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6157401_20141023.JPG » ‘장터’의 게살비빔밥백반

[매거진 esc] 1번국도
소박한 1번국도 여행과 어울리는 소담한 최고의 시골밥상 

“밥, 아즉이여. 사먹지, 누가 요새 새참 머리 이고 와. (방송에 나오는 거) 다 거짓부렁이여. 안팎(아내와 남편)이 다 (돈) 벌나가, 농촌 다 사먹어. 어딜 갈겨. 저 집이 반찬이 좋아.” 볏짚을 쌓아 올리는 농부 박양서(70)씨가 세상 물정 모르는 여행자에게 한소리를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감성리 마을은 1번 국도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다. 1940년대에 문 연 감성초교는 동화 속 집 같고, 마을 들머리부터 펼쳐지는 신작로는 아름드리 낙엽송이 거인처럼 높다. 옆으로는 황금빛 벼들이 춤춘다. 박씨가 추천하는 맛집은 ‘학마을식당’이다. 이 마을에는 식당이 3곳 있다. 도시인의 눈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건만 주민들의 평가는 다 다르다. 오전 11시께부터 손님이 가득한 곳은 ‘감성식당’이다. 30여년 역사를 가진,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감성식당은 본래 감성초교 교사들의 구내식당 같은 곳이었다. “그 양반들이 점심만 해달라고, 해달라고 졸라 시작했지.” 주인 오진순(79)씨가 말한다. 시골밥상이다. 1번국도 맛 여행은 푸짐한 우리 시골밥상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차진 손맛과 구수한 인심으로 차린 백반집을 찾아 떠났다.

00516160101_20141023.JPG » ‘백학정’의 떡갈비백반.
“돈불정식이 들불처럼 일어났어요.” 서울가든호텔,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등에서 일했던 김중구(54)씨는 정미소와 수박 농사 등을 하다가 실패를 맛보고 다시 칼을 잡았다. 7년 전 건양대 앞 신촌사거리에 ‘진수성찬’을 열면서부터 살림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서울처럼 이곳 신촌사거리도 젊은이들의 거리다. 3년 전에 1번 국도 근처의 논산시 은진면 와야리로 옮겼다. 돼지고기 목살과 앞다리살을 즉석에서 굽고 갖은 양념을 발라 뚝배기에 담은 돈불정식이 대학생들의 혀를 사로잡았다.

세겹수육과 묵은지, 곰취장아찌에 
푸짐한 양은냄비 국수 성찬 
식도락가 발길 붙잡는 쑥국 
8000원 청국장 백반에 
밑반찬만 20개 넘네

00516169501_20141023.JPG » ‘갈비백반’의 백반.
때로 길은 이어지다가 끊어지기도 하고 다른 길을 만나기도 한다. 1번 국도를 타고 충남 공주시 반포면을 향하다 보면 32번 국도를 만난다. 이 길로 5분 정도 빠져나오면 인근에 유명한 ‘갈비백반’이 있다. 주인 김동숙(46)씨가 공주시에서 이름난 손맛 장인과 손잡고 시내가 아닌 국도변에 숯불고기 백반집을 열었다. “국도는 손님 저축이 돼요. 올해 오고 이듬해 또 오시고 또 오셔요. 끼니때를 지나도 손님이 많죠.”

00516168201_20141023.JPG » ‘예촌’의 웃기는 짬뽕.
1번 국도 맛 여행의 백미는 미식의 도시가 줄지은 전라도다. 전주, 광주, 나주로 이어지는 1번 국도에는 풍요로운 평야가 펼쳐진다. “이름 좀 제발 바꾸면 안 되냐”는 공무원들의 강한 항의에 상호를 ‘예촌’으로 바꾼 곳이 있다. 영농조합법인 맛남 대표 박태순(53)씨의 식당은 전북 김제시 금구면 면사무소 앞에 위치한데다 이름까지 ‘면사무소’였다. 식당을 찾는 이들이 죄다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었다. 예촌은 근현대사 박물관 같다. 낡은 풍금, 라디오와 오래된 간장병, 빛바랜 사진 등을 둘러보는 데만도 시간이 후딱 간다. 예촌 정찬은 세겹수육과 묵은지, 곰취장아찌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둘이 먹기에도 많은 양은냄비 국수가 따라 나온다. 차림표에는 자랑스럽게 ‘1988년에 처음 문 열었는디요, 안즉꺼정 한 번도 미원 같은 거 넣어 본 적이 없당게요’라고 적혀 있다. 정말 안 넣는 걸까? “뭐더러 넣어요, 안 넣어도 맛이 난당게요. 우덜집은 멸치국물이 조미료랑게. 나물도 볶다가 참기름, 들기름 넣으면 되는디.” 아내 이순임(53)씨 말이다. 박태순씨는 이름과 표어 작명의 달인이다. 그가 맛과 인연을 맺은 것은 리비아에서였다. 1985년부터 2년간 대우건설 공사 현장의 요리사였다. “간부식당이 내 책임이었재. 김우중 회장 국수도 삶아봤어.” 양고기로 스테이크를 굽고 교민들이 키운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갔다. 그는 요즘 새 메뉴 ‘웃기는 짬뽕’에 심혈을 기울인다. 전국에 유명한 짬뽕집은 다 다녀봤다고 한다. “고추기름도 아니고 고추맛 기름 붓고 캡사이신 잔뜩 넣은 것들이 많더랑게.” 그의 짬뽕은 식용유, 생강, 양파 등을 볶아 기름을 내고 고명으로 홍합, 고사리, 연근, 유자묵, 클로렐라묵, 오미자묵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그래서 ‘웃기는 짬뽕’이랑게.” 해장에 좋아 ‘아침국’이라고도 그는 부른다. 그가 정읍시의 ‘충남집’을 꼭 한번 가보란다.

00516158701_20141023.JPG » ‘영란횟집’의 백반.
도시가 밤문화로 깨어나는 9시께면 지방 소읍은 깊은 잠에 빠진다. 한때 24시간 운영했던 충남집은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쑥국집이다. 팔순이 넘은 서금옥 할머니가 구수한 입담을 푼다. “정읍 질(길)이 엄청나. 도로 내고 지랄이여. 엄청 냈어.” 고향 충남을 떠나 44년간 운영하면서 친정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4일을 빼고는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식모살이하다 일수 빚 내 이 가게를 열었지.” 홀로 6남매를 키워낸 할머니는 전국에 팬이 많다. “할머니, 다음에 올 때도 건강하셔야 돼요.” 정읍에서 쑥국만 먹고 떠나기는 허전하다. 상다리 휘어지게 나오는 전라도 밥상을 찾아가본다.

00516159001_20141023.JPG » ‘보자기’의 곰보배추백반.
이른바 ‘1번국도 마을’이라고 불리는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쓸쓸한 바람이 골목에 휘몰아친다. 1번 국도의 전성시대에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제는 푸짐한 백반의 양대산맥인 ‘백학정’과 ‘대일정’이 그 자리를 지킨다. 차림표에는 두 집 다 떡갈비백반과 참게백반이 있지만 백학정은 떡갈비백반이, 대일정은 참게백반이 주력 메뉴다. 1978년도부터 한자리를 지킨 백학정. 김용문(78)씨가 열었으나 지금은 축구선수였던 아들 최이호(예명. 본명 최환호)씨와 며느리 강경운(50), 손자 민석(30)씨가 맡아 한다. “91년 작고한 시할머니부터 했으니 4대째지요.” 경운씨가 말한다. 백학정의 떡갈비는 쇠고기를 갈지 않고 다져서 만든다. 식감이 살아 있다. 그야말로 푸짐한 밥상이다. 1984년 백반을 1500원에 팔 때 4000원을 받았다. 고급음식이었다. 20여가지가 상다리 휘어지게 나온다. 떡갈비도 떡갈비지만 청국장이 일품이다. 청국장백반을 시켜도 나오는 반찬은 20여가지다. 바다에 가까운 하천이나 논두렁에 서식하는 참게는 <자산어보>(1814년에 정약전이 지은 어류학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친근한 먹거리다. 대일정도 오랜 역사를 가졌다. 1969년 한순이(72)씨가 문을 열었고 지금은 아들 조창희(42)씨가 맡아 한다. 파 등 갖은 양념에 파묻힌 보드라운 게살이 신기하기만 하다. 슴슴한 죽순무침은 담백한 시골마을 인심이다.

00516169101_20141023.JPG » ‘감성식당’의 백반.
정읍시에서 백양사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휘돌다 고픈 배를 채워주는 곳은 백양사 앞의 나물밥상집들이다. 정읍식당은 53년 전에 문을 열어 그 동네에서 제일 오래됐고, 콩줄기를 통째로 삶아 무친 반찬이 눈에 띈다. 간이 강하지 않다. 주인 정영희(44)씨는 말했다. “싱거운 음식은 재활용 못 해요. 섞으면 맛이 변하죠.” 26가지나 나오는 밥상을 향해 종종 의심에 찬 눈초리를 던지는 도시인들에게 들려주는 답변이다.

농부의 손길이 닿은 밥상은 없을까? 전남 담양군 대전면의 농가맛집 ‘보자기’를 만난 건 행운이다. 장성 나들목(IC)에서 대략 12㎞ 거리, 차로 1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2009년 농촌진흥청의 담양군 향토음식지원화사업으로 보자기가 탄생했다. 농부 부부 김재규(55), 최미경(47)씨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최근 몇 년 사이 항암효과가 크다고 알려진 곰보배추(뱀차즈기)가 무한 리필로 제공된다. 최씨는 지천에 널린 곰보배추로 곰보배추된장, 차 등을 개발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에 나서 곰보배추 전도사로 지역 언론에 여러번 출연했다. 그는 3가지를 지킨다. “인공조미료, 식용유와 밀가루를 쓰지 않아요.” 농업으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사랑방이다.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보자기 주최 곰보배추음악회가 열린다.

00516153801_20141023.JPG » ‘대일정’의 참게백반.
1번 국도의 출발지이자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한 전남 목포. 무안군에서 목포시로 향하는 1번 국도의 ‘지산식당’은 소박한 밥상집이다. 목포시의 ‘맛 좀 안다’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뭐 하요. 식으면 맛 없음갱, 빨리 드쇼.” 사진기에 매달리는 도시여행객에게 타박이다. 허름하기로 치자면 이만한 데가 있을까! 낡은 간판이 꾹 짜면 누런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70년대 공장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이성님(68)씨는 백반을 팔았다. 김치찌개와 생선조림까지 합쳐 19개 반찬이 나오는 백반은 시골동네 인심이다. 감태, 민물 새우, 죽순나물무침에 손이 자꾸 간다. 1번 국도의 마지막 도시, 목포는 맛집이 많기로 유명하다. 민어거리에 있는 ‘영란횟집’은 민어 껍질과 내장까지 맛볼 수 있다. ‘장터식당’은 게살비빔밥이 일품이다. 손으로 짠 게살이 빨간 양념을 만나 모양새가 흥건하다. 세종시에서 북쪽으로 뻗은 1번 국도의 유명한 식당은 경기 수원시의 ‘가보정갈비’와 평택시의 ‘고복수냉면’, 파주시의 ‘뇌조리국수집’ 등이 있다. 1번 국도의 마지막 자락 허사도에 이르자 막차를 떠나보낸 듯 아쉬움이 밀려온다.

141398534847_20141023.JPG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1번국도 맛집 정보

■ 감성식당: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감성리 58-2 / (041) 866-7466/ 백반 7000원
■ 갈비백반: 충남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16-2/ (041)354-1236/ 돼지갈비백반 1만2000원
■ 진수성찬: 충남 논산시 은진면 와야리 대학로 184/ (041)736-6795/ 돈불정식 7000원
■ 예촌: 전북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435-2/ (063)546-5586/ 예촌정찬 8000원, 웃기는 짬뽕 6000원
■ 충남집: 전북 정읍시 수성동 701/ (063)531-8482/ 해장쑥국 7000원
■ 백학정: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532/ (063)534-4290/ 떡갈비백반 2만8000원, 백반 8000원
■ 대일정: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483-5/ (063)534-4030/ 참게백반 1만7000원
■ 정읍식당: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52-7/ (061)392 -7427/ 8000원
■ 보자기: 전남 담양군 대전면 응용리 283-3/ (061)382-5525/ 우렁이쌈밥 8000원
■ 지산식당: 전남 무안군 삼향읍 지산리 876-6/ (061)281 -9928/ 백반 7000원
■ 장터식당: 전남 목포시 중동1가 1-17/ (061)244-8880/ 게살비빔밥 2인분 2만원
■ 영란횟집: 전남 목포시 중앙동1가 1-15/ (061)243-7311/ 민어회 4만5000원


1번 국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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