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4099501_20140924.JPG » 먹음직스러운 무싹 솎음과 밥, 그리고 된장

숨쉬는 제철 밥상

어머님 생신날, 시댁 마당에 불을 피우고 쇠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하나둘 집안 식구들이 오셔서 쇠고기 숯불구이보다 먼저 찾는 게 있다. 밥상 위 무싹 솎음을 보더니 “된장 끓여놨어?” 커다란 대접에 무싹 넣고 따끈한 밥 얹는다. 여기에 탑탑하게 끓인 된장 두어 숟갈, 고추장 한 숟갈에 참기름 한방울 또르르 넣고 쓱쓱 비벼 먹는 어머니 집밥. 이걸 먹고 나야 어머니 집에 온 실감이 나나 보다. 어머니 집밥이 쇠고기 숯불구이보다 세구나!

이걸 보면서 내가 쓰는 이야기는 결국 ‘집밥 이야기’라는 걸 새삼 느낀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특별히 소문난 사람도 아니다. 시골 살다 보니 그날그날 자연에서 얻은 걸로 식구들 먹을 밥상을 차리는 시골 아줌마다. 하다 보면 잘되는 날도 있지만, 간도 제대로 못 맞추는 날도 있다. 바로 그게 집밥 아닐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물 흐르듯 차려야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 때론 밥상이 초라해도, 또는 맛이 좀 없어도 식구들끼리 나눠 먹다 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집밥!

보통 음식에 관한 글이나 만화를 보면 음식점 이야기가 많다. 남다른 솜씨를 가진 분이 만드는 대단한 음식들이 줄줄이…. 그 맛집을 찾아가 먹을 때는 맛있지만 돌아서 속이 거북할 때도 있고, 한두끼는 맛있지만 연달아 먹으려면 질린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집밥이 최고다. 찬밥에 김치라도 내 입맛에 맞춰 먹을 수 있다. 날이면 날마다 밥해 먹으려면 귀찮기도 하고, 해 먹을 게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집밥에서는 내가 주인이 아닌가.

어머님도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돌아와 배고픈 식구들을 위해 밥을 앉히고 된장뚝배기 얹고, 밭에서 솎아온 푸성귀 씻어 밥상을 차리셨겠지. 손쉬운 밥상이면서도 제철 푸성귀로 차린 영양식이다. 음식점 밥상과 달리 쌀 한톨에서부터 참기름 한방울까지 다 손수 농사지어 얻은 먹을거리다.

이날 된장은 내가 끓였는데 내 살림이 아니니 어설펐다. 뚝배기에 쌀뜨물이 좋겠지만, 그게 없어 냄비에 맹물을 넣고 끓여야 했다. 게다가 국물 맛내기 대표 선수인 다시마도 떨어졌단다. 순간 당황했다. 그만둘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가 바로 집밥 아닌가. 부엌을 둘러보니 버섯과 북어 대가리, 쓰다 남은 무와 양파 쪼가리가 있다. 이걸 넣고 푹 우리며 건더기 거리를 찾았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가을 애호박이 눈에 띈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돈다. 그 곁에 대파도 다시 싱싱해지고 있다.

국물이 푹 우러나 건질 건 건지고, 애호박을 큼직큼직하게 저며 넣고 대파도 넉넉히 썰어 넣고 입맛 확 돋우라고 청양고추도 두어개 썰어 넣는다. 호박이 익어가며 채소의 단내가 풍기기 시작해 냄새만 맡아도 입안에 침이 돈다. 마지막에 된장을 푼다. 비벼 먹을 거니 좀 진하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르르 끓으면 끝. 이다음 우리 아이들에게 내 집밥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궁금하구나.

장영란 무주 농부, <숨쉬는 양념 밥상> 저자 www.nat-cal.net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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