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에 찾아간 서귀포시 강정동의 엉또폭포. 비가 와야 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폭우 속에 찾아간 서귀포시 강정동의 엉또폭포. 비가 와야 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소리 없이 흐르는 느낌, 최고시속 130㎞까지…하루 최소 두 차례 충전은 아직 불편

‘절 오백, 당 오백.’ 제주도에 절이나 당집(신당)이 많다는 말이다. 무속신앙과 결합된 불교나 토속신앙을 믿는 주민들이 많다는 말이자, 그만큼 고난에 찬 삶을 살아오며 끈질기게 공동체문화를 유지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도 거의 모든 마을에 제단이나 신당이 보전돼오고 있다.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도에 전해오는 또다른 청정 문화유산이다. 음력 정월 ‘초정일’에 행하는 제사가 포제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기원하는 마을공동체 의식으로, 한해의 출발과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행사다. 지난 일요일 제주도에선 마을마다 일제히 포제가 진행돼, 새봄의 시작을 알렸다.

바야흐로 시작된 제주의 청정 봄빛을 찾아 나선 길. 이동 수단도 청정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친환경 청정 교통수단, 전기자동차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 교통수단 100% 전기차 사용’을 목표로 정한 자치도다. 오는 3월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도 ‘탄소 없는 청정 제주도’로 도약하기 위해 벌이는 행사다. 어렵사리 확보한(제주도 내 전기차 렌터카 수는 2월 현재 총 66대다) 전기차를 직접 몰며 제주의 이른 봄 풍경을 둘러봤다.

서귀포 안덕계곡 상류 감귤밭 둑에서 만난 동백.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서귀포 안덕계곡 상류 감귤밭 둑에서 만난 동백.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걸매·노리매·휴애리 생태공원 매화 활짝

전기차 체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감상해볼 만한 제주 봄 풍경 속으로 먼저 가보자. 한겨울에도 붉은 꽃송이를 여는 동백이나, 주요 관광지에 일찍 심어 꽃피운 노란 유채꽃들이야 제주도에선 이미 흔한 풍경이다. 역시 화사한 자태로 이른 봄꽃다운 모습을 드러낸 건 매화였다. 지난달 말부터 일부 생태공원에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고, 폭설과 강추위로 주춤했던 매화나무들에서도 지난주부터는 꽃봉오리들이 줄줄이 터지며 은은한 매향을 내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매화 감상지로는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상류의 ‘걸매 생태공원’과 남원읍의 ‘휴애리 자연생활공원’, 그리고 대정읍 중산간로의 자연공원인 ‘노리매’ 등이다. 지난 주말까지 서귀포 걸매 생태공원의 매화나무들이 30% 이상 개화돼 가장 화사한 꽃빛을 보여줬고, 노리매 공원의 나무들은 약 20%, 휴애리 공원은 다소 늦어 10%가량이 피어나 꽃그늘을 드리웠다.

동백꽃으로 이름난 곳은 남원 위미리의 동백군락지(제주도기념물 39호)다. 동백꽃은 늦가을부터 겨울을 거치며 조금씩 꽃을 피우다, 이른 봄부터 본격적으로 피고 지며 발치에 붉은 융단을 깐 듯 꽃송이들을 떨군다. 하지만 일찍 개화했던 꽃송이들은 지난달 말 폭설로 벌써 시들시들 떨어져 내린 모습이다. 그래도 나무마다 새로 열릴 꽃송이들이 잔뜩 맺혀 조만간 다시 붉은 꽃사태를 이룰 전망이다.

‘탄소 없는 청정 제주도’ 내걸고
다음달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개최
곳곳에 충전시설 세웠다 해도
찾고 기다리고 충전까지 1시간
충전기 형식 통일하고 성능 높여야

한 어린이가 엉또폭포 들머리 다리 옆에 선 돌하르방의 코를 쓰다듬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한 어린이가 엉또폭포 들머리 다리 옆에 선 돌하르방의 코를 쓰다듬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비 오면 엉또폭포·이색박물관 탐방 제격

제주도는 바람 많고 비 많은 섬. 한라산을 중심으로 섬 동서남북의 하늘이 제각각인,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맑은 날과 여행 시기를 제대로 맞추기 어려운 곳이 제주도다. 지난주 날씨가 그랬다. 머무는 내내 가는 곳마다 폭우와 강풍이 몰아쳤다. 폭우 때 제주도를 가장 제주도답게 드러내주는 볼거리가 폭포들이다. 평소 수량이 적거나 말라 있던 계곡과 폭포들이, 폭우와 함께 수량이 순식간에 불어나 장관을 이룬다. 서귀포 안덕면의 안덕계곡이나 제주시 오라동 방선문계곡, 그리고 천제연·천지연폭포 등에서 그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서귀포 강정동의 엉또폭포는 비 올 때 제 모습을 보여주는 대형 폭포다. 폭우 때나 그 직후에 찾아가야 높이 50m에 이르는 폭포의 위용을 감상할 수 있다.

서귀포 법환포구 앞 밤바다 풍경. 거센 파도와 포말을 장노출로 찍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서귀포 법환포구 앞 밤바다 풍경. 거센 파도와 포말을 장노출로 찍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비바람이 싫다면, 실내 볼거리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제주도는 박물관들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학습과 함께 재미를 곁들인 박물관으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그림·조형물들을 전시한 중문관광단지의 ‘박물관은 살아 있다’, 성을 주제로 한 ‘건강과 성 박물관’(서귀포시 안덕)과 ‘러브랜드’(제주시 연동) 등이 흥미롭다. 중문의 제주컨벤션센터(ICC)도 비 올 때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지하 1층의 면세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콘서트 등을 즐기거나 점심 뷔페 식사(1인 1만9800원)를 하기 위해서도 많이 찾는다.

서귀포 걸매생태공원에 핀 매화.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서귀포 걸매생태공원에 핀 매화.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기차 탈 땐 심신충전보다 전기충전 먼저

폭우 속에 둘러본 제주도 전기차 여행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재충전을 위한 여행’이 되겠다. 매화·동백·유채꽃 등 봄꽃들은 빗속에서도 화사했으나, 이들을 찾아가는 전기차 여정엔, 늘 조바심이 함께했다. 생각보다 급속하게 줄어드는 계기판의 충전 눈금이 가하는 압박이다. 전기차를 재충전하는 틈틈이 심신 재충전도 하는 방식으로 누린 여정이다.

출발은 아주 순조로웠다. 한번 충전(완충)에 140㎞가량을 달릴 수 있고, 최고 시속 130㎞에 이르는 ‘SM3 전기차’다. 납작한 키를 꽂고 시동 버튼을 누르니, 시동은 걸린 듯한데 아무 변화도 없다. 그냥 전기제품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쿡 꽂기만 한 느낌, 차내엔 적막감 그대로다. 계기판에 ‘절전 사용’을 나타내는 나무 그림이 하나 뜬 게 전부다. 가속페달을 밟은 뒤에야 시동이 걸렸다는 느낌이 왔다. 소리 없이 흐르는 전기차. 이게 첫 느낌이다.

전기차충전소에서 충전중인 관광객.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기차충전소에서 충전중인 관광객.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차량 내비게이션의 주유소 아이콘을 누르자 잔여 충전량과 주행 가능한 거리가 숫자로 표시됐고, 주변 충전소를 검색하니 거리별로 여러곳의 충전소 목록이 떴다. 주요 관광지나 관공서, 호텔 등의 주차장엔 대개 충전소가 설치돼 있었다. 대로로 나서서, 속도를 높이자 생각보다 강한 힘이 온몸에 전해져온다. 오르막에서 가속페달을 밟을 때나 놓았을 때 ‘윙’ 하는 소음이 다소 귀에 거슬렸지만, 그 외엔 일반 차량과 다르지 않다. 차량 가격 4300만원. 구입하기엔 부담스러워도, 렌터카라면 청정 환경 유지에 힘을 보탠다는 뜻에서도 선택할 만하지 않은가. 렌트 비용도 일반차량과 비슷했다. 전기차가 탄소 발생 없는 청정 제주도를 향한 희망의 교통수단임은 분명해 보인다.

제주도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2366대의 전기차가 보급돼 있다. 전국 전기차 보급 대수의 절반가량이다. 도는 올해 안에 추가로 4000대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조직위 김창식 사무국장은 “전기차 구입 때 정부가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주는데다, 개인 충전기 설치비(약 700만원)도 지원해준다”며 “전기차 보급은 급속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주도는 2017년까지 2만9000대, 2020년엔 13만5000대, 2030년엔 제주도 내 일반차량 37만여대 모두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걸 목표로 세웠다.

 

청정 교통수단 뿌듯, 충전은 아직 불편

2박3일간의 전기차 체험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충전 문제였다. 현재 제주도엔 모두 2516기의 충전기(충전소)가 설치돼, 평균 3.5㎞ 거리마다 충전시설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용해보니 여러 불편이 따라왔다. 충전 잔량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줄어들었고(히터나 에어컨 사용 때는 더 빨리 준다), 한두 시간 이동 뒤엔 불안감 때문에 충전소를 검색해 찾아나서야 했다. 게다가 충전기들이 교류식(AC)/직류식(DC)으로 형식이 달라 차종마다 해당 충전기를 찾아야 하고, 일부 충전소는 한가지 형식만 갖추고 있어 더욱 불편했다. 어렵게 해당 충전소를 찾아도 이미 다른 차량이 충전중인 경우가 많아 기다려야 했다. 제주도 곳곳을 여행할 때 하루에 적어도 2회 충전이 필요했는데, 1회 완충(급속충전) 시간이 30~40분인 점을 고려하면, 찾고 기다리고 충전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 충전 시간만 하루 2시간 넘는 셈이다. 전기차 충전기 앞에 일반차량이 주차돼 있는 것도 복병이었다.

도는 올해 안으로 3500기의 충전시설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어서, 사정은 점차 나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충전기 형식의 통일과 충전 성능 확대 등 기술적 문제 해결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전기충전소 이용 요금은 지금까지 무료였지만, 제주도는 오는 3월 중 유료화를 시작할 예정이다.

제주/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위 내용은 2016년 2월17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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