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사람] ‘언니네텃밭’ 윤정원 사무장

3일 관악구 한 카페에서 윤정원 언니네텃밭 사무장이 꾸러미 사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언니네텃밭 제공
“‘꾸러미’에는 소비자 10명이 생산자 1명의 생활을 책임지고 반대로 생산자 1명은 소비자 10명의 건강한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상품’을 사고 파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관계’라는 것을 알아나갔으면 합니다.”

3일 관악구 ‘언니네텃밭’ 사무실 근처에서 만난 윤정원(44) 사무장은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매달 일정 금액을 내고 생산자가 구성한 물품을 정기적으로 받는 서비스)라는 새 마케팅 트렌드 중 하나로 ‘세련되게’ 언급되며 성장 중인 ‘제철 채소 꾸러미’ 사업의 ‘본래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텃밭에서 생산한 제철 채소를 1~2주에 1번씩 정기적으로 회원에게 배송해주는 언니네텃밭 ‘꾸러미’는 2009년 시작됐다. 식량주권을 지키고 여성농민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던 중 나온 아이디어였다. 수확기에 돈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기존 판매 방식과는 달리, 직거래 꾸러미는 정기적인 ‘급여’를 통해 농민들의 안정적 생활을 지원한다. 2009년 횡성 공동체(생산자 10여명), 한 주에 꾸러미 21개를 배송하는 것으로 시작된 꾸러미 사업은, 현재 16개 공동체(생산자 140여명), 소비자 회원 2000여명, 한달 배송 꾸러미 4500개로 성장했다.

윤 사무장은 71년 전남 장흥의 농가에서 태어나, 2009년 언니네텃밭 일을 도맡아하기 전까지 순천에서 쭉 농사를 지었다. 집에서는 대학 나온 딸에게 안정적인 공무원의 길을 권했지만, 윤 사무장은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도 ‘먹을 게 없으면 노예’다. 농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농민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꾸러미를 반드시 ‘텃밭’에서 ‘여성농민’이 ‘다품종·생태농업’으로 꾸려야 하는 것은 아닌데도, 언니네텃밭이 이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윤 사무장은 “‘텃밭’은 ‘여성농민’의 주체성이 발휘되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했다. “어떤 작물을 키울지, 친환경으로 할 지 등 농가의 모든 결정에서 여성의 의견은 대개 반영이 안 돼요. ‘텃밭’ 정도가 뜻대로 할 수 있는 곳이죠.” 꾸러미 사업에 참여하는 여성농민 공동체는 심을 작물의 종류부터 각 작물의 값과 분배원칙까지 스스로 정한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생산자들이 한 데 모여 생태농업 공부도 한창이라고 한다. 꾸러미를 통한 월 100만원 가량의 고정수입으로 경제적 자립도도 높아졌다.

다품종·생태 순환 농업을 추구하는 것도, 소비 추세에 따라 ‘프리미엄 유기농 식품’을 팔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려는 절실함에서 나왔다”는 게 윤 사무장의 설명이다. “대규모 단일작물 재배가 농업 산업화의 기본이라고 하지만, 종자대·전용 비료·농약·농기계까지 사고나면 농민은 남는 게 없어요. 가격 폭락·폭등에 해마다 휘둘리고, 땅도 망치죠. 땅이 망가지면 비료를 더 투입해야 하니 악순환이에요. 다품종 생태 농업은 당근처럼 향이 강한 채소를 함께 심으면 배추에 벌레가 덜 생기는 식으로 병충해를 막아, 비용을 차차 줄입니다. 모든 농지를 한 번에 바꿀 순 없으니, 텃밭에서부터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는 구조로 바꿔나가려 해요.”

꾸러미에 담긴 시금치를 못 알아보고 어떻게 요리하는지 문의할 정도로 다음어 포장된 채소에만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들을 끌어안는 것은 언니네텃밭의 과제다. 꾸러미마다 생산자가 직접 작물에 대해 설명하는 편지를 쓰고, 요리법을 안내하고, 생산지 방문을 통해 소비자 회원을 독려한다. “소비자들도 제철 채소로 식단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생산자들도 생태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기존 방식을 버리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살아갔으면 합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위 내용은 2015년 3월 10일자 한겨레신문 지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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