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0961920_00513462301_20140918.JPG » 현산 스님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만든 천황사의 가을밥상.

[매거진 esc] 요리
사찰음식의 숨은 고수 전북 진안 천황사 현산스님이 이웃들과 함께 차려낸 제철 사찰음식

꼭 10년 만이다. 요즘 속도라면 강산이 두번은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다. 전북 진안군에 위치한 천황사는 지난 10년간 인적이 드문 절이었다. 스님 한분이 머물면서 석가탄신일에만 불자들에게 개방하고 평일에는 문을 닫았다. 올해 3월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절 지킴이 진돗개 금강이는 컹컹 짖는 일이 많아져 신난다. 일흔이 넘은, 인근의 수암마을 이장은 수시로 불려 올라가는 일이 언짢지 않다. 오십이 넘은 나종숙(54)씨가 부르는 “오빠”란 호칭에 맥없이 넘어가 절 마당에 똬리를 튼 뱀을 잡아준다. 서울에서 현산 스님이 주지 스님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절은 평소에도 개방하면서 활기를 찾았다. 나씨는 스님을 따라 함께 내려온 불자다. “키 큰 나무의 가지가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쭉 늘어져 손이 닿을 정도였어요.” 현산 스님과 함께 내려온 행자(예비 스님)가 천황사에서 느낀 첫인상이다. 들머리의 우렁차게 들어선 나무를 올려다보니 하늘은 차곡차곡 잘 접은 오므라이스 꼴이다.

현산 스님은 서울 성북구의 작은 절 정각사에서만 22년을 보낸 비구니다. 23살에 출가해 쭉 정각사의 주지 스님인 광우 스님을 모시며 살았다. 공양간(절 부엌)은 현산 스님의 가장 바쁜 일터였다.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들은 현산 스님을 두고 사찰음식의 숨은 고수라고 입을 모은다. 사찰음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도, 요리 강좌를 운영하지도 않았다. 그저 20년 넘게 공양간을 진득하게 지킨 게 전부다. ‘1만시간의 법칙’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다. “광우 스님께 모든 걸 배웠죠. 찾아온 불자들에게 정성껏 음식을 낸 것밖에 없어요.” 주변의 평가에 그는 겸손하다. 정각사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불자들과 스님의 소박한 밥상 파티가 열렸었다. 싱크대 한 줄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부엌에서 어깨를 부딪치면서 나물을 무치고 된장을 풀었다. 모서리가 해진 낡은 상에 둘러앉아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며 밥을 먹었다. 경전도 읽었다. 그들은 정각사의 ‘불탑회’ 회원들로 40~60대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었다. 갱년기 우울증이 찾아왔거나 위궤양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갑상선암이 발병한 이도 있었다. 단아한 스님의 음식은 치유의 도구로 활용됐다. 조리 과정 자체가 수행이고 웃음이 만발한 식탁은 치료제였다. 회원들은 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화가 나서 만든 음식은 독입니다.” 현산 스님의 가르침을 따랐다. 도도할 만큼 정갈한 음식이었다.

한번 맺은 인연은 칡덩굴처럼 엉켜 이어진다. 불탑회 회원이었던 나종숙씨는 아예 스님을 따라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스님 계신 곳에서 봉사하면서 살고 싶어요.” 나씨는 현산 스님의 사찰음식 수제자다. 불탑회 회원들 대부분이 제자다. 인간의 고통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자기만의 것이라고는 하나 그는 2005년 현산 스님을 만나 갑상선암도 치유하고 건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나씨의 아들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좋아 천황사행을 반대했던 부친을 설득했다.

지난 12일 천황사에는 가을 계절밥상이 떡하니 차려졌다. 윤귀안(55)씨, 임순예(64)씨도 나씨처럼 맛깔스러운 음식을 나르기 바쁘다. 윤씨나 임씨도 불탑회 회원으로 현산 스님의 사찰음식 제자다. 회원들은 많게는 일주일에 1~2번, 적게는 한달에 2~3번 천황사를 찾는다. 차로 2~3시간 거리다. 윤씨는 “스님이 그리워서 이곳에 온다”고 말한다.

찐 호박잎 사이에 들어간 송이 
죽염, 꿀과 어우러진 삼 무침 
가을 햇살 듬뿍 받은 고추 등 
자연을 음미하는 깊은 맛 가득

현산 스님과 협동해 만든 이들의 계절밥상은 가을 천황사를 욕심 없는 지상의 천국으로 만든다. “가지가 잎이 잘 달렸더라고요. 지져봤는데 어떠신가?” 임씨가 가지잎전을 선보인다. ‘공수래공수거’의 맛이 이런 게 아닐까! 빈손으로 간다고 허탈하지 않다. 송이버섯을 얇게 잘라 찐 호박잎 사이에 넣었다. 천상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제철 맞은 가지는 아삭하게 조렸다. 양념에 점령당해 축축 늘어지지 않아 씹는 이가 즐겁다. 쪽쪽 찢은 새송이버섯이 혓바닥에 감긴다. 산삼의 주산지답게 밥상에는 삼 무침이 빠지지 않는다. 삼 특유의 향이 꿀, 죽염과 어울려 논다. 스승만한 제자가 없다고 했다. 현산 스님의 손을 거친 삼 무침은 예사롭지 않다. 누런 된장은 보리를 발효시켜 콩과 섞어 담근 것이다. “아직 장을 담그지 못했어요. 올가을에 담가야죠. 이 된장은 마을 할머니 된장입니다.” 윤씨가 말한다. 가을 햇살을 듬뿍 받은 고추는 굵다. 6년 된 도라지로 무친 나물도 맛깔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삼 무침에 있는 꽃버섯 맛 좀 보세요.” 현산 스님이 삼을 파헤쳐 손톱만한 꽃버섯을 건져준다. 식탁의 식재료는 모두 전주에 거주하는 불자 채보경(49)씨가 구해다 준 것이다. 채씨는 그저 산이 좋아 20여년 넘게 진안 일대의 산을 탄 주부다. 현산 스님과 식재료로 새 인연을 맺었다. 스님은 “거의 매일 뭔가 자루에 담아 가져다준다”면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채씨에게 한다. 채씨는 “나 혼자 힘들어도 여러 사람 나눠 먹으니 좋잖아요”라고 한다.

00513460201_20140918.JPG » 현산 스님.

천황사 계절밥상은 애써 맛있다고 호들갑 떨거나 떠벌릴 필요가 없다. 산사의 밥상은 침묵 속에 자연을 음미하는 것이다. 공양식은 손님방에 머무는 불자들의 아침밥상으로 제공된다. 종종 인근에 사는 이들이 단체로 점심 공양식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8월29일에는 중년의 불자 39명이 소풍차 절을 찾아 스님들과 제자들이 정성껏 만든 사찰뷔페식을 먹고 갔다.

천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작은 절이지만 소박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들머리의 부도나 800년이 넘은 전나무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구봉산 자락의 바람을 부른다. 천황사 남쪽 산 중턱에 위치한 400여년이 된 전나무도 볼거리다. 천황사 정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해우소를 지나 울창한 숲을 지나면 앞에 우직하게 서 있는 전나무를 만난다. 현재까지 알려진 한국의 전나무 중에서는 가장 크다. 전나무로는 처음으로 200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높이가 35m, 둘레가 5.7m인 전나무는 구봉산 일대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현산 스님은 “음식을 만드는 자신을 스스로 잘 관찰해야 한다”면서 만드는 과정도 먹는 순간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면 그게 치유입니다.”

진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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