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6033701_20140213.JPG » 파르크의 ‘흑미밥’
[매거진 esc] 밥맛 특별한 밥집들
입맛 변덕스러운 트렌드 세터들이 모이는 이태원과 가로수길에 고슬고슬하고 차진 밥맛으로 승부하는 밥집이 인기다.
도정부터 쌀 씻기, 밥물까지 까다로운 프렌치 메뉴보다 공들여 짓는 밥 맛에 감동하는 건 20~30대 젊은이들이다.

밥은 더 이상 ‘올드 패션’이 아니다. 과거 우리 식탁의 주인공이었던 밥은 한때 파스타 등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외식문화의 트렌드세터들에게 밥은 ‘진부한 아이템’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식도락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외식문화에 분다. 빈티지풍 액세서리와 의류가 최첨단 문화로 등극한 것처럼 말이다.

지난 7일 낮 12시 서울 이태원동. ‘피제리아 드 부자’(일명 부자피자) 앞은 한산하다. 한때 동네 주민들은 진풍경을 목격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도전정신 불태우며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한 조각 피자에 쏟아붓겠다 나선 많은 이들을 봐왔다. “어, 자리 없어요? 몇 시에 다시 와요? 12시 반에 오라고요?” 부자피자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부자피자 뒤 건물 2층에 자리잡은 ‘파르크’(parc)를 찾은 이들의 아우성이다. 20~30대가 80%다. 더러 흰 머리카락 날리는 노신사와 유럽에서 막 도착한 듯한 외국인들도 보인다. 아담한 소반에 밥 한 공기(200g), 슴슴한 국과 밑반찬 3가지, 주요리 한 가지가 다다. 주요리는 ‘도토리&청포묵 콤보무침’, ‘묵호항 직송 오징어볶음’, ‘호주산 생소 부챗살구이’ 중에 한 가지를 고르면 된다. 매일 바뀐다. 그저 평범한 밥상이 사람을 부르는 이유는 뭘까? 파르크의 주인 박모과(34·본명 박성우)씨는 “집에서 늘 먹던 어머니의 밥”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미밥과 흑미밥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는데, 모두 박씨의 어머니가 해주던 집밥 그대로다. 그는 1세대 브이제이(VJ·비주얼자키·공연이나 쇼의 배경 영상을 제작하는 직업)로 활동하다가 3년간 타이에서 살았다. “아시아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떠나 많은 것을 배웠다”는 그는 늘 어머니의 밥이 그리웠다. 외국의 유명한 한식당을 가도 어머니의 밥은 만날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의 밥과 음식을 배우자”고 생각하고 지난해 파르크를 열었다. 전라남도 순천 출신의 어머니는 솜씨가 좋았다. 셰프 6명이 일산지역의 청결미로 대형 전기압력밥솥 6개를 사용해 밥을 짓는다. 

피자, 파스타집 제치고 줄서서 먹는 
이태원 파르크 
순천 출신 어머니에게 전수한 
밥짓기법 
가로수길 쌀가게 바이 홍신애 
매일 직접 도정한 쌀로 밥해 

박씨는 도정 날짜를 꼭 확인한다. 쌀은 도정한 날로부터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최소 15일 이내에 도정한 쌀로 밥을 해야 맛있다. 막 도정한 쌀로 쌀의 수분을 잘 유지하면서 가동되는 밥솥에 짓는 게 가장 맛있다. 그는 물과 쌀의 양, 맛 등을 매일 적은 데이터북도 만든다. “한번은 모든 조건이 같은데 밥이 질어져서 혼난 적이 있다.” 그때부터다. 당연한 소리지만 묵은쌀보다는 햅쌀이 맛나다. 묵은쌀은 수분이 이미 많이 빠져 맛깔스러운 향도 사라지고 밥을 해도 퍼석하다.

지난 1년간 점심에만 열었던 파르크는 손님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22일부터 저녁에도 밥을 판다. 영상을 업으로 했던 이답게 파르크는 세련된 카페풍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파스타나 케냐 에이에이(aa) 같은 고급 커피가 식탁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다. 성공 요인이다.
앞서가는 멋쟁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의 강남구 신사동, 일명 가로수길. 유명한 셰프들이 앞다퉈 레스토랑을 여는 이곳에 지난해 9월에 작은 밥집 하나가 생겼다. 간판에는 ‘쌀가게 바이(by) 홍신애’(이하 쌀가게)가 걸려 있다. 스타 요리연구가이자 푸드스타일리스트인 홍신애(38)씨가 주인이다. 인테리어는 파르크처럼 카페풍이고 점심에 줄을 선다. 인근 프렌치 레스토랑 ‘솔트’의 박병규 셰프도 여기서 자주 끼니를 해결한다. 방송인 전현무씨도 자주 얼굴을 내민다.

밥집은 ‘들들들’ 장비의 코 고는 소리 같은 요란한 기계 소리로 아침을 시작한다. 밥집 한쪽의 도정기계에서 나는 소리다. 홍씨는 매일 100인분의 쌀을 직접 도정한다. 쌀의 5%만 깎는다. 매일 도정하는 5분도미가 이 집 밥맛의 비결이다. 홍씨는 “현미의 씹는 맛과 백미가 주는 쫀득함을 동시에 선사한다”고 한다. 쌀의 영양소를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가정용 도정기를 사용해왔다. 처음에는 ‘맘스밀’이라는 가정용 도정기를 매장에도 설치했으나 대중식당과는 맞지 않았다. 굳이 도정기를 들여올 필요가 있을까? 정미소에서 도정한 쌀을 가져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것은 마치 대형 세탁기에 온 동네 옷을 다 빠는 것과 같다.” 요즘은 대형마트에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도정을 해주는 데가 많아졌다.

그는 ‘밥순이’를 자처하지만 각종 방송 출연, 강연, 요리 시연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제대로 먹은 밥에 관한 기억이 흐릿하다. “밥을 제대로 먹어야겠다”는 결심에 쌀가게를 열었다. 반찬보다 밥맛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데 몰두한 이유는 몸이 아팠던 둘째아이 때문이다. 완쾌의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아이는 백미를 끊고 현미로 바꾸자 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다. 밥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파르크처럼 소반에 옹기종기 찬들이 나온다. 210g의 밥 한 공기와 싱거운 국, 제육볶음, 상추, 깍두기를 포함한 밑반찬이 3가지. 무명치마처럼 투박하다. 화려한 그의 외모와 딴판이다.

홍씨의 밥은 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꺼칠한 첫 느낌이 사라지는 데는 몇 초 안 걸린다. 안성, 이천, 김포 등지에서 생산하는 고시히카리가 재료다. 10가지 넘는 쌀로 실험해 얻은 결과다. 곧 유기농 쌀도 사용할 예정이다. 윤기 나는 차진 밥을 짓기 위해 참기름이나 올리브유를 넣는 이들이 있는데, 기름은 쌀을 코팅시키는 효과가 있어 수분 흡수를 방해한다. 더구나 오래 두면 산패가 일어나 냄새나고 몸에 좋지 않다. 홍씨는 청주 한 숟가락을 넣는다. 이미 발효가 끝난 청주는 쌀 자체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그가 전하는 맛있는 밥 짓기는 영양학과 기후학을 넘나드는 과학이다. “금이 간 쌀알은 버린다. 이미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 찰기가 없다. 밥을 지어도 맛이 떨어지고, 금 간 사이로 녹말 성분 등이 빠져나가 영양도 손실된 상태다.” 쌀도 물을 잘 만나야 때깔이 좋다. 수분을 잘 흡수하는 쌀은 처음 몸통에 닿는 물을 가장 많이 빨아들인다. “씻는 첫물이 중요하다.” 수돗물보다는 정수기에서 한번 걸러진 물이 낫다. 씻을 때도 손가락 사이로 쌀이 빠져나가도록 설렁설렁 2~3번 씻는 게 좋다. 쌀눈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신경질적으로 빡빡 씻는 동작은 뭘 모르는 행동이다.

밥 짓는 도구 선택도 중요하다. “(나는) 전기압력밥솥을 쓰는데 이것도 종류가 많다. 열판의 쿠션감이 있고 바닥 가운데 스테인리스가 박혀 있는 게 좋더라. 안내 소리 같은 기능은 없는 게 낫다. 밥맛과 무관하다.” 그는 겨울에는 밥물을 4~5숟가락 정도 더 넣고 여름에는 반대로 뺀다. 일반적으로 물은 쌀 부피의 1.2배, 불린 쌀은 1 대 1이 정답이라고는 하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맛에 맞는 밥물의 양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불리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여름에는 30분, 겨울에는 1시간 이상 쌀을 불리는 게 좋다고 하는데 쌀의 종류나 기후, 실내 온도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씨는 한참 밥 얘기를 하다가 차를 건넨다. 현미차다. 쌀가게에서 도정하고 남은 미강으로 만든 차다. 구수하다. 초가지붕 아래 한시 읊조리는 선비의 향이다. 맛난 밥은 손으로 냄새를 끌어와 맡으면 단내가 난다. 사람과 같다. 이들 밥집에서 뭔가 대단한 밥상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 밥상에 지친 이들이라면 환영의 박수를 보내리라.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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