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숲서 ‘해원’ 돌담길 따라 ‘기원’

여행하기 좋은 철이란, 붐비지는 않고 경관은 더 돋보이는 때가 아닌가 싶다. 산과 들은 한여름처럼 푸르른데 숲길 선선하고, 단풍은 아직 일러 비교적 한적한 초가을 이맘때가 바로 그 좋은 철이다. 가을 경치가 꼭 울긋불긋 불타오르듯 현란해야 제맛일까. 편백향 그윽한 산길에서도, 오래된 마을 돌담길에서도 물씬한 가을 향기를 만나는 건 마찬가지다. 초가을 정취에 몸과 마음 흠뻑 적시고 돌아올 수 있는 남도의 고장, 전남 장흥의 쾌적한 숲길과 고즈넉한 마을길로 떠난다. 이번주부터 장흥에서 열리는 국제통합의학박람회에선 지친 몸과 마음을 점검해볼 수 있는 다채로운 치유 체험 행사가 곁들여진다.

억불산 편백숲 탐방 뒤 배롱나무 연못 감상

장흥을 대표하는 산은 봄철 철쭉밭이 아름다운 제암산(806m)과 늦가을 억새밭이 눈부신 천관산(724m)이다. 장흥엔 두 명산 말고도 주민들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담한 산 둘이 더 있다. 장흥 읍내나 주변 마을 어디서든 바라다보이는 억불산(517m)과 사자산(667m)이다. 산자락이 온통 편백·삼나무로 덮인 억불산도, 산세가 엎드린 사자를 닮은 사자산도 주민들이 아끼는 주말 휴식처요 산행코스다. 두 산 정상의 조망도 빼어나 장흥 읍내와 멀리 득량만 앞바다 섬들까지 감상할 수 있다.

장흥 억불산의 편백나무숲(우드랜드) 그네의자에 앉아 쉬는 탐방객들.
장흥 억불산의 편백나무숲(우드랜드) 그네의자에 앉아 쉬는 탐방객들.
억불산 이름은, 산에 부처를 닮은 기암괴석들이 무수히 많은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산 중턱의 며느리바위 전설에서 나온 ‘억부’(지아비를 기억한다는 뜻)산이 변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 억불산의 보배는 빽빽한 편백나무와 삼나무숲이다. 장흥의 조림가 손석연(1918~1997)씨가 1958년부터 심기 시작해, 무려 47만 그루의 편백·삼나무를 심고 가꾸며 120㏊의 헐벗었던 산자락을 울창한 숲으로 바꿔놓았다. 전국에서 찾아와 편백향 가득한 숲길 걷고 쉬며 그를 기억하는 탐방객이 늘고 있으니, 산자락을 덮으며 무수히 솟은 이 나무들이야말로 부처들이면서 며느리바위인 셈이다.

숲길은 다양한 코스로 이뤄진 나무데크길과 톱밥길로 조성돼 남녀노소 부담 없이 피톤치드에 젖어 산책할 수 있다. 정상까지도 나무데크길이 이어져 있다. 왕복 3시간. ‘우드랜드’란 이름으로 선보인 13만2천㎡의 편백숲 휴양림 안에 숲치유체험장·목재전시장·목공예체험장 등과 황토한옥·통나무집 등 숙박시설을 갖춰놓았다.

억불산 자락에 들러볼 만한 마을이 기다린다. 배롱나무(목백일홍)에 둘러싸인 오래된 연못과 고택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평화리(상선약수마을)다. 집 들머리의 고목들 우거진 돌계단이 인상적인 고영완 가옥 앞에는 200여년 전 조성한 아름다운 연못이 놓여 있다. 못 주변 40여 그루의 배롱나무 숲과 못 안에 만들어놓은 작은 섬이 돋보이는 멋진 원림(정원)이다. 이곳 배롱나무들은 나무에 따라 분홍색·빨강색·흰색·보라색 등 4색 꽃을 피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6~10월 내내 피고 지는 꽃무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 배롱나무 꽃은 막바지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10월 초까지는 꽃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억불산·사자산 등 걷기 좋고
득량만 앞바다 경치도 빼어나
10월말까지 열리는
국제통합의학박람회 가볼만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의 200여년 된 연못 송백정. 연못을 둘러싼 배롱나무(목백일홍)들의 꽃잔치도 마무리되고 있어, 가을이 깊어감을 알려준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의 200여년 된 연못 송백정. 연못을 둘러싼 배롱나무(목백일홍)들의 꽃잔치도 마무리되고 있어, 가을이 깊어감을 알려준다.

사자산 전망 보고 기산마을 돌담길 산책

사자산은 이름 그대로 장흥 읍내를 향해 엎드린 사자를 닮았다. 산세가 ‘임금 제’ 자를 쓰는 제암산을 둘러싼 병풍 모습이라 해서 ‘어병산’, 임금(제암)의 스승이 되는 산이라 하여 사제산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백광철 기산리 이장은 “조선 중기부터 이미 ‘사자산’으로 적은 기록이 나온다”며 “우뚝한 머리와 갈기를 닮은 산자락, 긴 능선(허리)과 볼록 솟은 정상(엉덩이) 부분이 사자와 비슷하다”고 했다.

사자산 정상은 머리(570m) 쪽이 아닌 엉덩이(667m) 쪽이다. 두 지점과 능선 등 어디에서든 조망이 좋다. 산줄기는 푸르나 수확을 앞둔 들판은 완연한 황금빛이다. 첩첩이 깔린 산줄기 사이로 열린 득량만 앞바다 풍경도 그림 같다. 사자의 어깨 뒤 능선 해발 535m의 탁 트인 지점에 봄~가을 패러글라이더들이 이륙에 나서는 활공장이 있다. 사자산과 제암산 능선은 한바탕 휘어지며 이어져 있는데, 중간 능선은 봄이 되면 꽃사태를 방불케 하는 철쭉밭이 장관을 이룬다. 활공장 밑까지는 차로 오를 수 있다.

사자산 자락 기산마을의 대나무숲·편백나무숲 사이로 난 돌담길.
사자산 자락 기산마을의 대나무숲·편백나무숲 사이로 난 돌담길.
억불산 자락에 평화리가 있었다면, 사자산 아래엔 돌담길 아름다운 기산리가 있다. 역시 고즈넉한 옛 정취를 간직한 마을이다. 조선시대 1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마을이자, 가사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관서별곡>을 지은 기봉 백광홍(1522~1556)이 태어난 곳이다. 과거 급제자 14명을 키운 곳이 이 마을 서당 봉명재로, 1960년대 말까지 운영됐다고 한다. 봉명재 터와 과거 급제자가 나오면 잔치를 베풀던 경연대 터가 남아 있다.

마을에서 경연대·봉명재 터로 가는 길에 만나는 울창한 대나무숲과 삼나무숲 사이로, ‘과거 급제의 길’이 이어진다. 시험을 앞둔 이가 걸으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지닌 돌담길인데, 매우 아름다워 시험이 없어도 잠시 거닐어볼 만하다. 마을엔 가물 때나 홍수 때나 수량이 일정하다는 오래된 샘, 웃샘·아랫샘이 있어 지금도 식수로 쓰인다.


전통의학·첨단의학 한자리에서 체험

울창한 숲길 걷고, 정겨운 마을길 거니는 것만으로도 두루 ‘힐링’의 여정이 될 테지만, 10월 말까지 한 달간 벌어지는 ‘장흥 국제통합의학박람회’의 체험 행사들을 누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사자산 자락에 박람회장이 있다.

46개국 860여곳에 이르는 의학 관련 기관·단체들이 참가하는 국제 행사다. 서양의학과 한의학, 검증된 보완대체의학 등 세 분야의 현주소와 이들이 조화를 이룬 의료 서비스를 알아보고 체험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갈 수 있는 자리다. 스트레스통증관·만성성인병관·뷰티미용관 등에서 전문 인력의 상담을 받으며 다양한 의료서비스 체험을 할 수 있다. 의사, 한의사, 대체의학 전문가 등이 동시에 나서는 협진 코너도 있다. 입장료(어른 1만2000원)를 내면 상담과 체험은 무료다. 장흥의 토속음식과 세계 각국 음식 등을 먹을 수 있는 건강음식관·간식코너도 마련된다.

탐진강변의 정자 용호정.
탐진강변의 정자 용호정.

가지산 보림사의 사천문. 안으로 대적광전이 보인다.
가지산 보림사의 사천문. 안으로 대적광전이 보인다.
이 밖에 장흥에서 둘러볼 만한 곳으로 가지산 자락의 고찰 보림사, 탐진강 따라 이어지는 용호정·동백정·부춘정·사인정 등 옛 정자들, 숲길과 아담한 폭포들이 어우러진 유치자연휴양림, 장흥 읍내의 대표적 먹거리 장터인 정남진 토요시장 등이 있다. 장흥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작가인 이청준·한승원(최근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부친)을 배출한 고장이다. 이청준 생가, 영화 <천년학> 촬영지, 한승원문학산책로 탐방에도 나서볼 만하다.

장흥/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장흥 여행정보

먹을 곳 전남 장흥의 대표 농수산물이 한우·표고버섯·키조개다. 이 셋을 불판에 익혀 함께 싸 먹는 게 이른바 ‘장흥삼합’이다. 싸 먹는 재료는 절인 깻잎, 채소 등 식당마다 다르지만, 부드러운 쇠고기와 향긋한 표고버섯, 그리고 졸깃한 키조개 관자살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각종 제철 생선회를 갖은 채소와 함께 된장 육수에 말아 내는 된장물회 또한 장흥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 음식이다. 은은한 된장 향이 비린내를 잡아, 개운하면서도 깊은 뒷맛을 안겨준다. 생선회 대신 한우 생고기를 쓰는 한우물회를 내는 곳도 있다. 갯장어(하모)를 표고버섯·채소를 끓인 물에 데쳐먹는 ‘하모 샤브샤브’도 이름난 음식이지만 제철(10월 초까지)이 마무리돼가고 있다. 요즘은 전어철이니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다. 매생이는 겨울에만 나지만 냉동보관했다가 사철 매생이국·떡국 등을 내는 집들이 많다. 장흥 읍내 거리와 토요시장 먹거리촌 등 대부분 식당에서, 이런 장흥의 별미들을 맛볼 수 있다. 만나숯불갈비·취락식당·명희네 등의 장흥삼합, 싱싱회마을 등의 된장물회, 명희네의 한우물회, 한라국밥의 소머리국밥 등.

묵을 곳 억불산 우드랜드의 통나무집·황토집·한옥 1박 6만, 8만, 12만원 등. 장흥 읍내 강변을 따라 크라운모텔 등 모텔이 여러 곳 있다.

장흥 여행 문의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24, 장흥국제통합의학박람회 조직위(체험 행사 등) (061)860-7531~3. 억불산 우드랜드 (061)864-0063.


(*위 내용은 2016년 9월28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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