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9551201_20140723.JPG

숨쉬는 제철밥상

도시의 휴가철이 시골에는 손님맞이 철이다. 손님들은 한손에 고기, 다른 한손에 술을 들고 와서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는 걸 좋아한다. 한번은 저녁에 동네 길을 산책하는데, 집집이 고기 굽는 내음이 진동하더라.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는 시대이니 복날만이라도 채식을 하자는 <한겨레> 기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고기가 아닌 복 음식이라? 복 음식 하면 이열치열인 뜨거운 국물이 떠오르는데…. 자주 해 먹는 된장국 말고 뭐 다른 건 없을까? 궁리 끝에 새로운 메뉴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채소 곰국’이라 이름부터 지어놓고.

첫 실험으로 감자, 당근, 양배추에 토마토를 넣고 푹 고았다. 감자수프가 되다 만 그런 맛이다. 시골로 와서 이렇게 정체 모를 음식을 많이 했더랬지! 그러면서 재료 하나하나를 알아가고 손에 익혔는데. 그렇다 해도 국은 멸치국물에, 김치는 젓갈에. 채소만으로 맛을 낼 줄은 몰랐구나.

다음에는 감자를 빼고 끓여보기로 했다. 밭을 돌며 가지, 애호박, 양배추, 앉은뱅이강낭콩, 토마토를 거두었다. 채식 국물 맛은 다시마와 표고버섯으로 내는데 표고버섯을 빼려니 어렵다. 왜 표고버섯을? 표고버섯이 성장 과정이나 건조 과정에서 세슘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방사능 검사에 걸리곤 한단다. 일일이 방사능 검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변 많은 이들이 표고버섯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 아이를 낳고 싶은 젊은이들이. 표고버섯 대신 대추를 넣고 채소 곰국을 끓었지만 이것도 아니다. 밑국물 삼아 전골이건 샤브샤브건 끓이면 딱 좋겠다.

거듭 실패하니 막막하다. 채식을 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복날 뭐 드시나요? 채식하는 이들은 복날을 안 따진단다. 굳이 찾아 먹는 사람은 콩국수를 따뜻하게 해 먹는단다. 이 대목에서 좀 실망이다. 복 음식이라고 뭔가 특별한 걸 찾았는데, 여름이면 늘 먹는 콩국수라니….

전화 통화를 듣던 아들이 콩국수 좋단다. 내가 또 뭔 정체 모를 음식을 만들지 겁났나! 까짓것 콩국수 해 먹자. 복 보양식이니 차게 먹는 건 안 좋겠지. 콩 1컵에 물을 3컵 넣고 팔팔 끓기 시작해 5분. 불을 끄고 뚜껑을 닫고 1시간 기다렸다.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는 콩과 콩 국물에 깨소금을 넣고 간다. 처음에는 국물을 적게 잡고 짧게 갈고 잠시 쉬었다 다시 갈면서 국물을 보충하다가 마지막으로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여기에 국수를 말아 먹으니 우리 몸 온도와 비슷하다. 콩국을 먹으니 몸이 편안하다. 그 편안한 몸으로 생각하니, 복 음식은 더운 여름을 잘 이겨내라고 먹는 양기 보충 음식이다. 양기를 북돋는 데 가장 손쉬운 건 고기겠지만, 곡식도 좋다. 그래서 복날 콩국수나 팥죽을 먹는가. 돌고 돌았지만 답은 이렇게 가까운 데 있었다.

글·사진 장영란 무주 농부, <숨쉬는 양념 밥상> 저자 odong174@hanmial.net

(*한겨레 신문 2014년 7월 23일자)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103 [요리] [숨쉬는 제철 밥상] 없으면 없는대로 차려 먹는 ‘집밥’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9-24 3909
102 [요리] 스텐 후라이팬에 달걀 후라이 성공~ imagefile [4] 푸르메 2014-09-22 6545
101 [요리] 가을 하늘 머금은 산사의 계절밥상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9-18 5548
100 [요리] 옥수수국수는 별미 간식, 속 꽉 찬 오징어순대는 안주로 딱!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9-11 7304
99 [요리] 오늘은 내가 불닭게티 요리사~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8-14 12118
98 [요리] 바비큐보다 더 특별한 아빠표 캠핑요리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31 5471
97 [요리] 사카린 진짜 먹어도 되나요?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31 3944
96 [요리] 뜨끈뜨끈 시장통 만둣국 한그릇이면 여행 피로가 싹~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24 4360
» [요리] [숨쉬는 제철밥상] 고기 아닌 복날 음식 ‘따뜻한 콩국수’ imagefile [1] 베이비트리 2014-07-23 3639
94 [요리] 만원 한장이면 맥주에서 안주까지 오케이!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17 7105
93 [요리] 양파 그냥 드립니다 베이비트리 2014-07-14 3716
92 [요리] [숨쉬는 제철밥상] 감자를 가장 맛있게 삶는 법 imagefile [1] 베이비트리 2014-07-09 5256
91 [요리] [궁금증 톡] 육우는 한우보다 맛이 떨어진다?!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07 3390
90 [요리] 장마철 저녁, 뜨근한 콩나물국밥 어떠세요~ imagefile [1] 안정숙 2014-07-04 3221
89 [요리] 눈물 쏙 콧물 쑥 머리엔 김이 나도 군침 꿀꺽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03 3430
88 [요리] [내가 가본 맛집2] 여의도 국수집 진주집 image [2] 양선아 2014-06-17 6891
87 [요리] 국수 좋아하세요? [2] 양선아 2014-06-13 4829
86 [요리] 패밀리레스토랑 어느 곳이 좋을까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6-11 8040
85 [요리] 수박에 혹시 설탕물 주사하나 ?! imagefile [2] 베이비트리 2014-06-11 6217
84 [요리] 배워봅시다 식당 예절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4-17 3975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