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치 시인이 끓인 콩나물국은 아삭거리는 식감이 일품이다.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버들치 시인이 끓인 콩나물국은 아삭거리는 식감이 일품이다.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매거진 esc] 에세이 /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
② 지리산 버들치 시인 박남준의 콩나물국밥
늘 무던하고 순하다고 본인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버들치 시인 곁에 있는 사람은 피곤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지난번에 그 집에 가니까 시인이 후배에게 잔소리를 하던 끝에 하는 말이, “거기서 비켜서. 네 그림자 때문에 꽃이 햇빛 못 받잖아” 이런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후배가 겸연쩍게 날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버들치 형은 가끔 나보다 꽃을 더 아껴요.”

그러자 옆에서 곰방대를 물고 앉았던 ‘내비도’(냅둬) 교주 최도사 형이 한마디 거들었다.

“가끔이 아니라 늘 그렇지.”

그런데 이번 방문에 그 최도사 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난번 호박찜을 할 때의 일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버들치 시인이 마늘을 까면서 호박을 하나 따와야 할 텐데 하고 혼잣말을 하자 슬그머니 일어선 최도사 형이 지붕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언제 저렇게 동작이 빨랐나 싶게 올라가더니 젊지도 늙지도 않은 호박을 세 개 따서 소쿠리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너무 고마워하지는 말라는 듯이 퉁명을 부리며 “지영아, 옜다, 이거 버들치 형 줘라” 하는 거였다. 그 순간 내 곁에 있던 버들치 시인의 얼굴이 그야말로 애호박처럼 파랗게 변하더니 이어 늙은 호박처럼 붉어졌다.

“누가 이거 따 오랬어? 애호박 따야지. 이거 추석 지나고 서리 맞게 해서 내가 떡 만들려고 애지중지 지붕에 고이 모셔둔 호박인데!!!”

버들치 시인의 노여움은 정말 컸다. 최도사의 거무튀튀한 얼굴도 창백해지며 회색으로 변했다.

“눈깔이 있어? 없어? 이노무 %^%&*# ~~” 나는 시인이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처음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호박 가지고 사람을, 싶어서 나도 좀 화가 나는데 최도사 형은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누구에게도 허리 굽히기 싫어서, 이 산골에 들어와 무소유를 자랑하며 사는 그가, 토지문학관 주차요원을 하다가 벤츠를 탄 아줌마에게 퉁명스레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도 전혀 기죽지 않던 그가, 이상하게 버들치 시인 앞에서는 늘 이랬다. 나이 차이가 한살, 정확히 7개월이라는데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버들치 시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벌써 그 호박으로 떡이 몇 말 나오고 벌써 이웃들과 아랫동네 노인들이 흐뭇하게 떡을 즐기다가 여생을 편히 보내고 돌아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버들치 시인이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자 내가 최도사 형을 꾹 찔렀다. 괜찮냐는 뜻이었다. 그러다 최도사가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내비도! …지 똥 굵다잖아!”

나는 가끔 최도사가 정말 도사 같을 때가 1년에 서너번 있는데 이때도 그랬다. 우리는 둘이서 킥킥 웃었다. 그런데 그 최도사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묻자 버들치 시인이 대답했다.

“최도사 지금 전국 집시 축제 때문에 강릉 갔어.”

“뭐? 무슨 무슨 축제?”

“전국 집시 축제! …말이 집시지, 그지(거지) 축제지 뭐. 최도사가 하동 대표로 매년 가잖아.”

참 내가 지리산 내 친구들이 재미나게 사는 줄은 진작 알았지만 이렇게 전국을 누비며 가지가지로 재밌게 사는 줄을 그때 알았다.

버들치 시인은 콩나물을 내밀며 좀 다듬으라고 했다. 나는 가을볕이 푸짐한 평상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었다. 버들치 시인은 내 옆으로 도마를 가지고 와 앉았다. 시인이 가져온 바구니 속에는 붉고 푸른 고추와 파 그리고 마늘이 담겨 있었다. 시인의 도마질 소리가 멈출 때마다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났다. 멀리서 산새가 울고 가끔 감나무 이파리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 아는 전주식 콩나물국이지만
씹는 맛이 완전히 다르다
포인트는 찬물에 담근 콩나물
그 아삭거리는 식감이다

한번은 지리산에 왔는데 그가 가까이 있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찾아가니 산세가 아름다운 동네였다. 그런데 어떤 집에서 난리 부르스가 벌어지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모 영화감독이 이 지리산에 새로 둥지를 틀게 되어 집들이를 한다는 거였다. 그 집들이가 이박삼일째 계속되고 있었던 거다. 내가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 사람들이 모두 다 제정신이 아니란 걸 알았다. 이박삼일 술을 마신 사람들 틈에서 맨정신의 사람이 얼마나 이상한 취급을 받는지 알 분들은 다 아시리라. 나는 술은 좋아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질색이라 그날 줄행랑을 쳤는데,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그분은 그 집들이가 끝나는 즉시 마을에서 바로 쫓겨났다 한다.

나는 콩나물을 까고 그는 도마질을 하고 바람은 달콤하기에 내가 물었다.

“형, 그 영화감독 쫓겨났다며? 그래서 어디로 갔어?”

버들치 시인은 여전히 그 느릿한 어투로 대답했다.

“응… 쫓겨났지, 집들이 끝나자마자. …그래서 그 형이 어디로 갔느냐면….”

나는 마음을 다졌다. 일전에 버들치 시인이 모 재벌그룹의 커다란 유조선을 타고 시인들과 함께 유럽을 가는데 배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그를 방문해 위로하며 그때 이야기를 듣는데 하룻밤이 다 가도록 불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다 모른다.) 옆에서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됐어? 불이 어디서 시작된 거야?” 하고 물으면 그는 “야아~, 가만 좀 있어봐. 이 이야기를 마저 다 들어야 불이 시작된 게 어떻게 됐는지 알게 돼” 하며 다시 느리게 이야기를 하다가 밤이 이슥해 듣던 사람들이 다 곯아떨어지도록 아직 불이 날 기미도 없어 다음날 누구도 다시는 불에 대해 묻지 않았던 유명한 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일만 그에게 묻곤 했다. 아니면 복장이 터져 그와 절교를 했으리라. 내 생각에 그가 그 집에서 쫓겨나는 데까지 들으면 오늘 우리의 메뉴인 콩나물국이 완성될 거 같았다. 버들치 시인이 말했다.

“그래서 거기서 쫓겨나가지구…, 그 감독이 에이… 참, 사람들 사는 데 더럽다. 나는 사람이 싫어! 이러면서 더 깊은 산골로 간다고…, 지리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폐가에 들어갔어. …어느 날 어떤 여자가 하룻밤 재워달라고 온 거야. 그래서 그 감독은 그 여자와 정분이 나서(이 오래된 단어라니!) 같이 살게 되었어. 그래서 그 여자가 사는 서울 시내 아파트로 이사 갔어.”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이렇게 스피디한 이야기 전개방식에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가 “왜 웃어?” 하고 물었는데 나는 계속 웃었다. “서울 아파트로 갔다고, 어떻게 안 웃겨?”

나는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그 모 영화감독님 행복하시길!!

버들치 시인의 콩나물국은 우리가 다 아는 그 전주식 콩나물국이지만 조금 다르다. 식감은 완전히 다르다. 먼저 큰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옆에 다른 냄비에 물을 조금만 끓인다. 물만 부은 냄비에 다듬은 콩나물을 넣어 한 김만 오르면 얼른 건져 찬물에 담근다. (여기에 별표를 세 개쯤 주고 싶다. 이것이 유명한 콩나물국밥집의 비결이라고 했다. 물은 아주 차가워야 한다. 나는 집에 와서 얼음을 썼다.) 그리고 끓인 육수에서 다시마와 멸치를 건져내고 집간장으로 간을 약간 슴슴하게 맞춘다.

붉은 고추, 푸른 고추, 파, 마늘을 곱게 다져 준비하고 김치도 아주 작게 송송 썰어 놓는다. 새우젓 약간과 고춧가루, 부순 김도 준비한다. 냉면기에 밥을 먼저 담고 콩나물을 그 위에 올린다. 푸른 고추와 붉은 고추, 파와 마늘, 김치 썰어 놓은 것, 새우젓과 김 가루를 구절판에 올리듯 둥그렇게 올리고 가운데 붉은 고춧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준비한 육수를 붓는다. …결론을 말하면, 나는 지금까지도 집에서 자주 이걸 해 먹는다. 아침에 눈뜨면 이 국밥이 생각난다. 잊지 마시라. 포인트는 찬물에 담근 콩나물이다. 그 아삭거리는 식감이다.

공지영 소설가


(*위 내용은 2015년 10월29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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