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 농사는 망했다.

큰 태풍도 없었고 날씨가 좋아 유래없는 풍년이라고들 하는데,

김장 앞두고 배추, 무 값이 폭락할 조짐이 보여 농부들, 걱정이 많다는데

우리 텃밭의

무는 무기력하고

배추는 비실비실

옥상에 심은 배추들은 진딧물에 점령당했다.

무, 배추 심고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 초기 생장에 문제가 있었고 웃거름 시기도 늦은데다 배추벌레, 진딧물을 방치한 결과,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너무 무심했던 게다. 

 

하지만,

농부의 무관심, 비실비실 무기력 텃밭에서도 꿋꿋이 자란준 아이들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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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세 평 텃밭의 주인공,

팔팔한 '팥'이다.

 

7월초에 감자 캔 자리에 심은 팥,

9월초부터 꽃이 피고 한창 꼬투리가 달리고 점점 실해져

꼬투리가 마르고 벌어지기 직전,

10월 말에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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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투리 모아놓고 보니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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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므흣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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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붉다.

무게를 재보니 700그램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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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애벌레 네 마리가 기어 나왔다. 꼬투리로 유인하여 버렸다. IT 노동자 좌린 표현을 빌자면 "디버깅(debugging)" 하고 계심.

 

팥 농사가 특별히 재미있는 이유는
해마다 씨나 모종을 사지 않고
직접 거둔 팥을 심어서 다시 거두는 자연의 순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
종자마저 일회용이 된 요즘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이 참 신통하다!

 

팥을 남비에 넣고 부르르 끓여 설탕을 넣고 팥 앙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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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랜만에 찐빵!

 

우리밀 중에서도 통밀

유기농 설탕 중에서도 공정무역 설탕

그리고 주인공은 우리가 직접 길러낸, 텃밭의 주인공, 팔팔한 팥!

 

더 없이 착하고 윤리적인 찐빵을 쪄내며 행복에 겨웠으나

"엄마는 왜 맨날 몸에 좋은 것만 먹으래? 몸에 나쁜 것도 좀 먹자~"

아이들에게 외면 당하고

밀가루 포비아,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하여

조금 슬퍼진 찐빵

 

그래도

말랑말랑

보들보들

달콤한

찐빵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는 찐빵, 특히 팥 앙금 들어간 찐빵을 안 좋아했다. 어른들이 팥 찐빵을 그리 좋아하며 권하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는데

찬바람 부니 따끈따끈한 찐빵 생각이 나는게, 달달한 팥앙금의 맛을 알아가는게

혹시,

나이 먹고 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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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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