 에토스는 가장 오래된 부분이 거의 200년이 됐을 만큼 건물 안팎이 고풍스럽다.

로즈니 힐에서 바라본 풍경.
1992년에 세워진 양조장 라크는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싱글몰트위스키 제조의 명가로 널리 소문난 곳이다. 풍부한 보리와 깨끗한 물, 그리고 적합한 기후가 어우러져 세계적인 명주가 탄생한다. 독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하다. 한 모금만 마셔도 잔향이 오래간다. 그랜드베베(Grandvewe)는 태즈메이니아에서 유일하게 양 치즈를 생산하는 곳이다. 태즈메이니아는 물론이고 본섬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피터 길모어 같은 유명 셰프들에게도 맞춤형으로 공급된다. 참고로 소와 염소로부터는 일 년 내내 우유를 얻을 수 있지만 양은 연중 7개월만 우유를 내준다. 목장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양젖으로 만든 치즈와 아이스크림을 음미할 수 있다. 호바트 외곽으로 나가면 와이너리 홈 힐을 만날 수 있다. 레스토랑과 기념품 매장이 들어선 단층 건물의 통유리를 통해 주변 포도밭 풍경이 쏟아져 들어온다. 피노누아르 품종으로 만든 레드와인의 인기가 가장 좋다.

레스토랑 록풀의 한 요리사가 글레노키 예술조각공원에서 바닷가재를 굽고 있다.
먹으러 왔지만 잠시나마 태즈메이니아의 자연을 둘러보자. 호바트 시내에서 B64 도로에 올라 12㎞가량 나아가면 웰링턴산 정상에 도착한다. 호바트 최고의 전망대다. 바다와 도시가 어우러진 파노라마 뷰가 발아래 펼쳐진다. 정상을 뒤덮고 있는 거친 모양새의 돌무더기와 주상절리 같은 바위기둥들에서는 태곳적 신비가 느껴진다. 호바트에서 태즈먼 하이웨이를 타고 넘어가면 로즈니 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장쾌하다. 돌출된 부분에 각양각색의 집들이 모여 있고, 그 배후의 창창한 바다에는 순백의 요트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보노롱 야생동물공원을 찾으면 좋다. 캥거루, 코알라, 웜뱃 등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 공원은 어미 잃은 새끼나 다친 동물을 치료하고 보호하다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브루니 치즈 회사의 치즈 숙성실.
태즈메이니아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브루니 섬. 브루니의 북섬과 남섬을 잇는 가느다란 지형인 넥(Neck)에는 나무 계단이 정상까지 설치돼 있다. 시선이 멀리까지 뻗어나간다. 브루니 섬은 태즈메이니아 주민들이 즐겨 찾는 미식의 고장이기도 하다. 굴농장 겟 셔크트(Get Shucked)에서는 15호주달러를 내면 레몬과 함께 12개의 생굴을 먹을 수 있다. 굴완탄을 비롯한 아시아풍의 굴 요리도 판매한다. 텃밭에서 재배하는 채소들은 굴 요리를 위한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한다. 브루니 아일랜드 프리미엄 와인의 바 & 그릴에서도 신선한 지역 산물을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내놓는다. 특히 할루미치즈를 곁들인 버섯 마리네이드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와인 중에는 2012년산 피노누아르 리저브의 풍미가 빼어나다. 치즈 애호가라면 브루니 아일랜드 치즈 컴퍼니에 들러야 한다. 창업주인 닉 해도는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데, 좋은 치즈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우유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최적의 환경에서 소와 염소를 기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태즈메이니아(호주)/글·사진 노중훈(여행 칼럼니스트)

태즈메이니아 여행 정보

가는 길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인천~시드니 직항편을 매일 운항한다. 비행시간 10시간30분. 시드니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 태즈메이니아의 주도인 호바트까지 약 2시간. 멜버른에서는 비행기로 1시간 약간 넘게 걸린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20㎞ 정도 떨어져 있다.

현지 정보 태즈메이니아는 동서 길이 315㎞, 남북 286㎞, 면적 6만8331㎢로 남한 3분의 2가량 크기의 섬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충전용 멀티어댑터를 준비해야 한다. 화폐는 호주달러(1호주달러= 약 860원대).

가볼 곳 태즈메이니아의 면적은 우리나라 3분의 2쯤 되지만 인구는 50만명에 불과해 ‘청정 호주’에서도 가장 깨끗한 자연을 보유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전체 면적의 40%가 국립공원 혹은 세계자연유산 및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마운트필드 국립공원은 태즈메이니아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1916년 선정됐다. 크고 작은 폭포를 품은 계곡을 지나면 습지가 형성돼 있는 정상에 다다른다. 유칼립투스가 빽빽이 들어찬 숲 안에 들면 경외감마저 밀려든다. 크레이들마운틴 국립공원은 트레킹 마니아들이 꼭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65㎞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를 갖추고 있다. 와인글라스 베이는 태즈메이니아에서도 물빛이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힌다. 호바트 시내는 작아서 한나절이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호바트의 ‘곳간’인 살라망카 마켓과 18세기 영국풍의 집들이 모여 있는 배터리 포인트, 캐주얼 레스토랑들이 늘어선 프랭클린 워프 등을 많이 찾는다.

묵을 곳 호바트의 레스트 포인트(www.wrestpoint.com.au)는 호주에서 처음으로 카지노가 설치된 호텔이다. 호바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하다.


(*위 내용은 2015년 1월 29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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