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JPG » 무와 소금물 어우러진 즉석 동치미

[나는 농부다] 숨쉬는 제철밥상

넓은 들에 살다가 우리 마을로 이사 온 이웃이 하는 말, “여긴 추워요. 해 뜨고 지는 시간이 달라요.” 그렇다, 여기는 산골. 산자락에 가려, 해도 늦게 뜨고 일찍 기운다. 여기 살다 보니 동치미를 한 항아리 담가 놓고도 제대로 먹지 않곤 했다. 동치미 항아리까지 가기도 춥고, 차가운 국물도 꺼려진다. 이번 김장 때 아예 담그지 않았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고구마가 달아졌다. 고구마를 익히면 달달한 진물이 끈끈하게 배어 나온다. 따끈따끈하고 달달한 고구마를 한입 덥석 베어 무니 사르르 녹아드는데, 이때 동치미 한 숟갈 떠먹으면 그만이겠다. 동치미가 있을 때는 손도 안 댔으면서, 막상 없으니 더 그립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거라지 않는가. 무를 통째로 담그는 김장 동치미 같지는 않겠지만, 무를 나박나박 썰어 즉석 동치미를 담가볼까! 움에서 무를 몇 개 꺼내보니 아직 싱싱하다. 조금만 담가 냉장고에 넣지 않고 상온에 두고 차갑지 않게 먹어야지.

풀 국을 넣으면 좋은데 마침 호박죽을 끓이고 있으니 이걸 넣어도 될까? 안 될 거야 있나. 찬밥을 갈아 넣기도 하는 걸. 호박죽 서너 국자 떠서 동치미 통에 넣었다. 죽이 식는 사이, 무를 씻는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겉흙만. 마늘하고 생강, 대파 몇 개 뿌리까지 통째로 씻어놓으니 그새 죽이 다 식었다. 무를 나박나박 썰어 거기에 넣고, 마늘하고 생강은 얇게 저며 넣고, 무에 찰랑찰랑 찰 만큼 소금물을 푼다.

동치미는 무와 소금물로 담그는 발효음식이라 소금물이 맛을 좌우한다. 소금은 국내산 천일염이 최고다. 세계에 몇 안 되는 소금 개펄을 가진 우리나라. 천일염을 손쉽게 사서 먹을 수 있는 복 받은 나라다. 요즘 나오는 천일염은 깨끗해 풀어서 김치통에 바로 따라 부어도 괜찮다. 다만 간수를 빼지 않으면 쓴맛이 도니, 다른 건 몰라도 소금만은 미리 사서 쟁여놓는다. 또 염전 두렁에 자라는 풀을 없애려 제초제를 뿌린다니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소금을 구하려 한다. 김장 항아리에 담그는 동치미는 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조금이라도 싱거우면 위에 하얀 골마지가 끼고, 그렇다고 짜게 하면 짠지가 되어 버리니까. 하지만 즉석 동치미는 먹고 싶은 동치미 간보다 약간만 더하면 된다.

너무 금방 담갔다 싶으니 좀 허전하다. 뭐 더 없나? 그래 배! 과일 항아리를 뒤지니 배가 하나 있다. 그다음은 빨갛게 잘 마른 통고추 몇 개. 보통 동치미에는 소금에 삭힌 고추를 넣던데, 나는 통고추를 더 좋아한다. 고추는 태양에 마르면서 고추 살에서 향기가 난다. 그 속에 든 씨도 칼칼한 맛을 내준다. 기계에서 짓이겨진 고춧가루와 다르다. 겉절이를 담글 때 통고추를 물에 불려 갈아서 담가 보라. 닭볶음탕을 할 때도, 매운탕이나 조림음식을 할 때, 피클이나 소스를 만들 때도….

동치미를 담은 통에 뚜껑을 닫아 집안 서늘한 곳에 놔두었다. 하루에 한번 통을 흔들어 고루 섞어주며 주문을 왼다. 무하고 소금물이 어우러져 새콤달콤하면서도 개운한 동치미가 되라고.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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