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9618201_20140724.JPG » ‘예진이네’ 만둣국.

[매거진 esc] 요리
묵은지 대신 아삭아삭 풋김치 식감 별미인 원주 중앙시민전통시장의 만두골목 기행

휴가철이다. 산으로 바다로 떠날 준비가 한창이다. 바쁜 여행길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여행지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에는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가 있다. 작은 소읍의 재래시장이라도 독특한 그 동네만의 맛이 살아 있다. 강원도의 여러 곳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인 원주도 마찬가지다. 강원도로 여행코스를 잡은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러 볼 만한 재래시장이 여러 군데 있다. 중앙동에 위치한 자유시장, 중앙시민전통시장, 중앙시장과 남부시장, 풍물시장, 문막시장 등 대략 7개의 재래시장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 중앙시민전통시장의 만두골목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맛으로 강원도에서 유명하다.

원주 사람들이 옛날부터 
빚어 먹던 만둣국 
풋배추김치가 주재료 
3000~4000원대 가격에 
동네 사람들도 북적

지난 4일 아치형으로 만든 시장 간판을 지나자 ‘예진이네’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딸 이름이 예진이랍니다.” 주인 신옥자(47)씨가 정겹게 말한다. 얇은 밀가루 피에 각종 채소와 고기를 으깨 넣어 익히는 음식이 만두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만두(생선살을 포 떠서 만두피로 빚은 만두), 굴림만두(만두피 없이 속재료를 밀가루에 굴려 익히는 만두), 미만두(규아상. 표고버섯, 쇠고기 등이 들어가는, 여름에 먹는 찐만두), 편수(네모모양의 여름날 먹는 만두) 등 이름도 생소한 만두를 즐겨 먹었으나 지금 시장통 만두 하면 ‘고기만두’, ‘김치만두’ 2가지가 대표선수다. 하지만 어째 예진이네에서는 고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차림표에 고기만두는 없다. “우리 동네 만두, 강원도에서는 유명한데, 다른 데와 달라요. 풋배추를 소금에 절인 후에 갖은 양념을 묻혀 만든 김치가 속 재료죠.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 먹었어요. 가난해서 고기만두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신씨가 말한다. 예진이네는 1998년 신씨의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신씨의 어머니 김용옥(80)씨는 본래 시장통에서 채소장사를 했다. 90년대 말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채소가 잘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김씨는 고육지책으로 집에서 해먹던 만두를 메뉴로 한 음식점을 열었다. “재래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은 주로 옛날 음식을 찾아요. 우리 만두골목이 유명해진 이유죠.” 중앙시민전통시장의 만두골목에서는 원주 사람들이 옛날부터 해먹던 식으로 빚은 만두를 판다. 풋배추김치가 만두소의 기본 재료다. 고기는 안 들어간다. ‘만두’란 이름의 기원이 된 제갈공명의 일화에는 양과 돼지고기를 밀가루 반죽에 싸서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원주식은 사뭇 다르다. 익었을 때 채소 특유의 식감이 살아 있다. ‘원주김치만두’의 주인인 권태중(57)씨도 “어머니 방식 그대로 만듭니다. 묵은지 안 쓰고 생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하루 숙성시킨 다음 김치 양념을 버무려요. 그게 주재료입니다. 당면, 부추, 두부 등은 기본으로 들어가고요”라고 말한다. 이 골목에서 예진이네만 5년 전부터 맛의 변화를 줬다. 다른 집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였다. 20일 이상 숙성한 푹 익은, 담근 김치를 속 재료로 쓴다. “얼큰한 맛을 더 내려고 했어요.” 예진이네 만두는 손가락 4개를 붙인 정도로 크다. 먹음직스럽다. 만둣국에는 김과 깨, 파가 수북이 올라간다. 재래시장 인심이다. “만두피도 직접 만들어요.” 만두골목의 가게들 대부분이 피를 직접 빚는다. 예진이네 만둣국의 가격은 4000원.


 00509619201_20140724.JPG » ‘봉평메밀막국수’의 메밀만둣국. 토속적인 맛이 매력적이다.
 00509618701_20140724.JPG » 중앙시민전통시장의 만두골목.


예진이네 주변으로 만두집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이모네만두’, ‘할머니만두’, ‘봉평메밀막국수’, ‘원주김치만두’, ‘나래분식’, ‘용길칼국수’ 등.

건물 역사로 따지자면 가장 오래된 집은 ‘할머니만두’다. 가게는 옛 모습 그대로 허름하다. 50년이 넘는다고 한다. 시장이 제대로 꼴을 갖추고 정식 개장한 86년 이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년 전 ‘할머니만두’를 인수한 김계숙(55)씨가 맡아서 운영한다. 김씨는 인근에서 만두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6형제가 똘똘 뭉쳐 만둣국 한 그릇을 1700원에 팔곤 했다. 24년간 하던 노점을 정리하고 ‘할머니만두’를 인수했다. “옛날 노점 때 단골들이 일부러 찾아온답니다.” 만둣국 가격은 4000원, 예진이네와 같다. 풋배추김치가 역시 속 재료다.

‘이모네만두’에는 수업을 마친 고등학생들로 시끌벅적하다. 인심 좋은 ‘이모’들이 가게 앞에서 만두를 빚고 찐다. 예진이네보다 크기가 반절이지만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앙증맞아 눈길이 간다. 도톰한 모양새가 마치 송편 같다. 떡만둣국, 김치만둣국, 칼만두, 손칼국수 등, 메뉴가 다채롭다. 모두 4000원이다.


 00509618601_20140724.JPG » ‘이모네만두’의 도톰한 만두.
 00509618301_20140724.JPG » ‘예진이네’ 만두는 시장의 다른 만두집과 달리 20일 이상 숙성시킨 김치를 속 재료로 쓴다.

이 골목에는 사연을 듬뿍 담은 만두집도 있다. ‘원주김치만두’의 주인 권태중씨와 아내 김선녀(57)씨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장애를 극복하고 만두집을 일궜다. 24년째 한자리에서 만두를 빚는다. 권씨는 어린 시절 화전민이었던 부친을 따라 산에 갔다가 뱀에 물렸다. 된장이 독을 빼는 데 최고라는 소리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덕지덕지 바른 된장은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아내는 어릴 때 손을 다쳤다. 맞선 자리에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세상 풍파를 헤쳐나가기로 했다. 몇 번의 좌절 끝에 어머니의 권유로 1990년에 ‘원주김치만두’를 열었다. 지금은 두 아들이 이어받아 경영할 정도로 키웠다. 열심히 인생을 산 결과였다. 손이 불편한 아내가 만두 빚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주 잘 만들어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만둣국은 3500원. 다른 곳들보다 500원 싸다.

내로라하는 사연과 역사를 가진 만두집들 사이에서 1년 전부터 ‘시커먼’ 만두로 승부하는 이도 있다. ‘봉평메밀막국수’의 사장 권승국(57)씨다. 메밀가루가 만두피다. 물론 밀가루가 조금 섞였지만 메밀가루가 주재료다. 메밀만둣국에는 다시마와 갖은 채소로 우린 육수에 흑갈색의 통통한 메밀만두가 묵직하게 담겨 있다. 김과 깨가 듬뿍 올라간 점은 다른 곳과 같다. 권씨는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막국수도 삶는다. 메밀만둣국 4500원.

낯설어 보이나 메밀만두는 일찌감치 우리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다. 17세기에 쓰여진 <음식디미방>에는 ‘모밀가루’(메밀가루)로 피를 만들고 무와 꿩고기를 소로 한다는 요리법이 기록돼 있다.

최근에 리모델링해 새롭게 단장한 자유시장 순대골목도 여행객을 기다린다. 70~80년대 강원도에서는 명성이 자자했던 골목이다. 순대 도소매업자들이 찾던 시장이었다. 세월 따라 먹거리가 풍성해지자 쇠퇴의 길에 들어섰던 순대골목은 다시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지난 5월 깨끗하게 변신했다.

원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7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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