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부터 도쿄 시부야에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레오리오니의 원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도쿄 근교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이 전시회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오랫만에 도심 나들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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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1970년대부터 레오리오니의 '스위미'

(한국어 제목은 '으뜸헤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 실려 이 작가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 탓인지, 전시장에는 우리처럼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 외에도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성인 관람객들도 무척 많았다.

 

미술관 입구에 마련된 숍에서 레오리오니의 수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뛰어난 그림책들은 이렇게 진열해 두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참 이쁘다.

낯익은 그림책들을 발견하고 한동안 열심히 펼쳐보느라 바빴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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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누나따라 열심히 책을 본다 싶더니만,

공간과 사람들 모두가 우아해 보이는 미술관 주변을

천방지축 우리 둘째가 뛰어다니기 시작..

겨우겨우 붙잡아 카메라에 한눈팔게 하며 소란피우지 않도록 

남편과 갖가지 작전을 펼쳤건만 제대로 찍힌 사진 한장 고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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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을 때가 아직 오전이라

원화 전시회 관람 후 점심식사를 예정했건만,

아들을 진정시키는 데는 먹는 게 젤인지라

결국 미술관 내의 레스토랑에서 비싼 점심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점심을 먹는다고 하니 기분이 최고가 된 아들.

아직까지 가족이 다함께 문화생활을 순조롭게 즐기기는 먼 듯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와 주는 것만해도

많이 키운거라며 우리 부부는 자축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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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든 밖에서든

때가 되면 일단, 아이들 밥을 먹여놓아야 안심이 된다.

오전에 조금이라도 사람이 덜 붐빌 때 전시회를 먼저 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미술관 내 레스토랑 음식이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아

다 먹고 나니 아이들이 훨씬 생기있어졌다.

그래서 얼른, 전시장에 입장!

 

와우! 레오리오니의 원화는 나도 처음 보는데

색감이 정말 너무 이뻤다. 그의 대표적인 그림책 주인공 생쥐 한 마리만 해도

직접 그린 부분과 색지를 오려 붙인 부분 등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만드는 걸 너무 좋아하는 딸은 엄마아빠 안내없이도

혼자서 너무 잘 찾아보며 즐거워했고,

나도 잠깐이지만 원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에 빠질 수 있었다.

그 사이 아들과 아빠는...

<으뜸헤엄이>를 영상으로 틀어둔 공간에서 물고기 떼를 따라다니며 놀기도 하고

그림책 캐릭터를 상품화한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전시작품이 많고, 그림책 속 캐릭터들을 식기, 옷, 지갑, 열쇠고리, 가방, 공책, 편지지, 엽서 등

다양하고 너무 이쁜 상품을 구경하는 게 무척 즐겁긴 했지만

전시 기획을 너무 어른 중심으로 한 게 좀 아쉬웠다.

동영상도 음향효과와 함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고

그림책을 읽는 공간 말고도 이 작가가 한 작업처럼 종이를 오려붙이거나 해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으면 좋았을텐데.

남편이 둘째를 맡아주어 딸과 함께 잠시동안이라도 편하게 관람하긴 했지만

역시 제대로 여유있게 문화생활을 즐기기엔 아직 멀었다..

그래도 네 식구가 오랫만에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며 나들이를 한 것만으로도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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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이날 본 미술관에서 전철로 한 역만 가면,

책/장난감/여성 전문서점/유기농레스토랑이 한 건물에 있는 <크레용하우스>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거기도 한번 가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지라 그냥 마음을 접었다.

 

어린이책이나 애니메이션을 테마로 도쿄여행을 생각하는 가족이라면

이곳 크레용하우스와 <지브리 미술관>도 꼭 추천하고 싶다.

관광지 중심의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한 주제를 정해 그것과 연관되는 곳을 골라다니다보면

오히려 그 나라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더구나 지브리 미술관은... 국내외 관람객들로 늘 붐비는 곳이라 한적한 분위기에서

구경하기는 좀 힘들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인간의 꿈과 상상력에 대해 놀라움과 감동을

경험할 수 있으니 꼭 추천하고 싶은 산책 코스다.

 

전시회가 있었던 시부야에서 신주쿠로 이동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남자아이들의 로망 <로망스 카>를 탔다.

신주쿠에서 온천관광지 '하코네'를 잇는 전철인데 디자인이 멋있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데

우리가 사는 곳은 이 신주쿠와 하코네의 중간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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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운전석을 둔 로망스카는

1층 맨 앞과 뒷 좌석은 승객들이 전망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아빠의 발빠른 예약으로 전망석에 앉은 아들은 흥분의 도가니^^.

30분 정도 지나면 내려야 하지만, 쾌적한 열차 공간에서 잠시나마

도심여행의 피로도 풀고 간식타임도 가질 수 있어 좋다.

옆 자리에 탄 가족들을 보니, 이제 두 돌쯤 지났을까 싶은 남자아이가

00맨 시리즈의 장난감들을 창문앞에 쭉 전시해두고(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인 듯)

가족끼리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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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는

오랫만에 가족끼리 하는 도심 산책이다 싶어 잔뜩 설레었는데

돌아오는 전철 안에 앉아있자니 너무 정신없이 후딱 시간이 지난 것 같아 멍-했다.

게다가 좋아하는 기차를 타고 흥분한 아들이

이 로망스 카의 다른 종류도 타겠다고(디자인과 색깔이 다른 4종류가 있다;;)

어찌나 떼를 쓰는지 달래고 이해시키느라 남편과 나는 그렇잖아도 무더운데 땀을 바가지로;;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을 차려먹을 때

아들은 그 좋아하는 밥을 코앞에 두고도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한동안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엄마아빠에게 하는 말에 식구들 모두가 빵 터졌다.

 

"어른이 되면 혼자 기차타도 돼??"

 

남편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그럼그럼!! 당연히 되지. 얼른 커서 혼자 많이 타렴!!"

어른 입장에서는 한번 태워준 것만해도 어디냐 싶은데

아들은 제 딴에는 원없이 타고 싶은 기차를 못 타본 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다.

 

그래.. 아직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것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다섯 살인데

평생 자기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작가의 전시회를 고상하게 즐겨주기를 바란

이 엄마가 너무 욕심이 많았나 보다.

아들아!  이담엔 그냥 기차만 타러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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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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