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시인 박남준이 차려 낸 소박한 식물성 밥상.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리산 시인 박남준이 차려 낸 소박한 식물성 밥상.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매거진 esc] 에세이
기막힌 요리 솜씨 지닌 지리산 시인 박남준…그가 차려준 소박하고 우아한 한 상을 받다
소설가 공지영이 하동 지리산 자락에 사는 박남준 시인 집을 찾아가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결국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나는 또 지리산으로 가고 말았다. 내가 쓴 책 <지리산 행복학교> 이후로 우리들은 좀 소원했었다. 지리산의 시인들은 심지어 최도사까지 돌연하고 끈질긴 방문객들에 의해 괴로움을 받고 있었다. 나 역시 나대로 한때 나 혼자만이 그 반짝이는 것을 알고 있었던 별에 ‘소유주 125B’라는 이름이라도 붙은 듯 공연히 지리산이 서운했고 멀게 느껴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또 거기로 갔을까? 글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나는 버들치 시인 박남준 그가 사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나는 그가 찻잔에 (가끔은 소주잔에) 언제나 매화 한 잎을 띄우는 거며(그러면 냉동실에 있던 새끼손톱만한 매화가 찻잔 속에서 순식간에 오므렸던 꽃잎을 펴고 피어난다), 그가 손으로 실을 엮어 매달아 놓은 크리스마스트리의 방울처럼 예쁜 곶감이며, 그의 집 부엌 겸 거실에 있는 돼지저금통(거기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저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북한 어린이들을 도울 거예요’) 같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세 칸짜리 누옥인 그의 집에서 그가 가난과 둘이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 풍성한 풍경을 말이다.

지리산에 드나드는 자칭 음유시인이고 타칭 목사인 어느 사람이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외모에 박남준의 요리 솜씨를 가진 여자라면 내 당장 결혼하겠소.”

솔직히 그런 여자가 왜 자기하고 결혼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박남준의 요리 솜씨는 먹어본 사람 모두가 엄지를 치켜세울 만큼 좋았다.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유는 입으로는 옆사람이 다 먹어치우기 전에 음식을 계속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린 고통·역경으로 성숙한다
그런데 호박도 그렇게 큰단 말인가
밭에서 따와 만든 초록색 호박찜
호박을 쪄봐야 호박이겠지 했는데
엄청난 품위를 품은 맛이다

지리산 시인 박남준.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리산 시인 박남준.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가 도착한 날은 초가을 햇살이 풍성한 날이었다. 마당에는 모싯빛의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소쿠리에는 꽃보다 붉은 고추가 마르고 있었다. 시인의 창 앞의 윈드차임은 여전히 우아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꽃무릇은 붉었다. 새로 뿌린 무는 성냥개비만한 싹이 돋았는데 시인은 무가 싹을 틔운 그 밭에 모기장을 쳐놓았다. 그렇다, 모기장 말이다. 아기들에게 쳐주는 그 모기장. 시인에게는 어쩌면 그 어린 무싹들이 아기들처럼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우선 밭에 가서 호박을 땄다. 우리가 조선호박이라고 부르는 아기 머리통처럼 동그랗고 윤기나는 애호박 말이다. 내가 물었다.

“이상하게 나는 호박을 못 키워. 매년 호박이 안돼.”

그러자 호박을 따서 씻던 시인이 무심히 대답했다.

“거름이 부족한 게지.”

“아니야, 심기 전에 퇴비 주고 고양이 똥 삭힌 거랑 우유 남은 거 이런 거 주는데 잎만 무성해서 무슨 칡덩굴처럼 이층 창까지 올라갔어.”

그러자 시인이 피식 웃었다.

“첫 순을 따 버려야지.”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평상에 앉아 따박따박 호박을 썰던 시인이 다시 대꾸했다.

“거름이 너무 많아도 농사가 안돼. 쉽게 말하면 먹을 게 많은데 왜 애쓰며 꽃피우고 열매를 맺겠느냐고. 순지르기라는 걸 해서 첫번에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확 보여줘야 하는 거야. 그러면 ‘아,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구나. 우리 세대는 힘들 것 같으니 다음 세대에 기대를 해보자’ 하고 호박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지. 사람하고 똑같아.”

시인은 마치 호박으로 분한 유치원 선생님처럼 아기 호박 같은 얼굴과 표정, 목소리로 말했다. (이 시인은 가끔은 사과나무, 가끔은 매화, 그리고 자주 버들치로 분한다.) 순간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고통, 역경… 이런 것들이 우리 생에 필요하다고, 심지어 아주 중요하다고, 반드시 그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숙한다고 나는 인터뷰 때마다 말해왔다. 그런데 심지어 이게 사람이 아니라 식물, 호박에까지 이르는 우주적 원리였단 말인가. 호박에게도 고통은 정녕 필요했다는 말인가. ‘내비도’(내비 도) 교주 최도사가 내가 오랜만에 지리산에 온다고 잠잠산방에서 내려왔다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담뱃값이 오르자 “드러워서라도” 담배를 끊겠다던 그는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평상 옆에 앉아 곰방대에 담배를 눌러 피우며 킥킥 웃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박남준 시인과 공지영 작가(오른쪽)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식사를 준비하는 박남준 시인과 공지영 작가(오른쪽)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하동/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영이 너는 아이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고생도 시키고 그러는 걸로 아는데 호박은 과보호를 했구만그래. 애나 호박이나 같은 것이여.”

시인은 호박을 반으로 가르고 다시 반으로 갈라 사분한 다음 5㎜ 정도의 두께로 썰었다. 그리고 새우젓으로 밑간을 해서 마늘 다진 것, 양파 다진 것, 푸른 고추 다진 것을 넣고 마지막에 붉은 고추를 어슷어슷 올렸다. 마치 푸른 잎사귀 위에 핀 꽃처럼. 냄비에 뚜껑을 닫고 처음엔 센 불로 조리하다가 한 김 오르면 중간 불로 뭉근하게 익힌다. 호박이라면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들기름에 볶아 먹을 줄만 알았던 내게 이 쉬운 요리는 정말 신선한 것이었다.

“나는 기름이 싫어, 나는 단 것도 싫고. 나는 화학조미료는 먹을 수가 없어.”

이것이 시인이 늘 하는 말이었다. 시인은 쌀뜨물을 받아 된장을 풀고 호박 남은 것을 넣어 호박국을 끓였다. 늙은 오이를 반으로 갈라 속을 깨끗이 파내고 송송 썰어 소금에 절였다. 조금 있다가 한숨 죽은 늙은 오이는 고춧가루와 파마늘 그리고 간장에 무쳐질 것이었다. 여기에는 참기름도 두어 방울 들어가겠지. 원래는 묵나물 밥을 하고 싶었다던 시인은 묵나물이 없다면서 마당에서 깻잎 서너개를 따서 송송 썰어 넣고 밥을 지었다. 시인이 호박국을 끓이고 밥을 안치고 늙은 오이를 무치는 동안 나는 괜히 최도사를 꼬였다.

“우리끼리 사진 찍고 음식 하니까 최도사 형 너무 심심하지? 소주 한잔 줄까?”

당연히 최도사는 거절할 리가 없고, 우리는 초가을 볕이 푸짐한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투명한 가을 햇살이 꿀꺽꿀꺽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서울서 가져온 안주용 과자 몇 개를 내놓고 낮술을 마시니 골짜기 저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그래, 바로 이게 지리산의 맛이야’ 하는 생각에 흐뭇한데, 시인이 한 김 올라 완성된 초록색 호박찜에 빨간 고추 고명을 얹어 내밀었다.

“우선 밥 먹기 전에 안주로 조금 먹지그래.”

나는 젓가락을 들어 호박찜의 호박 하나를 입에 넣었다. 호박을 쪄봐야 뭐 호박이겠지 하는 선입견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순간 내 입에 퍼지는 달큰하고 따뜻하고 순한 향기. 놀랍게도 이 음식은 음식으로서 엄청난 품위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안주용 과자를 내 앞에서 치워버렸다. 돌연하고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갑자기 그 과자를 플라스틱처럼 느끼게 하는 무엇이 이 순한 호박찜 속에 있었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나는 호박찜과 호박국 그리고 깻잎을 넣은 밥과 늙은 오이 무침의 밥상을 받았다. 고백하건대 내 평생 받아본 밥상 중에 최고로 식물성인 밥상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맛있었다.

나는 내가 여기로 와서 시인의 밥상을 받기로 한 결정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소박한 밥상이 결국 우리를 살릴” 거라는 것도 예감했다. 무엇보다 내가 다달이 지리산을 찾을 핑계가 생긴 것이 기쁜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공지영 소설가


(*위 내용은 2015년 10월15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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